조지 레이코프-몸의 철학 인용과 서평
나는 도올의 몸철학을 실천하려고 하는 사람으로서 관련 서적을 봐야 한다.
다이어트가 왜 이렇게 어려울까? ㅠㅠ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프레이밍으로 미국 정계를 휘어잡는 조지 레이코프의 책이다.
이 책 아직 못 봤는데 단종이 되어버렸다. 이럴 수가!
---
Philosophy in the flesh - The embodied Mind and its challenge to Western Thought-
P. 25
마음은 본유적으로 신체화되어 있다.
사고는 대부분 무의식적이다.
추상적 개념들은 대체로 은유적이다.
이 세 가지는 인지과학의 주요발견이다. 이성의 이러한 측면들에 관한 2000년 이상의 선험적인 철학적 사색은 끝났다. 이런 발견들 때문에 철학은 결코 다시 옛날과 동일할 수 없을 것이다.
마음이 과학에서의 이 세가지 발견을 한데 묶어 상세히 고려할 때, 그것들은 서양철학의 핵심적 부분들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가장 인기 있는 현재의 접근방식들, 즉 영미 분석철학과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에 대한 철저한 재고를 요구한다.
Page 43
마음에 관한 경험적 연구인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 and Linguistics)은 마음의 본질에 관한 경험적 발견과 일치하는 철학, 즉 새롭고 경험적으로 책임있는 철학을 만들도록 우리에게 요구한다. 이는 과거의 철학이 아니다. 인지과학을 진지하게 평가하기 위해 철학을 처음부터 재고하고 살펴야 한다.
Page 46
인지과학이 제시하는 증거들은 고전적인 능력심리학faculty pshchology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준다. 지각이나 운동과 같은 신체 능력과 분리된, 그리고 신체 능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완전히 자율적인 그러한 이성 능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그 증거는 이성이 그러한 신체 능력을 사용하고, 그러한 신체 능력에서 발전한다는 진화론적 견해를 뒷받침한다. 그 결과로 주어지는 것은 이성과 인간에 관한 근본적으로 다른 견해다.
Page 47
모든 생물은 범주화해야 한다. 범주화는 우리가 신체화되어 있는 방식의 한 결과이다. 우리는 범주화하도록 진화되어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범주화는 의식적인 사유작용의 산물이 아니라, 뇌와 몸의 상호작용으로 범주화한 것이다.
Page 48 ~49
인간의 눈에는 1억 개의 광감각 세포가 있지만 단지 100여만개의 신경섬유만이 뇌로 통한다. 결국 우리 뇌는 받아들이는 정보를 범주화 할 수 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몸과 두뇌가 단순히 외부사항을 범주화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구조 어떤 종류인지도 결정한다는 것이다. 생물체는 반드시 범주화해야한 한다. 우리는 신경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의 범주들은 우리의 신체화를 통해 형성된다. 따라서 우리가 형성하는 범주들이 우리 경험의 일부라는 것이다(범주의 형성과 사용은 경험의 문제인 셈이다).
Page 51
신체화embodied된 개념은 실제로 우리 두뇌의 감각운동계의 일부이거나 그 운동계를 이용하는 신경구조이다. 그러므로 개념적 추론의 많은 부분은 감각운동 추론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를 본질적으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탈신체화된 이성에 대한 우리의 능력이다(P53)” 란 서양 전통 철학에 어긋난다.
P 74
(서양 전통의 사고에는) 지각작용과 개념작용 사이에 절대적 이분법이 있다고 가정된다. 지각작용은 동작처럼 항상 본질상 신체적이라고 인정받아온 반면, 개념이 형성과 사용인 개념작용은 전통적으로 순수하며 정신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마음이 탈신체화 되어 있다는 견해는 지각작용과 개념장용을 구분하는 것이지만, 신체화된 마음이란 이것이 무의미한 것이다.
P. 125-127
인지과학은 두 단계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전통적 영미철학의 토대를 긍정한다. 이는 1950-60년대 1세대 인지과학으로서 이성은 탈신체적이며 문자적이란 견해를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따라서 인지적 기능들이 몸과 두뇌에서 유래하는 방식을 무시한 채 마음은 인지적 기능들에 의해 연구될 수 있다는 가정이 당연시 되었다. 이들에게는 마음이란 개념에 몸이 없었다(Philosophy without flesh). 따라서 초기 인지과학은 마음이 몸과 무관하게 그 형식적 기능들에 의해 특징지어진다는 엄격한 이원론을 가정했다(C2 Haugeland, 1985).
P. 128
제 2세대 인지과학은 “마음은 신체화된” 것으로 본다.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탈신체화해서 보는 전통적 사고를 의심한다.
․ 개념적 구조는 우리의 감각운동 경험, 그리고 그 경험을 낳는 신경 구조로부터 발생한다.
․ 정신적 구조들은
P.144
모든 과학은 순수하게 객관적이며, 권력과 정치의 문제들은 결코 과학의 일부가 될 수 없으며, 과학은 선형적으로 발전하며, 과학은 항상 신뢰할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들을 우리는 거부한다. 더욱이 과학이 모든 것을 이해하는 궁극적인 수단도 아니며 인본주의적 지식은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생각도 강하게 거부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과학이 발견해 낸 많은 지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P. 150
신체화된 실재론은 엄격한 주체-대상 이분법을 거부하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과학에 적용될 수 있다. 탈신체화된 과학적 실재론은 ‘밖에 있는 대상’들과 안에 있는 주관성사이의 메울 우 없는 존재론적 간격을 불러온다.
P 152-153
인지과학에 의해 밝혀진 이성의 신체화는 우리가 신체화된 실재론이라고 부르는, 즉 마음과 실재간의 합치에 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한다. 그것은 이 세상과 근본적으로 분리된 데카르트 철학과 분석철학의 탈신체화된 표상적 실재론이라기 보다는 그리스의 직접적 실재론에 더 가깝다. 데카르트식의 분리를 거부하는 신체화된 실재론은 오히려 우리가 물리적 환경 속에서 성공적으로 기능을 수행하는 우리의 능력에 근거한 실재론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진화에 근거한 실재론이다. 진화는 우리가 환경에 적응하고, 심지어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적응된 몸과 뇌를 우리에게 제공했다.
실재론은 근본적으로 이 세계에서 기능하는 데 있어서 우리의 성공에 관한 것이다. ‘실재적이 아닌’ 사람은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며, 이 세계와 멀어져 있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다. 실재론은 우리가 생존하고 번성하고 우리의 목적을 성취하도록 해 주는 방식으로 이 세계와 접촉하는 일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접촉하는 것은 몸이란 감각에 의존한다.
P 155
우리가 여기서 전개하고 있는 신체화된 실재론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두 명의 위대한 철학자, 존 듀이( J. Dewey)와 메를로 퐁티(M. Merleau-Ponty)는 기질과 스타일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철학이 이용 가능한 최선의 과학적 이해에 의해 채워져야 한다고 믿었으며 그들 각각은 당대의 경험 심리학, 신경과학, 그리고 생리학을 광범위하게 수용했다. 그들에 의하면 몸과 마음은 분리된 형이상학적 개체들이 아니며, 경험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 신체화된 것이며, 우리가 마음과 몸이라는 낱말을 사용할 때, 우리의 경험을 구성하는 지속적인 통합된 과정에 제한된 개념 구조들을 인위적으로 부과하고 있다.
P 161
우리가 이해하는 이 세계의 모습은 적어도 우리의 감각기관, 이동하고 대상들을 조작하는 능력, 우리 두뇌의 정밀한 구조, 우리의 문화 및 환경 속에서의 상호작용과 같은 많은 것들에 의해 결정된다. 어떤 상황에서 우리가 진리라고 여기는 것은 그 상황에 대한 우리의 신체화된 이해에 의존하는 데, 이것은 모든 요인들에 의해 형성된다. 우리에게 진리는 그렇게 신체화된 이해에 의존하는 것이다.
P. 208-211
시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직접적으로 관찰하고 묘사하기 보다, 공간과 사건과의 비유로 개념화 한다. 시간에 대한 개념화는 곧 은유을 이용한 것이다.
Thats's all behind us now. (이제 우리에게 그것은 모두 지난일이 되었다)
Let's put that in back of us.(그것을 과거 속에 묻어 두자)
We're looking ahead to the future.(우리는 미래를 향하고 있다)
He has a great future in front of him.(그의 앞에 멋진 미래가 있다)
위의 예문들은 시간 지향을 나타내는 흔한 방식이다.
다음은 시간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방식이다.
The time will come when there are no more typewriters.
(타자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때가 올 것이다.)
The time has long since gone when you could mail a letter for three cents.
(3센트로 편지를 보내던 때는 오래전에 지나갔다.)
P. 491 칸막이된 도덕성은 없다.
오직 그 자체로서만 정의되는 ‘순순하게 윤리적인’ 개념들은 (설령 있다 하더라도) 거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순수한 ‘윤리적’영역이라는 개념을 심각하게 의심해 보아야 한다.
도덕성은 정치로부터 분리된 영역이 아니다. 그러한 도덕성 은유들은 교육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사회적 개념들에 또한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도덕성에 대한 우리의 개념적 체계가 교육 이론화와 사회 이론화 및 정책수립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순수도덕 이성은 없으며, 또한 그 자체로서만’ 이해되거나 오직 다른 순수한 윤리적 개념들에 대한 관계 속에서만 이해되는 순수 도덕 개념은 없다. 우리의 도덕적 이해는 은유적이어서, 가치와 선, 목적, 의도를 포함하는 방대한 체험적 영역들로부터 구조와 추론 패턴들을 끌어낸다. 도덕적 개념들에 대한 우리의 체계가 단층적이지 않으며, 완전히 일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며, 고정되어 있거나 완성되어 있지도 않으며, 또한 자율적이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P. 586
데카르트의 지식관은 오늘날 대부분의 인식론, 심리철학, 언어철학에 결정적인 흔적을 남겼다. 데카르트의 주장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인간존재의 본질’이다. 둘째, 마음은 탈신체적이다. 셋째, 우리를 인간답게 해주는 것은 우리의 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데카르트의 이 세 가지 요소는 오늘날 대부분의 철학적 사유의 특성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는 현상학뿐만 아니라 영미 심리철학 그리고 또 다른 학문분야, 교육, 제도, 마음에 파고들었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얼마나 자주 그러한가? 내가 생각할 때에만. 왜냐면 만약 내가 생각하기를 완전히 멈추면 나는 마찬가지로 존재하기를 중지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무엇인가? 생각하는 존재이다. (Descartes, Meditations 152-153)
P. 717
제 2세대 인지과학의 경험적 발견들은 거의 모든 측면에서 촘스키의 철학적 세계관과 충돌한다. 정말로 촘스키의 철학은 데카르트 철학과 형식주의 철학의 잘못된 점을 물려받고 있다.
이 모순들은 지금 쯤 낯익은 것이 되었을 것이다. 데카르트 철학은 마음의 신체화에 대한 발견들과 일치하지 않는다. 마음은 탈신체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체화되어 있다. 개념들은 두뇌와 몸을 통해서, 신체화된 경험을 통해서 의미를 얻기 때문이다. 개념들은 순수한 마음의 탈신체화된 생득적 능력의 일부가 아니다. 우리의 기본적인 형식의 사유의 대부분이 의존하고 있는 바탕으로서 우리의 공간관계 개념들은 뇌의 구조, 뇌의 해부도 및 다른 물리적 구조들을 통해서 발생한다. 우리가 사건들을 구조화하는 방식들의 특성을 밝혀주는 우리의 상적(相的)개념들은 근육운동 통제를 통해 발생한다. 추상적 이성은 단순히 마음의 자율적인 능력, 즉 몸과는 무관한 능력이 아니다.
P. 718
이 책은 과학과 철학 사이의 관련성에 관심을 기울인다. 경험적인 과학적 결과들, 즉 다수의 방법을 사용해서 언어와 마음에 관해 지금까지 도달한, 특히 수렴적인 결과들이 선험철학적 이론들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제 2세대 인지과학이 철학의 새로운 접근을 요구하는 것이며, 이는 마음의 신체화와 인지적 무의식, 은유적 사고에 대한 제 2세대 인지과학의 발견들에 합치하는 신체화된 철학을 말한다.
P. 795-6
철학은 일차적으로 우리의 삶을 이해하도록, 또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하다. 가치있는 철학은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어떻게 경험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깊은 통찰을 주는 철학이다.
철학이 책임있는 것이 되려고 한다면, 관련된 영역의 지속적인 과학적 탐구의 방대한 체계에 대한 진지한 대면과 이해가 없이 그저 마음, 언어, 그리고 인간의 삶의 다른 측면들에 관한 이론들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철학은 단순히 이야기, 즉 인간의 신체화와 인지의 실재들에 근거하지 않은 서사들의 조작일 뿐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알려고 한다면 철학은 마음의 과학들과 지속적인 대화를 유지해야 한다.
P. 800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전통적인 서구의 인간관은 모든 면에서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신경과학과 인지과학의 기본적 결과들과 합치하지 않는다. 실제의 인간에게는 마음과 몸의 분리도, 보편 이성도, 전적으로 문자적인 개념체계도, 단일하고 일관성 있는 세계관도 근본적 자유도 없다.
소크라테스 이래로 철학의 기본적 임무는 ‘너 자신을 아는 것’이었다. 우리 자신을 개별적으로 알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논의해 왔던 모든 결과들로부터 새로운 인간관이 생겨난다.
P. 800-1
신체화된 인간개념
신체화된 이성
◇ 신체화된 개념들: 우리의 개념체계는 지각과 근육운동체계들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것을 신경계적으로 사용하며, 그것에 의해 결정적으로 형성된다.
◇ 몸만을 통한 개념화: 우리는 몸을 통해서만 개념을 형성할 수 있다. 따라서 세계, 우리 자신, 타인들에 대한 우리의 모든 이해는 우리의 몸에 의해 형성된 개념들의 관점에서만 틀 지어질 수 있다.
◇ 기본층위 개념들: 이 개념들은 우리의 지가 체계, 영상체계, 근육운동 체계를 사용함으로써 일상 생활에서의 최적의 활동을 특징짓는다. 이것이 우리 환경의 실재와 최대한 접촉하는 층위이다.
◇ 신체화된 이성: 합리적 추론의 주된 형식들은 감각운동 추론의 사례들이다.
◇ 신체화된 진리와 지식: 우리의 관념들이 무의식적인 신체화된 개념체계의 관점에서 짜여지기 때문에 진리와 지식은 신체화된 이해에 의존한다.
◇ 신체화된 마음: 개념들과 이성은 모두 감각운동 체계에서 비롯되고, 또 그것을 사용하기 때문에 마음은 몸으로부터 분리되거나 독립적이지 않다. 따라서 고전적인 능력심리학은 옳지 않다.
P. 811
우리 모두는 우리의 마음을 탈신체화된 것으로 개념화하는 은유체계를 갖고 있다. 우리 모두는 탈신체화된 주체라는 환상을 강화하는 지속적인 현상학적 경험을 한다. 그렇지만 인지과학은 우리의 마음이 탈신체화되지 않았으며 또 그럴수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욱이 우리가 방금 보았던 것처럼 인지과학은 왜 우리가 우리의 마음이 탈신체화되었다고 생각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P. 814
신체화된 마음은 살아있는 몸의 일부이며 그 존재는 몸에 달려 있다. 마음의 속성들은 순수하게 정신적인 것이 아니다. 즉 그것들은 결정적인 방식으로 몸과 두뇌에 의해서, 그리고 몸이 일상적인 삶에서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에 의해서 결정된다. 따라서 신체화된 마음은 이 세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http://cafe.naver.com/taichiclub09/366
학술도서인데 기공 관련 사이트에서 인용한 걸 두 곳 봐서 재밌다. ㅋㅋㅋㅋ
서평
http://blog.naver.com/leader1207/80203783323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