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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망이 깍던 노인 패러디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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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오영(尹五榮)의 '방망이 깎던 노인'


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가 갓 세간난 지 얼마 안 돼서 의정부에 내려가 살 때다. 서울 왔다가는 길에, 청량리 역으로 가기 위해 동대문에서 일단 전 차를 내려야 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방망이를 깎아 파는 노인 이 있었다. 방망이를 한 벌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 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방망이 하나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 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 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차 시 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 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 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피우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방망이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방망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 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동대문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방망이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 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 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배가 너무 부르면 옷감을 다 듬다가 치기(한쪽으로 쏠리거나 뭉침)를 잘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다듬 잇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꼭 맞지 않고 헐거움)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 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竹器(죽기)는 혹 대쪽이 떨어지면 쪽을 대고 물수건으로 겉을 씻고 곧 뜨거운 인두로 다리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 그러나 요새 竹器는 대쪽이 한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竹器에 대를 붙일 때, 질 좋은 부레를 잘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소라 붙인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접착제를 써서 직 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소라 붙일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藥材(약재)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熟地黃(숙지황)을 사면 보통 것은 얼 마, 윗길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九蒸九日暴(구증구포)한 것은 세 배 이 상 비싸다. 구증구포란 아홉번 쪄내고 말린 것이다. 눈으로 봐서는 다섯 번 을 쪘는지 열 번을 쪘는지 알 수가 없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 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아홉 번 씩 찔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 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 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방망이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 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 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 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 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동대문의 지붕 추녀를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 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 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방망이 깎다가 우연히 추녀 끝의 구 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採菊東籬不(채국동리불)다가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도연명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집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북어 자반을 뜯고 있었다. 전에 더덕·북 어를 방망이로 쿵쿵 두들겨서 먹던 생각이 난다. 방망이 구경한 지도 참 오 래다. 요새는 다듬이질하는 소리도 들을 수 없다. 「萬戶衣聲(만호도의성) 」이니, 「위군추야도의성(爲君秋夜 衣聲)」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 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년 전 방망이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 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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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 「採菊東籬不(채국동리불)다가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은,
정확히 '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의 오자입니다.. ^^;(방망이 깎던 노인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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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 깍던 노인


벌써 4년 전이다. 내가 갓 방구석 기타리스트가 된지 얼마 안 돼서 낙원에 올라가 살 때다. 낙원에 왔다가는 길에, 피크를 한 봉지 사기 위해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낙원 바가지 상가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피크를 깎아서 파는 노인이 있었다.

피크를 한 봉지 사 가지고 가려고 깎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를 것 같았다.

"얼마 알아보고 왔소?"
"한 장에 800원 아닙니까?"
"한 장에 3천원이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다른 곳은 800원이던데..." 했더니,
"피크 한 장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싸가지 없는 노인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플라스틱을 뜨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티어드롭으로 깎는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깎하고 저리 깎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 가 보기에는 쪽자처럼 찍으면 다 될 건데, 자꾸만 헛칼질만 뜨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싸달라고 해도 통 못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TV에서 "풀 하우스"를 방영할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로고 안 새기고 통기타형으로 깎아줘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깎을 만큼 깎아야 피킹이 되지, 화투장에 티어드롭으로 깎는다고 얼터 피킹이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다는 말이오? 노인장, 낙팔이시구먼, 돈다준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방영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손에서 뽀록나서 안되고 쉽게 닳는 다니까. 피크란 제대로 깎야지, 깎다가 팔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피크위에 커스텀으로 금장 로고를 씌운다고 기계에 돌려놓고 야동을 보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흥분해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피크를 들고 이리저리 스크래치도 해보고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피크다.

방영 시간을 놓치고 녹화본을 봐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낙팔이다"

생 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낙원 상가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낙팔이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낙팔이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피크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이름모를 국산 싸구려 피크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깎으면 얼마 못 가서 피크끝이 갈라지거나 닳고 부러지기 쉽고, 무리하게 빨리 깎으면 그립감이 좋지 않다는것이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던롭 피크는 고급 폴리에틸렌 에 티어드롭 방식 펀치를 사용해 좀체로 뽀록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이미테이션 피크는 한번 닳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피크로고를 새길때 이미지를 미리 뜬 뒤에 이미지가 제대로 떠졌는지 침한번 발라보고 다시 깎는다. 물론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판박이 방식의 스티카로 찍어내듯이 만든다. 금방 만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몇 시간씩 걸려 가며 깎을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어 느 낙팔이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정품 피크를 팔 리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피크를 사는는 그 순간만은 오직 잘 돌아가는 피크를 산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음악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커스텀 피크를 만들어 냈다.

이 피크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방구석 기타리스트에게 낙팔이 소리를 듣는 세상에서, 어떻게 질좋은 피크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자작곡 샘플이라도 들려주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낙원가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단속이 떠서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낙원상가을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에 무너질 듯한 낙원상가로 낙팔이가 잠을 자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낙팔이를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피크를 깎다가 우연히 낙원상가의 마스코트인 낙팔이를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그랫쿠나 무서분 바카지를 쓴커쿠나!" 초난강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집에 들어갔더니 동생이 피크를사러가기 귀찮아서 집에있던 플라스틱 책받침으로 피크를 깎고 있었다. 전에 손톱을 길러서 피크대신 사용하던 생각이 난다.

깁슨 이미테이션 피크도 구경한지 참 오래다. 요새는 중고장터의 싸게 판다는 사기 메일도 날라 오지 않는다. "하이엔드급 기타"이니, "펜더 mbs" 처럼 악기병을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년 전 피크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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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절곤 깎던 노인



벌써 수 개월 전이다. 내가 갓 빵이 된 지 얼마 안 돼서 폭풍고에 내려가 살 때다.
천산공고 왔다 가는 길에, 청량리역으로 가기 위해 동대문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삼절곤을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삼절곤을 한 벌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삼절곤 하나 가지고 에누리한다?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라?"

대단히 근성있는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이리저리 강강약 강중약 강강강약의 기세로 가며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해서 뼈와 살이 분리 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된다?, 하지만 폭풍은 나의 것이야!"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소인배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안돼!"

"돼!"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라, 난 안팔겠다?"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과도한 재촉은 수분섭취처럼 몸을 둔하게 할뿐이라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여기가 저승인듯 럭키짱 만화책이나 실컷보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삼절곤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삼절곤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뼈가아닌 근육에 발차기를 맞는 기분이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드라군(dragoon)도 모르고 배짱없는 소인배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산케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동대문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쌈박한 근성안과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학교에 와서 삼절곤을 내놨더니 방사형은 적절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학교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방사형의 설명을 들어 보니, 사슬이 너무 길면 동전을 다듬다가 치기를 잘 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사슬이 너무 짧으면 동전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 쉽단다.
요렇게 우와아앙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응급처치(應急處治)는 혹 팔이 떨어지면 기름을 바르고 횃불으로
겉에 불을 붙이고 곧 딱딱한 맨땅에 지지면 피가 멎어서 좀체로 피를 흘리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응급처치는 피가 한 번 쏟아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팔에 약을 투여할 때, 질 좋은 마이싱을 잘 풀어서 잔뜩 모은 뒤에 칼침을 박아 돌리듯이 투여한다.
이렇게 하기를 108계단 40단만큼 한 뒤에 드링크를 먹이고 비로소 끝낸다. 이것을 지지기라 한다.
물론 사망률이 높다. 그러나 요새는 상처약을 써서 그냥 지혈한다.
금방 피가 멎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확인도 않는 것을 몇사람씩 조져 가며 지지기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패싸움 만 해도 그러다.
옛날에는 용병들을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윗질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전국구 서열의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전국구란 복대정도는 기본으로 가지고 다니는 자들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공중전화 번호책을 감았는지,그냥 붕대를 감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근성을 믿고 사는 것이다. 근성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개발살이다.
어느 누가 남이 확인도 않는데 복대를 감을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21단 10인분 김밥으로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짱은 짱이요 빵은 빵이지만,
싸움을 하는 그 순간만은 오직 남자다운 싸움을 한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리전을 하여 패싸움을 해냈다.

이 삼절곤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대인배가 나 같은 미숙한 풋사과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대협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김성모 스타크래프트 13권 전집 이라도 강매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동대문의 지붕 추녀를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근성조가 왱알앵알 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근성조를 보고 성대모사를 하고 있었구나.
열심히 삼절곤을 깎다가 유연히 추녀 끝에 근성조를 바라보던 노인의 즈각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육체는 단명하나 근성은 영원한것.대류..폭룡이 최고다' 라는 싯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나도하가 동전을 던지고 있었다.
전에 동전 세개를 삼절곤으로 방아붕 두들겨서 튕겨냈던 생각이 난다.
삼절곤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싸움질 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삼절필살기니 코브라 권법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끼야하아하는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수개월 전 삼절곤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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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권 팔던 노인

벌써 두어달 여 전이다. 내가 송파로 이사온지 얼마 안 돼서 석촌호수 인근에 내려가 살 때다. 삼성역 왔다 가는 길에, 3314번을 타고 앉아 가기 위해 잠실야구장에서 일단 버스를 내려야 했다. 야구장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분노한 꼴쥐팬들이 버리는 시즌권를 모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시즌권을 한 장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시즌권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블루석 좋은 자리로 하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자리를 고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불펜쪽 자리를 줄것 같더니, 좌석배치표를 보고, 통로쪽 위치, 전망좋은 상부자리, 이쁘고 몸매좋은 얼빠들이 운집한 자리를 살펴보며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블루석이면 다 괜찮은데, 자꾸만 더 고르고 있었다.

블루면 괜찮으니 대충 골라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버스 줄이 길어져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고르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블루면 다 좋다는데 무얼 더 고른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앉아가야 한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앉아서 가기는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골라 보시오."

"글쎄, 아무자리나 앉으면 관람이 힘들다니까. 좌석이란 제대로 골라야지, 블루라고 아무데나 앉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배치도를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시즌권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골랐다고 내 준다. 사실 고르기는 아까부터 다 골라져 있던 좌석이다.

줄 후미에 서서 앞문에 끼여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잠실구장 전광판 뒤쪽 깃대에 엘지 깃발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등번호 30번 허문회 저지가 색이 바란것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집에 와서 시즌권을 샀다고 쌍마에 글을 썼더니 회원들은 좋은자리 골랐다고 야단이다. 블루석 중 상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같은 블루에 무슨 상석이 있는지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팬들의 설명을 들어 보니, 불펜석은 엘지의 자랑인 마무리 덕분에 스트레스 받기 쉽고, 응원석 가까운 곳은 응원 분위기는 좋지만 팬이라는 이름의 진상들이 많으며, 얼빠석은 처음엔 보기 좋을지 몰라도 야구를 안보고 선수만 보는 언니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적당한 응원분위기에, 경기도 잘 볼 수 있고, 통로도 가까워 여차하면 음식을 사오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열 받았을때 응원도구를 쓰레기통에 쳐박고 침 한번 뱉어준다음 야구장을 뛰쳐나가기 좋은 좌석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엣날부터 내려오는 좀 한다는 신인들는 혹 부상을 입거나 멘탈이 붕괴되면 선배와 독대를 시키거나 2군에 보내 무한갈굼을 하면 다시 1군에 올라와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신인은 멘탈이 한 번 붕괴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신인에 자신감을 불어넣을 때, 마음 착한 주장과 선배 몇몇을 불러서 손을 잡고 락커룸으로 보내버렸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주전에 올린다. 이것을 줄빠따라 했다. 물론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언론홍보, sns, 유니폼 등을 통해 자신감을 불어 넣는다. 금방 주전에 올라선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좀만 잘하면 프렌차이즈라도 된 것마냥 클럽을 전전하거나, 승부조작을 벌이는데. 얼빠와 팬이라는 이름의 홀리건들, 기자라는 이름의 파워블로거의 눈을 피해가며 줄빠따로 자신감을 불어넣어줄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투수만 해도 그러다. 옛날에는 신인을 뽑으면 노력 여하에 따라 이놈은 선발, 이놈은 마무리, 이놈은 중간계투 하며 구별했고, 구증구포(九增九抛)한 선수는 신인이라도 1군에 올렸다. 구증구포란 매일밤 수건과 이미지트레이닝으로 9회 완투를 일주일에 9번 이상 연습하는 것으로, 눈으로 보아서는 다섯 번을 했는지 열 번을 했다고 구라를 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근성을 믿고 1군에 승격하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아홉 번씩 트레이닝을 할 신인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1군에 올려줄 감독도 없다.

옛날 트윈스는 야구는 야구고 연봉은 연봉이지만, 게임을 하는 그 순간만은 오직 신바람으로 승리를 이끌어 낸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가을 야구를, 유광잠바를 만들어 냈다.

이 시즌권도 그런 심정에서 골랐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골수들이 나 같은 뜨내기 팬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가을야구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깐부치킨에 맥스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화요일에 경기있는 날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송파구청 단속이라도 떴는지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야구장의 깃대에 휘날리는 엘지 깃발을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깃대 끝으로 깃발이 숫자 7을 그리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깃발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시즌권을 고르다 유연히 깃대 끝에 만들어진 숫자 '7'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6월 초순 이후에는 야구를 보지 않는것이 좋다'는 팬들의 오랜 격언이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동생놈이 베이스볼 워너비를 보고 있었다. 전에 김석류가 아이러브베이스볼을 진행하던 생각이 난다.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를 찾아본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스포츠 채널을 돌린적이 없다.

무적엘지 트윈스니, 서울의 자존심이니 하며 97년에 잠실벌에 휘날리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몇 달 전 시즌권 좌석 고르던 노인의 허문회 유니폼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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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승총 제조하던 노인 팬픽

    by Mr술탄-샤™
    2009/01/18 19:12
    zairai.egloos.com/4789271
    덧글수 : 66

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가 갓 부임난 지 얼마 안 돼서 외교사절로 오스만 투르크에 내려가 있을 때다. 이스탄불 왔다가는 길에, 베네치아로 가기 위해 항구에서 일단 마차를 내려야 했다.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화승총를 만들어 파는 노인이 있었다. 화승총을 세 자루 사가지고 가려고 사양을 말하고 오더를 넣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머스킷 세자루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이교도영감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만들어나 달라고 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총대를 후딱 깎아내는 것 같더니, 여기 사포질하고 저기 기름먹이고 총신도 기껏 달궈놓고선 망치질도 하는 둥 마는 둥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7mm두께의 플레이트 방탄흉갑도 3겹은 뚫겠는데, 오더낸지 두달이나 지났는데 약실부터 총구까지 단조된 총신에 철판을 둘둘 감고 있었다. 그딴 공정 필요없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배 시일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 그만하면 기사도 잡겠으니 그만 결합이나 해서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신뢰성이 받춰줘야 총이 되지, 갑옷만 열겹뚫는다고 총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짬밥 12년눈에 되어보인다는데 무얼 더 신뢰성찾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배 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귀국 예정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만들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화승총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방아쇠도 안만들고 결합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완성한 총열을 내팽개치고 태연스럽게 알라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한달 후에야 화승총을 들고 방아쇠를 당겨도 보고 화약을 100그램이나 쑤셔박고 화살을 박아 발사까지 해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다 되기는 한달전부터 다 돼 있던 화승총이다.

배를 놓치고 귀국예정 놓쳐 개갈굼이 예정된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화승도 서비스로 안주고 이교도에 불신자인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모스크 지붕의 첨탑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겸허하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본국에 와서 공작님께 최고급 진상품이라며 이빨까며 화승총을 내놨더니, 공작님은 품질이 대박이라고 야단이다. 독일에서 커스텀으로 만든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 가 않았다. 그런데 공작님의 설명을 들어 보니, 약실의 두께가 두껍지 않으면 수차례 발사하다 총신이 폭발하기를 잘하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강화했다간 무게중심이 어긋나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총대를 잘 다듬지 않으면 제대로 견착이 안되고 반동에 손가락에 나무가시가 박히기 마련이란다. 거기에 화승이 화약접시로 들어가는 타이밍 하며 방아쇠 무게도 이렇게 가벼운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즉시 공방의 이름과 위치를 고하라 하시어 말씀드리니 즉시 시종을 불러 나와 친위대가 쓸 25자루의 마상용 권총을 주문하라 명하셨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한드곤네는 혹 총신이 금가면 철판을 대고 사포로 겉을 밀고 곧 뜨거운 고로로 용접하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화승총 총신이 한번 파열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한드곤네에 총신을 제조할 때, 질 좋은 강재를 잘 달궈서 철봉에 말아 접합부를 용접한다. 거기에 철판을 둘둘 감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철판 감기라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고열에 수차례 달궈 망치로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철판 감을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갑옷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플레이트 아머를 사면 철제는 얼마, 케이스 하든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강철 통짜 단조에 열처리를 마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통짜 단조란 강철판을 풀림해서 가공하고 다시 강화시킨 최고급 제품이다. 눈으로 봐서는 연철을 썼는지 강철을 썼는지 알 수가 없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강철판을 풀림하고 재열처리 할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두께는 세 배 이상 두꺼워졌지만 철판은 연철로 만들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옛날 사람 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갑옷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지상최강의 방어구를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이교도의 샴쉬르를 씨알도 안 먹히게 했다.

이 화승총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 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돼지고기에 오징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모스크의 첨탑을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첨탑 위에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가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화승총 만들다가 우연히 첨탑 끝의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집에 들어가니 손주가 끓는 물을 부어 부싯돌 총의 총강청소를 하고 있었다.. 전에 방아쇠를 당겼더니 화승 불이 점화가 안되서 개머리판으로 쿵쿵 두들겨서 적을 때려잡던 생각이 난다. 화승총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화승에 불붙이는 부싯돌 소리도 들을 수 없다. "총신이 터졌습니다'이니 '원인모를 발사불량이 20회 계속되어 전장이탈을 신청합니다' 라며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년 전 화승총 만들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차마 못보고 놓친 추탕과 탁주를 급 수정했습니다.
그러나 이슬람에서 금하는 돼지고기에 비늘없는 물고기 <오징어>입니다.
이유는 이 주인공 컨셉이 개념없는 유럽놈이기 때문입니다. (=_=)y

http://zairai.egloos.com/4789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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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챈트 하던 노인

벌써 40여 일 전이다. 내가 에린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티르에 머물러 살 때다. 키아 왔다 가는 길에, 마을로 가기

위해 버스무임을 해야 했다. 여신상 뒷편 표지판앞에 앉아서 유료인챈을 하는 노인이 있었다. 폭스 인챈이나 한

번 해 볼까 하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인챈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하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날리지만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장비

를 갈아끼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채우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검교도 입어보고 타이틀도 바꿔보고 굼뜨기 시

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장비를 갈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시도해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

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확률이 좀 낮아도 좋으니 그만 해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깎을 만큼 깎아야 실이 되지, 양털이 재촉한다고 실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장비한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파티리더 기다린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하우. 난 안 하겠소."


하고 거래를 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파티창은 이미 내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

고 파티탈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늦어진다니까. 인챈이란 제대로 질러야지, 폭스인챈으로 스네이크가 뜨면 쓰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맡긴무기를 등에 장비하고 태연스럽게 감자샐러드를 쉐어링하고 있지 않는가. 나

도 그만 Yes를 눌러 어머니를 외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무기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무기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인챈을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거래게시판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

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류트를 들고 여신상뒷편을 바라보고 섰

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붉은 풍운아의 헤어스타일과 리블로브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광장에 와서 무기를 내놨더니 길마는 제대로 질렀다고 야단이다. 장비하고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길마의 설명을 들어 보니, 자이언트에 폭스를 지르면 대개

의 경우는 2/1이 뜨며, 지력이 너무 낮으면 인챈도 되지 않고 내구 해먹기 쉽단다. 요렇게 최고로 지른 것은 좀체

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축포는 혹 축복이 풀어지면 장비를 고르고 선택버튼을 누르면 곧 얼마간의 딜레이와 함께 다

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나오'는 축복이 한 번 풀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

에는 장비에 축포을 바를 때, 값 높은 무기를 잘 골라서 선택 후 성공률을 본 후 인챈하듯 기다려 바른다. 이렇게

하기를 몇 번 한 뒤에 비로소 모든 장비에 붙는다. 이것을 축바른다고 한다. 물론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나오를 써서 순식간에 바른다. 금방 발린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몇

분씩 걸려 가며 축포 바를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무기만 해도 그러다. 옛날에는 롱소를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최뎀증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X급이라도 뜬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X급이란 내구와 데미지가 최고치로 붙은 제품을 말하는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수제인지 프

로그램을 돌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수제로 무기제조를 할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

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

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개조 무기를 만들어 냈다.


이 인챈트도 그런 심정에서 질러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

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

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마나허브에 축포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벨

테인에 던전가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바로앞 여신상

뒷편을 바라보았다. '이 작품은 고대 여신상의....'. 아, 그 때 그 노인이 이 작품설명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인

챈을 하다가 유연히 표지판에 걸린 글귀를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헐벗은캐릭 진

공파작열 렉이군' 싯구가 새어 나왔다.


광장으로 돌어갔더니 길마가 솔져역템을 팔고 있었다. 전에 라비를 불철주야 연속해서 돌았었던 생각이 난다. 솔

져인챈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사는사람도 볼 수가 없다. '무조건솔져'이니 '스피드마스'이니 애수를 자아

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일 전 인챈을 하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 끗 -

http://www.joara.com/community/board/boardView.html?idx=28129&bbsid=board&sub_bbsid=board_wit&sl_search=&sl_keyword=&PageNo=&age=&k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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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 깎던 수련의

벌써 40여 년 전 일이다. 내가 갓 세간난 지 얼마 안 돼서 물금에 내려가 살 때다. 부산 왔다 가는 길에, 범어리로 가기 위해 남양산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남양산 맞은편 길가에 병원에서 템포를 깎아 파는 수련의가 있었다. 마침 제1대구치를 발치한 지 2달이 지나 브릿지를 하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얼마 쓰지도 않을 템포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템포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서 하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수련의였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이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셔틀버스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굳을 만큼 굳어야 레진이 되지, 파우더가 재촉한다고 레진이 되나.”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이 선생,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수련의는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기공실에 가져가서는 lathe에 twinkle까지 하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템포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끼워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템포다.


차를 놓치고 콜택시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진료를 해 가지고 수입이 날 턱이 없다. 환자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수련의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수련의는 태연히 허리를 펴고 신환 파노라마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의사다워 보였다. 떡진 머리와 면도 안한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수련의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템포를 보였더니 아내는 예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자기 입에 있는 금니만큼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내의 금니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교합면이 너무 밋밋하면 음식을 먹다가 씹기가 덜 하며 같은 고기를 먹더라도 힘이 들며, 교합면이 너무 부르면 측방운동 시 간섭이 생기며 익관절 장애가 생기기 쉽단다. 요렇게 마진까지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수련의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치과에 갔다 왔단다. 전에 앞니 뒷니를 깎아서 브릿지를 했던 생각이 난다. 브릿지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임플란트 때문에 브릿지 프렙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만호도의성(萬戶壔衣聲)이니 위군추야도의성(爲君秋夜壔衣聲)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년 전 템포 깎던 수련의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내용은 윤오영 작가님의 방망이 깎던 노인을 패러디한 글입니다. 외래에 갓 올라온 3학년 원내생 실습생으로부터 자주 받던 질문 중 하나가 “보철과에서는 임시 치아를 깎는데 왜 시간이 오래 걸리나요?” 였습니다. 이에 우리끼리 웃고 놀자는 뜻으로 만들었던 글을 수련의 마지막 해에 돌이켜 읽어 보니, 1년차 시절 환자의 불편감은 아랑곳 않고 자기 만족을 위해 2시간이고 한 환자를 붙잡고 있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햇병아리 치과의사이고 앞으로 많은 현실의 난관에 부딪히겠지만, 마음 한켠엔 방망이를 깎던 노인을 앉혀 두고 이따금 돌이켜 보고 싶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 재 영
부산대치과병원 보철과 레지던트


http://www.kda.or.kr/kda/modules/kdaNews/news/NewsView2.aspx?NewsID=75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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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디굽던 노인

벌써 4년 전이다. 내가 갓 게이머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용산구에 올라가 살 때다. 용산역에 왔다가는 길에, 게임 시디를 한 장 사기 위해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용산역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게임 시디를 구워 파는 노인이 있었다. 게임을 한 장 사 가지고 가려고 구워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를 것 같았다.

"얼마 알아보고 왔소?"

"한 장에 5천원 아닙니까?"

"한 장에 만2천원이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다른 곳은 5천원이던데..." 했더니,

"시디 한 장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4가지 없는 노인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구워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이미지를 뜨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뜨는 것 같더니, 해가 저물도록 이리 클릭하고 저리 클릭하고 굼뜨기 시작하며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다이렉트로 구우면 다 될 건데, 자꾸만 이미지만 뜨고 있었다. 이제 다 됐으니 그냥 구워달라고 해도 통 못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TV에서 "카드 앵벌이 싸구려"를 방영할 시각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이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이미지 안 뜨고 CD to CD로 구워줘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구울 만큼 구워야 시디가 돌아가지, 공시디에 라이터 지진다고 돌아가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굽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용팔이시구먼, "카드 앵벌이..." 한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방영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구워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인식이 안되고 뻑이 난다니까. 시디란 제대로 구워야지, 굽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이미지 뜬 것을 숫제 1배속으로 걸고 태연스럽게 새턴을 켜고 야구권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흥분해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시디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게임 시디다. 방영 시간을 놓치고 녹화본을 봐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용팔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용산역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용팔이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용팔이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시디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구웠다고 야단이다. 통신 판매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싸구려 벌크 시디로 구우면 얼마 못 가서 시디가 인식이 잘 안되다가 데이터가 쉬이 날아가며, 무리하게 고배속으로 구우면 다운이 잘 되고 동영상이 끊기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복사 시디는 고급 화이트 골드 시디에 스카시 방식 레코더를 사용해 저배속으로 구워 좀체로 뻑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시디는 한번 동영상이 끊기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복사 시디를 구울 때 이미지를 미리 뜬 뒤에 이미지가 제대로 떠졌는지 가상 시디 이미지로 잡고 에뮬레이터로 확인을 한 뒤에 비로소 굽는다. 물론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IDE 방식의 레코더로 CD to CD로 직접 굽는다. 금방 굽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몇 시간씩 걸려 가며 이미지 뜰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중고 게임기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중고 플스를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재생 렌즈는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정품 렌즈는 세 배 이상 비쌌다. 정품 렌즈란 다른 중고 플스에서 떼어낸 수명이 다 된 렌즈가 아닌 신품 렌즈인 것이다. 눈으로 봐서는 신품인지 가변 저항을 조절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용팔이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정품 렌즈를 달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시디를 굽는 그 순간만은 오직 잘 돌아가는 시디를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불법 복사 시디를 만들어 냈다.

이 시디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게이머에게 용팔이 소리를 듣는 세상에서, 어떻게 잘 돌아가는 복사 시디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오이 3개에 오렌지맛 쿠우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단속이 떠서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그리고, 사 년 여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날 나는 무슨 볼 일이 있어 용산에 가게 되었다. 한참 길을 걷다 문득 맞은편에 용산역이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그곳을 바라보며 잠시 상념에 잠겼다. 푸른 창공에 무너질 듯한 용산역 밑으로 용산견이 잠을 자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용산견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시디를 굽다가 우연히 용산역의 마스코트인 용산견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집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DVD 레코더로 플스 2 DVD를 굽고 있었다. 전에 플스 1 시디를 4배속 레코더로 굽던 생각이 난다. 플스 1 복사 시디 구경한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플스 1 복사 시디 판다는 스팸 메일도 날라 오지 않는다. "파이날 환타지 쎄븐"이니, "도끼매끼 메모리알"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년 전 시디 굽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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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량 깍던 검사 - 딴지일보 김태경



벌써 일여 년 전이다. 내가 1등기업에 집착하면서 바쁘게 살 때다. 서울 왔다 가는 길에 서초역에서 일단 마이바흐에서 내려야 했다.



서초역 쪽 길 가에 앉아서 기업들에게 떡 받아먹고 사는 검사가 있었다. 비자금이 하나 걸려가지고 좀 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소송 하나 가지고 값을 깎으려오? 비싸거든 감방에서 오래 살아보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검사였다. 더 깎지도 못하고 아무쪼록 빨리 풀려나게 해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구형 형량을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도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체한다. 언론에 다루어지고 있으니 빨리 해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점점 여론이 좋지 않아졌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깎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하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감방서)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단 말이오? 영감님, 외고집이시구려. 여론이 안 좋아진다니까……."

검사는

"다른 검사 알아보시오. 난 안 하겠소."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여론은 어차피 안 좋아진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諦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형량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법전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룸살롱에서 텐프로를 불러 즐기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검사는 또 깎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형량이 다 깎여 없어질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법전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되어 있던 형량이다.

언론에 소문이 나고 여론이 안 좋아진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일을 처리해 가지고 재판이 유리하게 잘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本位)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 불친절(不親切)하고 무뚝뚝한 떡검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검사는 태연히 허리를 펴고 룸살롱의 미녀를 바라보고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섹검다워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 그리고 부드러운 눈매와 양주에 젖은 입술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검사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조금은 덜해진 셈이다.

회사에 와서 형량을 내놨더니, 변호사는 잘 깎았다고 야단이다. 자신이 깎아도 이것보다는 잘 못 깎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검사가 잘 깎아준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변호사의 설명을 들어 보면, 형량이 너무 길면 법무부장관이 특별사면을 해 줄 때, 같은 재벌이라도 힘이 들며, 형량이 너무 적으면 여론이 너무 기세를 부리므로, 기업의 앞길이 잘 펴지지 않고 이미지를 망치기가 쉽다는 것이고,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검사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재건축현장은, 정치인들과 룸에서 양주나 마시고 안주머니에 돈봉투를 넣어준 뒤, 주먹들 불러서 빈민들 좀 족치면 되었다. 그러나 요사이 건설현장은, 집회시위가 곧잘 보도되어서 옛날보다 힘이 든다. 그런 점에서 용산참사 희생자 이름도 모르는 오세훈이 다시 서울시장이 된 것은 반길만한 일이다.



협정(協定)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대통령이 일본이랑 몰래 말도 안되는 협정을 맺어도 반대하는 대학생들이나 감방에 넣어버리면 되었다. 근데 요즘은 쇠고기의 ㅅ자만 들어도 스트레스가 다시 도지는 것 같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生計)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싸구려 원자재로 폭리를 취한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노동자의 심혈(心血)을 빼서 공장(工場) 생산품을 만들어 냈다. 이 구형량도 옛날을 그리워하는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검사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떡검을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떡검이 나 같은 기업인에게 떡과 여자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거래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 졌다.

나는 그 검사를 찾아가 룸에서 양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上京)하는 길로 그 검사를 찾았다. 그러나 그 검사가 앉았던 자리에 검사는 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검사가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쪽 룸살롱의 미녀를 바라다보았다. 푸른 눈을 가진 러시아의 미녀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검사가 저 외국인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형량을 깎다가 유연히 외국의 미녀를 바라보던 검사의 욕망에 가득찬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변호사와 회계사가 자료를 뒤지고 있었다. 전 변호사에게 배신당한 생각이 난다. 법원을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사이는 경영권을 승계할 생각에 들떠 있다. 애수(哀愁)를 자아내던 그 사건도 이미 오래다. 문득 일여 년 전, 형량 깎던 검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http://www.ppomppu.co.kr/zboard/view.php?id=humor&page=2&sn1=&divpage=25&sn=off&ss=off&sc=off&select_arrange=headnum&search_type=&desc=asc&no=14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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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가슴살 팔던 노인

벌써 4년 전이다. 내가 갓 보디빌딩매니아가 된지 얼마 안 돼서 부산에 내려가 살 때다.
체육관에 가는 길에, 닭가슴살을 하나 사기 위해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부산역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닭가슴살을 다듬어서 파는 노인이 있었다.
닭가슴살하나 사 가지고 가려고 다듬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를 것 같았다.

"얼마 알아보고 왔소?"
"1kg에 5천원아닙니까?"
"1kg에 7천원이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다른 곳은 5천원이던데..." 했더니,
"닭가슴살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싸가지 없는 노인이었다.

다른곳으로 가기엔 시간도 없어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다듬어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강철 도마에 칼을 갈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다듬는것 것 같더니, 날이 저물도록 이리 깎고 저리 깎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대충 스킨이나 제거하면 다 될 건데, 자꾸만 이리저리 돌려 보고 칼로 다듬고만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잘라달라고 해도 통 못들은 척 대꾸가 없다.
그러더니만 작은칼로 또 다듬고 있지 않은가.
사실 체육관에 갈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대충 다듬어도 되니 그만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깎을만큼 깎아야 가슴살이 되지, 닭살을 그냥 잘라낸다고 가슴살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단순히 닭손질 하는데 무어 시간이 그리 오래걸립니까?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참 꽉막히셧구먼, 그걸로 대충 주스갈아먹는다구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깎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체육관 갈 시간은 어차피 넘은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가슴살에 손이 많이가서 신선도가 떨어져 좋지않다니깐. 가슴살이란제대로 손질해야지, 손질하다가 말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아예 껍질을 사시미를 뜨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한참을 지난 후에야 가슴살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가슴살이다.
타야할 버스를 놓치고 택시를 타고 집에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메달려있는 생닭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호지명다워 보이는 것이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가슴살을 내놨더니, 마누라가 이쁘게 다듬었다고 야단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마누라의 설명을 들어 보니, 가슴살이란 대충 껍데기만 벗긴다고 되는 것이 아니란다.
본디 가슴살이란것이 얇으면 조리할때 바로 타거나 삶았을때는 질겨지고,너무 두꺼우면 속과 겉이 따로 놀아 안된다는 것이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가슴살은 힘좋은 장닭을 잡아 그 푸닥거리는 근육의 힘이 닭가슴살을 더욱 펌핑시켜 최고의 근질을 가진 닭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요새 이익에 눈이먼 양계업자들 때문에 비실비실한 영계들만 잡아 날개에 힘이 다 생기기도 전에 잡아서 비실비실하고 살도 없는 가슴살을 팔게 마련이다.
예전에는 가슴살을 다듬을때 반드시 무게 중심은 균일한지 좌우 편차는 없는지, 너무 지름이 크지는 않은지를 일일이 확인하고 팔았다.
물론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공장에서 금형으로 닭을 찢고 잘라서 빠르다. 금방 자른다. 그러나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다듬은 것 만큼 근질이 좋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몇 시간씩 걸려 가며 계측하고 손으로 깎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장닭 넣는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가슴살을 다듬는 그 순간만은 오직 심도있게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가슴살을 만들어 냈다.
이 가슴살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매니아에게 ***, **** 소리를 듣는 세상에서, 어떻게 최고의 가슴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치킨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구청에서 또 단속이 떠서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부산역을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에 무너질 듯한 부산역 밑으로자리한 체육관엔 미스터부산선수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보디빌더를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가슴살을 깎다가 우연히 부산역의 체육관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그랫쿠나 무서운 쿠믈 쿠엇쿠나!" 초난강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집에 들어갔더니 아버지께서 갈매기를 잡았다고 이상한 모양의 가슴살을 다듬는다.
요즘은 보충제를 먹는다고 가슴살 본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닭을 사라는 정겨운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문득 4년 전 닭가슴살 팔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http://cafe306.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6rh&fldid=2tdv&datanum=22528&contentval=&docid=6rh2tdv2252820070201012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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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동 굽던 노인

 <원작은 윤오영(尹五榮)님의 방망이 깎는 노인 입니다. ^^ 훌륭한 작품으로 이런 장난을 쳐서 죄송하니다.>
 
 
벌써 4주 전이다. 내가 갓 야동 지운 지 얼마 안 돼서 상실감에 휩사여 살 때다.
서울 왔다 가는 길에, 청량리역으로 가기 위해 동대문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야동을 구워파는 노인이 있었다.
야동을 한번 사 가지고 가려고 구워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아청법시대에 야동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구워만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고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고르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돌려 보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구워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돌려보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그것만 구워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안봤을만한것을 골라야 야동이지, 본거 또보면 흥이 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고른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돌려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버닝이란 제대로 구워야지, 굽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돌려보던 것을 일시정지하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DVD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DVD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존슨마음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동대문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김본좌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집에 와서 DVD를 내놨더니 형은 좋아하던 AV모델이 들어있다고 야단이다.
소장했었던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형의 설명을 들어 보니, AV모델이 작품마다 스토리가 다르며, 한글자막이 있어서 감정이입이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엣날부터 내려오는 야동은 웹하드 업체와 토렌토를 뒤지면 쉽게 구할수 있었다. 그러나, 요새 야동은 아청법 때문에 구하기가 쉽운법이 없다. 예전에는 야동을 모을때, 마음에드는 모델의 스크린샷을 보여주고 알려달라 했다.
이렇게 하기를 세 곳 한 뒤에 비로소 이름과 모델이름을 아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것을 능력자라고 붙인다고 한다.
물론 100% 맞는다. 그러나 요새는 움짤을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길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잡혀갈까 리플하나 맘대로 달지 못하는것 같다.
 
토렌토만 해도 그러다. 옛날에는 아오이소라를 받으면 보통 것은 몇MB, HD는 몇MB, MB로 구별했고,
FULL HD는 세 배 이상 이었다, 토렌토란 야동의 천국이었다.
야동 제목을 봐서는 봤던건지 안봤던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업로더의 말을 믿고 받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업로드를 하는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업로드는 시드요 다운로드는 유지였지만,
업로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공유한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씨드들을 만들어 냈다.
 
이 DVD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동대문의 지붕 추녀를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DVD를 굽다가 유연히 추녀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김본좌 명대사가 새어 나왔다.
 
김본좌께서 경찰에게 잡혀가는날 김본좌 말하길 '너희들 하드에 야동한편 없는자, 나에게 돌을 던져라'하시매...
경찰도, 형사도, 구경하던 동네 주민도.. 고개만 숙일뿐 말이 없더라...
 
문득 4주 전 DVD 굽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16250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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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마체트 깍던 덕후 'ㅅ'

    by 늄늄시아
    2012/09/07 15:47
    gorsia.egloos.com/2962251
    덧글수 : 11

벌써 10여 년 전이다. 내가 Z.E.R.T에서 델타팀 대장을 단지 얼마 안 돼어 좀비지대에 투입되었을 때다. 청주 왔다 가는 길에, 본부로 가기 위해 오창에서 일단 셔틀버스를 타야만 했다. 중간거점으로 쓰이던  교회건물 맞은편 노점에서 마체트를 깎아 파는 덕후가 있었다. 마체트 한 자루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마체트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싸가지 없는 덕후였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라인더로 강재를 잘라내 빨리 깍는가 싶더니 야스리로 천천히 깍는게 아니겠는가?,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마체트 깍아파는? 'ㅅ'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치댈만큼 치대야 빵이 되지, 밀가루가 재촉한다고 빵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그 덕후는 쌀쌀맞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날 엣찌가 안맞는다니까. 칼이라는건 신중히 공 들여야 만들어야지 그라인더로 대충 잡으면 쓰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가랑이 사이에 끼우고는 놓고 태연스럽게 볶은 콩은 우물거리며 먹고 있는게 아니던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마체트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마체트다.

하루에 한번 다니는 차를 놓치고 도보로 본부까지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생각은 안중에도 없다. 그래 가지고 바가지만 씌운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오덕이다.'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그 안여돼는 태연히 허리를 펴고 교회첨탑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덕후다워 보였다. 안경렌즈 너머로 보이는 여드름 자국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덕후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본부에 와서 마체트를 내놨더니 여친이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Z.E.R.T 보급품으로 나오는 것보다 훨씬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보급품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다. 그런데 여친의 설명을 들어 보니, 날 엣찌가 안맞으면 좀비를 썰던 중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삑사리가 나 잘 베어지지 않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그립감이 안좋으면 진동때문에 손목을 삐끗하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보급품 중에서 이렇게 딱 맞는 물건은 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덕후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예전에 본부에서 지급되는 파이프폭탄은 사용 시 위협적인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되어 좀비들의 몸통을 사정없이 유린했었다. 그러나, 요새 파이프폭탄은 그냥 "팍!" 소리만 날 뿐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예전에는파이프폭탄 만들때 강관에 코닝처리한 화약과 함께 콘크리트못을 챙고 양 끝에 메꾸라 캡을 씌워 납땜질을 한다. 그리고 틈새에 라드를 바르는데 이렇게 하면 물에 빠뜨려도 사용에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요새는 코닝처리도 안한 화약과 드링크병에 콘크리트 못이 아닌 유리조각이나 돌멩이 따위를 채워넣고 입구도 대충 막는다. 이렇게 하면 압이 입구쪽에 몰려 파편을 멀리까지 날려 보낼수 없다. 그렇지만 요새는 어딜가든 대충 만든 폭탄뿐이다. 이래가지고 청설모나 잡을수 있을지 모르겠다.

비상식량으로 보급되는 시리얼 바만 해도 그러하다. 옛날에는 구수하게 볶은 쌀과 해바라기씨앗, 땅콩 등등을 우유에 설탕과 함께 카다몸, 시나몬, 클로브를 졸여 농축한 고형우유를 사용했다. 고소하고 달콤하면서도 먹으면 힘이 나는 그런 음식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건 들어가지도 없는다. 미숫가루를 카라멜로 굳인 돌덩이 같은 괴식이 대부분이다. 이런거 먹다가는 이빨이 다 나간다. 영양학적으로 별 차이 없다는데 난 못믿겠다. 원가절감이랍시고 이따위로 만든것이 아니겠는가?

이 마체트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덕후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씹덕이 나 같은 현장요원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덕후를 찾아가서 왕만두에 옥수수차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임무가 없는 날 오창으로 가 그 덕후를 찾았다. 그러나 그 덕후가 앉았던 자리에 그는 없었다. 나는 그 닥후가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그에게 사과할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교회건물의 첨탑을 바라보았다. 푸른하늘을 찌르는 듯한 첨탑 위에 박혀있던 십자가가 보이지 않았다. 아, 그 때 그 덕후가 십자가를 뽑아가 장검을 만들 생각을 했구나. 열심히 마체트를 깎다가 유연히 첨탑끝의 십자가를 바라보던 덕후의 음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 순간 "오덕씹덕만세"라는 한 문장을 떠올리며 두 팔을 하늘 위로 치켜올렸다.

오늘 집에 들어갔더니 마누라가 진검으로 대나무를 베고 있었다. 옛날에 좀비를 마체트로 썰었던 생각이 난다. 마체트를 구경 한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좀비들도 찾아보기 힘들다. 심금이 울리고 오르가즘이 느껴질것 같은 "우웨~"하던 그 소리도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Z.E.R.T 오창 거점에서 마체트를 깍던 덕후의 모습이 떠올랐다.

-2026년 출판된 "한아의 자서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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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깎는 노인

벌써 40년 전이다. 갓 내전 난지 얼마 안되어서 전쟁터에 내려가 용병짓을 할때다.
맞은 편 길가에 앉아서 AK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AK를 한정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줄 수 없는냐고 했더니,

'총자루 하나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깎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날이 저무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척이다. 총알이 날라오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알라의 요술봉 연기에 갑갑하고 지루하고 이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깎지 아니해도 좋으니그만 달라'고 했더니 ,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생쌀이 채족한다고 밥 되나,'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요,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이러다 총 맞겠다니까"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하고 내 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승전은 어차피 틀린것
같고 해서,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릅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종이에 대마를 말아 피우고 있지 않는가,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깎기 시작한다.

저라다가는 AK가 다 깎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AK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총이였다.

다음 전쟁에 다시와야 하는 나는 불유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굽히고 태양을 향해 기도 하고 있었다.

그때,그 뒷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와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막사에 와서 AK를 내려놨더니 전우가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전우의 설명을 들어 보면 개머리판이 너무 부르면
힘들어 견착시 어깨가 빠지길 잘하고,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견착이 되지 않고 눈에 멍들기가 쉽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서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오늘 전쟁기념관에 나왔더니 밀덕이 AK를 들고 코스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AK로 적들을 쏘던 생각이 난다. 피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총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그 옛날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년전 AK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끼요끼요(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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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깎던 실장


Written by - 매운맛나라님 & 회사 동료분들 공동 창작물
                    
벌써 4년여 전이다. 대학 갓 졸업한 지 얼마 안 돼서 신림동에 내려가 살 때다.
면접 돌러 가는 길에, N사에 먼저 들르기 위해 선릉역에서 일단 내려야 했다.
선릉역 7번 출구 앞에 있던  N사 건물에, 면접 보러 온 이들을 불러다 놓고
연봉을 매몰차게 깎아서 직원을 뽑아 쓰던 실장이 있었다.
일단 면접이나 보고 가려고, 실장에게 만나 달라고 부탁을 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연봉을 턱없이 싸게 후려치는 것 같았다.

"좀 더 올려 줄 순 없습니까?" 했더니, 대뜸 한다는 소리가

"당신 같으면 대졸 신입 포트폴리오만 보고 채용을 하겠소?
 연봉이 적다고 생각되거든 다른 회사나 알아 보시구려."

대단히 무뚝뚝한 실장이었다.
실장의 위세에 눌려 연봉흥정은 해보지도 못하고
너무 많이 깍지나 말아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별 대꾸도 없이 잠자코 연봉을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급하게 깎는 것 같더니, 계약서를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면서 굼뜨게 들여다 보고 앉아서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 정도면 됐는데, 자꾸만 더 깎아 내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계약서를 돌려 달라고 해도
실장은 아예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다음 회사 면접 보러 갈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돌려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깎을 만큼 깎아야 채용이 되지,  막무가내로 재촉한다고 채용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일 할 사람이 됐다는데 무엇을 더 깎는다는 말이오?
 실장, 외고집이시구먼. 생활비가 떨어졌다니까요~!!"

 그러자 실장은  "다른 데나 알아 보시구려. 난 안 뽑겠소"

하고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다음 면접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디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자꾸 클레임을 걸면 점점 더 깎이고 늦어진다니까.
 일자리를 제대로 구해야지, 뻗대다가 좋은 자리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계약서를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스마트 폰을 꺼내 트윗(Tweet)을 보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계약서를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계약서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 그 따위로 직원채용을 해서는 신입사원이 오래 버틸 턱이 없다.
 면접자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연봉만 싸게 후려친다.
요즘 프로그래머 안 뽑히는 줄은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실장이다.'

 생각할 수록 짜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들 돌아보니 실장은 태연하게
허리를 펴고서 X박스 위에 키넥트(Kinect)를 바라보고 섰다.
그때, 그가 곁눈질로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내 모습을 주시하고 있음을
눈치 채고 나서야, 비로소 실장이 회사의 유능한 앞잡이 다워 보였다.
실장의 충혈된 눈자위와 거뭇거뭇한 턱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실장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집에 와서 계약서를 내놨더니 아내는 연봉을 엑설런트하게 잘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구석에 들어 앉아 마냥 노는 것보다 괜찮은 일자리가 생겨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놀고 있는 것이나 채용된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보니, 취직이 너무 늦으면 해마다 연봉협상을 놓쳐서
같은 나이라고 해도 연봉이 낮고, 연봉이 너무 높으면 일이 잘 안 풀렸을 경우에
다른 회사로 옮겨 가기가 힘들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액수는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실장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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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 끼던 노인

펌 - 네이버 바이크튜닝메니아
 

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가 갓 빡스 깐 지 얼마 안 돼서 남산에 올라가 살 때다.
남산 왔다 가는 길, 왕십리 역으로 가기 위해 퇴계로서 일단 바이크를 내려야 했다.
퇴계로 맞은편 허름한 센타에 앉아서 타이어를 끼는 노인이 있었다.

타이어를 한 짝 갈아가지고 가려고 끼워 달라고 부탁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타이어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끼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깎지도 못하고 잘 껴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끼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타이어와 휠을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 보고 꿈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쑤셔넣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공기 넣어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척이다. 시간이 바쁘니 빨리 끼워달라고 해도 통 못들은 척이다.
사실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끼우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달라."
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끼울 만큼 끼워야 밥이 되지, 신코가 재촉한다고 미쉐린 되나."
나도 기가 막혀서
"낄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낀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시간이 없다니까."


센터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끼시우. 나는 안 끼겠소."
하고 내 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시간이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끼워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휠 망가지고 늦어진다니까. 타이어란 제대로 껴야지 하다가 안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끼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피우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센터노인은 또 끼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타이어는 다 닳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타이어와 휠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끼기는 아까부터 다 껴 있던 휠이다.

시간이 바빠 과속해야 하는 나는 불유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눈탱이친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센타다.'

생각할 수록 화증(火症)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센타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퇴계로 도로만 바라보고 섰다.
그 때, 그 바라보고 섰던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센타사장 다워보이고 기름때묻어 드러운 손과 검은 목장갑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워졌다.
눈탱이센타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집에 와서 바이크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잘꼇다고 야단이다. 동네에 있는 센타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저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보면,
타이어 어설프게 끼면 힘들어. 라이딩할때 휠벨런스도 안맞고, 같은 타이어라도 그립이 다르며, 공기가 너무 적으면 타이어가 펴지지 않고 슬립해먹기가 쉽다.
요렇게 꼭 알맞는 타이어는 좀체로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센타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바이크는, 카울이 깨지면 빠대를 대고 뜨거운 히팅건으로 말려서 도색을하면
다시 붙어서 좀처럼 깨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사이 바이크는, 카울이 한번 깨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카울에 빠대를 바를 때, 질 좋은 퍼티를 잘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빠대친다."고 한다.

수리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바이크를 사면 국산은 얼마, 그보다 나은 외산것은 얼마의 값으로 구별했고,
두카티같은 유럽산은 3배 이상 비쌌다. 눈탱이 거품이란, 이빨을 까고 구라까기를 아홉 번 한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다섯 번을 깔았는지
열번을 깔았는지 알 수가 없다.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남이 보지도 않는데 무사고일 리도 없고..,
또 말만 믿고 3배나 값을 더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生計)는 생계지만, 바이크를 고치는 그 순간만은 오직 훌륭한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心血)을 기울여 재생 바이크를 만들어 냈다.
이 타이어도 그런 심정에서 꼇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라이더에게 눈탱이과 구라를 까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바이크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센타노인을 찾아가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남산에 올라가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센타가 있었던 자리에 노인은 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쪽 센타문의 바이크를 바라다보았다. 푸른 남산으로 달려갈 듯한 바이크 머플러 끝으로 매연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매연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타이어를 끼다가 유연히 머플러 끝의 매연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야매정비를 하고 있었다. 전에 VF를 철근으로 용접해서 승천쇼바 만들던 생각이 났다.
바이크를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사이는 엔진 조지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애수(哀愁)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사십여 년 전, 타이어 끼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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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 하나의 타이어에도 심혈을 기울여 제대로 끼고자 했던 센터사장의 삶의 자세는 경박하게 대충대충 달리는 성급한 라이더에게 큰 의미로 와 닿는다.
         타이어를 끼던 무뚝뚝하고 늑장을 부리던 한 노인 때문에 결국 시간을 놓쳐 버려 화가 났던 주인공은 집에 돌아와
         참으로 보기 드물게 잘 껴 바이크에 달아왔다는 아내의 반기는 말에 많이 뉘우친다.

이글은 자신이 맡은 일에 노력과 정성을 다해 바이크를 고치고자 하는 센타정신의 고귀함을 드러낸 작품이다.
그런 풍조가 점차 사라져 가는 센터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드러내었다.

* 성격 : 서사적 성격의 수필

* 주제 : 센터 장인정신의 고귀함

* 1줄요약 : 센터에서 타이어를 잘 껴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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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하는 노인

 

벌써 3-4년 전이다. 내가 갓 취업 한 지 얼마 안 돼서 구로공단에서 일 하던 때다.
이른 아침. 찜질방에서 잔 뒤 출근 하러가는 길에, 게임한판 하고 가기위해 근처 PC방으로 향했다.

리듬안마 맞은편 PC방에 구석에 앉아 비쥬얼 스튜디오를 들여다 보는 노인이 있었다.
밤새 잡히지 않는 버그에 대한 조언도 구할겸 소스를 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했더니,

“소스 하나 고쳐주는걸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비싸거든 자네가 고쳐.”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버그나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잇었다. 처음에는 대충 보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스크롤해 보고 저리 스크롤 해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고친것 같은데, 자꾸만 더 고치고 있었다.
인제 잘 돌아는 가는것 같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출근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고치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맡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고친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출근 시간 늦었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고치우. 난 소스 지우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출근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고쳐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지저분해지고 늦어진다니까. 코드란 제대로 짜야지, 짜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고치던 것을 숫제 새로 처음부터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피우며 짜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단축기를 눌러 이렇게 저렇게 컴파일 하고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코드다.

출근 놓치고 지각 해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코딩을 해 가지고는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 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리듬안마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회사에 와서 소스를 내놨더니, 팀장은 완벽하게 코딩했다고 야단이다. 퇴사한 박대리(주1)가 코딩한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팀장의 설명을 들어 보니, 코드가 너무 지저분하면 버그가 생기기 쉽고 같은 코드라도 성능이 떨어지며, 변수 이름이 제멋대로이면 다른 사람에게 코드를 넘겨주어도 쪽팔리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소스는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開作(개작-Open Source)은 혹 컴파일이 안되면 자료형을 바꿔 컴파일 하고 파일이 누락되어 있으면 구글에서 찾아 넣고 컴파일 하면 좀체로 에러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소스는 에러가 한번 튀어나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오래된 開作(개작-Open Source)코드를 갈아엎을때, 깔끔한 최신 배포판으로 잘 받아서 갈아치우기만 해도 컴파일이 되었다. 이것을 최신 리빌드라고 한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배포한다. 이것을 '최신 버전을 릴리즈 한다'라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소스코드를 그냥 통채로 복사해서 붙여넣는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왠지 찝찝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리빌드 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外注(외주)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복사한 코드(Copy&Paste Code)는 얼마, 직접 짠 코드는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구디구빌(NDNB:Nine-Debug, Nine-Build)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구디구빌(NDNB)'란 아홉 번 디버깅하고 아홉번 리빌드 한 것이다. 눈으로 봐서는 다섯 번을 했는지 열 번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클레임 걸지도 않는데 아홉 번씩 디버깅 하고 리빌드 할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코딩은 코딩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코드를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코드를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냈다.

이 소스코드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코더를 해 먹는담.”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코드가 탄생할 수 있담.”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삼겹살에 소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월요일에 퇴근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리듬안마의 지붕 추녀를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섹시한 포스터가 걸려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포스터를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코딩 하다가 우연히 추녀 끝의 포스터를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다가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도연명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회사에 출근했더니 후배가 MFC(Microsoft Foundation Classes)와 리소스 편집기로 코딩을 하고 있었다. 전에 커맨드라인과 배치파일로 힘겹게 코딩하고 컴파일 하던 생각이 난다. 도스를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까만 화면은 볼 수도 없다. '왓콤씨' 이니, '어셈블러'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개발툴들도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문득 3-4년 전 코딩 하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주1) "퇴사한 박대리" - 필자가 자기자신을 희화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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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동 굽던 노인

 

벌써 육개월 전이다. 내가 갓 인터넷 설치한지 얼마 안돼서 푸르나에 살 때다.

속도가 안나 초고속 다운로드 받으려고 토토 디스크 회원가입을 해야 했다.
토토디스크 한쪽 구석에서 야동을 구워 올리던 노인이 있었다. 노모를 하나 다운받고 나가려고 업로드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포인트를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저용량으로 구워줄 수 있습니까?" 했더니,
"저용량으로 구우면 털이나 보이겠소? 포인트가 아깝거든 푸르나가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포인트를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올려나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올리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 정도면 꼴릴만 한데, 자꾸만 확인하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업로드 해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알바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모자이크라도 좋으니 그만 올려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보일만큼 보여야 야동이 되지, 하두리가 재촉한다고 야동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다운받을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확인한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알바 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푸르나 가우. 난 안 올리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로그아웃 할 수도 없고,

알바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올려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낮은 퀄리티에 꼴리지도 않는다니까 야동이란 제대로 골라 올려야지, 떡만 친다고 야동인가."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숫제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피우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버려 디스플러스를 한 개피 꼬나물게 되었다.
얼마 후에야 올리던 야동을 다시 한 번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되었다고 다운 받으란다.
다 올라오기는 아까부터 다 올라와 있던 야동이었다.
알바 시간을 늦게 되고 사장에게 쿠사리 먹을 생각을 하니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업로드 해가지고 누가 다운이라도 받나보자.' 생각할 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바지를 내린 후 크리넥스를 뜯고 있었다.
그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본좌급 오덕후다워 보이고 현란한 손놀림에 내 마음이 약간 누그러졌다.
알바하러 가서 CD를 내놨더니 사장놈은 화질이 예술이라고 야단이다.
난 지금까지 받아놓았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사장놈의 말을 들어보니 화질이 너무 흐리면 털끝에 맺힌 이슬도 보이지 않고
밝기가 어두우면 그늘져서 조개인지 홍합인지도 구별이 가지 않는단다.
요렇게 퀄리티가 높은 것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야동을 굽는 그 순간만큼은 오직 아름다운 야동을 굽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이 CD도 그렇게 구웠을 것이다.
그런 노인이 나같은 찌질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퀄리티가 높은 야동이 탄생할 수 있는가 말이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인공소녀나 같이 해보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노인은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노인의 현란한 핸드플레이가 거룩한 모습으로 떠올랐다.
알바를 하러 갔더니 사장놈이 야동을 보며 3보1탁을 하고 있었다.
문득 야동을 업로드하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p.s 작년 2006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웠던 김본좌 패러디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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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지 그려 파는 청년


벌써 4여 개월 전이다. 내가 갓 오타쿠된지 얼마 안 돼서 의정부에 내려가 살 때다. 서코 왔다 가는 길에, 강남역으로 가기 위해 근처에서 일단 서코를 나와야 했다.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동인지를 그려 파는 청년이 있었다. 동인지를 한 권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동인지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청년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그려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그리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펴보고 저리 펴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그리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그리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키울 만큼 키워야 거유가 되지, 빈유가 재촉한다고 거유가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그린다는 말이오? 청년,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청년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그려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그리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그리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닌텐도DS에 게임을 넣어 하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동인지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동인지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청년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청년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지나가던 레이무 코스프레인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오덕다워 보였다. 신사(변태)다운 눈매와 자동으로

셔터에가있는 손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청년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친구집에 와서 동인지를 내놨더니 친구는 예술이라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친구의 설명을 들어 보니, 로리가 너무 많으면 로리콘으로 오해받고, 누님들이 너무 많으면 누님연방으로 오해받는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동인지는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청년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애니는 혹 작붕이 나타나면 DVD판으로 출시될때 작붕을 고치고 다음부터는 작붕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그러나, 요새 애니는 작붕이 한 번 나타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미연시만 해도 그러다. 옛날에는 미연시를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윗질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CG에 정성이 들어간것은 3배이상 비쌌다,  눈으로 보아서는CG에 정성이 들어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동인지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청년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청년이 나 같은 초보덕후 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청년을 찾아가서 한정판 미연시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서코에 상경하는 길로 그 청년을 찾았다. 그러나 그 청년이 앉았던 자리에 청년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청년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출처] 방망이 깍던 노인 패러디 [동인지 그리는 청년] (/ TYPE-MOON /「 α 」) |작성자 나르디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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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망이 깍던 노인 - 클컴판 패러디


벌써 4년 전이다. 내가 갓 '클로즈 컴뱃'을 구입한 지 얼마 안 돼서 클컴 동호회 사이트에 접속했을 때다. 클컴사를 방문하는 길에, 회원들과 멀티전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MSN을 등록해야 했다. 회원들 명단을 넣고 기다리자 '[클컴사]'라고 이름을 붙인 접속자가 있었다. 클컴 4탄을 실행시키고 한 수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것저것 모드를 깔아야 되는 것 같았다.

"좀 그냥 할 수 없습니까?" 했더니,

"오랜만에 한 판 하는데 재미없게 하겠소? 귀찮으면 다른 접속자를 알아보우" 대단히 무뚝뚝한 회원이다. 더 재촉하지는 못하고 잘 알려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기본 패치를 설치하자고 했다. 처음에는 빨리 될 것 같더니, 그래픽 패치도 깔아보고 이리 저리 테스트도 하더니, 마냥 쪽지가 없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 깔고 하면 됐는데, 자꾸만 화력 강화 패치까지 깔라고 한다. 이제 다 되었으니 그냥 IP를 알려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엄마 오실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깔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시작해요."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패치하고 모드를 깔아야 게임이 되지, 시작을 누른다고 게임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기본 설치만으로도 하는 사람이 많은데 무엇을 더 깐단 말이오. 참 외고집이시구먼, 부모님 오신다니까요."

상대방은 퉁명스럽게,

"다른 회원하고 하시요. 난 안 하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냥 끊을 수도 없고, 다른 회원은 어차피 보이지도 않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깔아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헤깔려서 늦어진다니까. 패치란 순서대로 깔아야지. 이것저것 깔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이다. 이번에는 설치를 하였으니 재부팅을 해야 한다고 태연스럽게 쪽지를 주고, 같이 나가자는 것이 아닌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재부팅을 하고 말았다. 얼마 후에 접속을 해서 이리저리 확인을 하더니 다시 쪽지를 준다. 다 설치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게임이다.

어머니가 오셔서, 다음에 게임을 해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설치를 해 가지고 한 판도 하기가 어렵다. 상대방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시간만 되게 끈다. 통신상 예의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회원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MSN을 보니 그 회원은 '클컴 4탄 설치 완료. 멀티 하실 분, 쪽지 주세요'라고 대화명을 바꿨다.

그 때, 그 대화명이 어딘지 모르게 고수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이모티콘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상대방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다음날 컴퓨터를 켰더니, 동생은 잘 깔았다고 야단이다. PC방에 설치했던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PC방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앖았다. 그런데 동생의 설명을 들어 보니, 기본 패치를 안 깔면 게임중에 밸런스가 맞지 않고, 같은 게임이라도 버그가 잘 나며, 너무 많이 깔면 상대방, 특히 외국인과 패치 버전이 맞지 않아 게임이 안 되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설치는 좀체로 완료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회원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 게임은 기본 패치나 모드가 없어도 한 번 설치로 상대방과 곧잘 게임을 할 수 있었고, 게임이 시작되면 좀체로 튕기지 않았다. 그러나 요새 게임은 한 번 엉키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게임을 설치할 때 패치를 까는 순서가 있어 꼭 차례대로 했다. 이렇게 설치하고 재부팅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실행한다. 이것을 '세팅'했다고 한다. 물론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플러그 인으로 한 번에 설치한다. 금방 설치되나 안정적이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인터넷이 정액제라, 튕기면 다시 하면 될 것을 몇 시간씩 걸려 가며 세팅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모드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모드를 다운받아 설치하면 정식 패치는 버전 얼마, 사제 패치는 버전 얼마로 구별했고, 캠패인 모드 같은 것은 세배 이상이나 용량이 많았다. 3탄 웨스턴 프론트 모드만 해도 버전이 9.2까지 나왔는데, 9번이나 크게 내용이 변했을 리 없고, 또 그것을 믿고 400메가 짜리를 다운 받을 사람도 없다. 옛날 게이머들은 게임은 게임이오, 모드는 모드지만,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안정되게 세팅한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만족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게임을 설치해 냈다.

어제 클컴 4탄도 그런 심정에서 자세하게 설치법을 알려준 것이다. 나는 그 회원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설치를 해서 무슨 게임을 한담' 하던 말은 '그런 회원이 나 같은 초보자에게 멸시와 증어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완벽한 세팅을 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회원에게 쪽지를 보내 고맙다며 진심으로 사과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컴퓨터를 켜는 길로 MSN에 접속했다. 그러나 그 회원은 오프라인 상태로 접속하지 아니했다. 나는 MSN 메신저를 보고 멍하게 앉아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고맙다고 할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클컴사에 접속해서 게시판을 바라다보았다. 게시판에 새로운 패치와 모드에 대한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아, 그 때 그 회원은 저 게시물을 읽고 있었구나. 열심히 패치를 설치하면서도 게시판을 체크하던 회원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본 게임을 IBM 호환 컴퓨터에 설치하려면 다음 순서대로 합시다.'라는 설명서의 문구가 생각났다. 오늘, PC방에 갔더니 동생이 팬저 제네럴2을 설치하고 있었다. 전에 펜저 제네럴을 설치해서 실행하던 생각이 난다. 팬저 시리즈를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게임 하는 것도 구경할 수 없다. 웨스트 프론트니, 배틀 그라운드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게임들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년 전에 클컴 설치를 가르쳐 주던 클컴사 회원의 모습이 떠오른다.


- 클컴사 파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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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태우던 트롤전사


벌써 4개월여 년 전이다. 내가 갓 와우 시작한지 얼마 안 돼서 크로스로드에 랩업 할 때다.

퀘하러 온 길에, 통곡의 동굴을 가기 위해 크로스로드에서 일단 파티를 모아야 했다.

크로스로드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버스를 태우는 트롤전사가 있었다.

버스 한번 타보려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퀘스트 다 하는데 에누리 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트롤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태워나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잡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두꺼비도 잡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잡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가자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겜방 정액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잡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갑시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잡을 만큼 잡아야 퀘가 되지, 달린다고 퀘탬이 나오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퀘할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잡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인던 초짜시구먼, 정액 시간다 됐다니까.”

트롤전사는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시우. 난 안 하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진행하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정액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잡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애드나고 위험하다니까. 버스란 제대로 태워야지, 잡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잡던 것을 멈추고는 태연스럽게 나랄렉스를 보고 춤을 추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나랄렉스까지 깨우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말한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퀘스트다.
 
정액 다대고 추가결제를 해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버스를 태워서야 버스가 될 턱이 없다.

쪼랩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매너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트롤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트롤전사는 태연히 허리를 펴고 톱니항를 바라보고 섰다.

그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트롤다워 보이고, 구부러진 허리와 큰 이빨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트롤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친구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는 버스 잘탓다고 야단이다.

자기가 태워주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친구의 설명을 들어 보니, 진행이 너무 빠르면 퀘탬을 놓치거나 녹탬을 놓치기가 쉽고 같은 속도라도 너무 몰아서 잡으면 퀘탬을 집기가 수월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나랄렉스 까지 진행해주는 버스는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트롤전사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인던진행은 몹이 떨어지면 몹에 대고 도발을 걸고 곧 방어구 가르기를 바르면 딜 쩔어도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몹들은 한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몹에 몸빵 뜰때, 방태를 취하고 가시버프를 받으며 방어구 가르기로 어그로를 유지했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탱킹뜬다 라고한다.

물론 초반 댐딜이 약하다.

그러나 요새는 도발만 써서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방태를 찍어가며 탱킹을 뜰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힐러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힐러라 해도 드루는 회복을 찍어야했고, 기사는 신성, 주술사는 복원, 일마에 어둠용 숨결까지 빨면 최고의 힐러였다.

어둠용 숨결이라 함은 악령의 숲에 나오는 피와 마나 회복탬이다.

눈으로 봐서는 어둠용 숨결을 먹는지 생명석을 먹는지 알수없다.

단지 말을 믿고 가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특마를 빨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약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골드는 골드요, 퀘스트는 퀘스트지만, 파티를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자신의 역할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보스 몹을 잡아 왔다.
 
이 버스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트롤전사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버스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쪼랩들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그런 교육적인 버스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특치에 혈장술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크로스로드로 그 트롤전사를 찾았다.

그러나 그 트롤이 앉았던 자리에 전사는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트롤전사가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톱니항를 바라다보았다.

쪼랩들 부족한 톱니항에 고랩 얼라들이 꼬장을 피우고 있었다.

아, 그때 그 전사는 저 얼라를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버스를 태우다 우연히 톱니항의 찌질얼라을 바라보던 트롤전사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여기는 전쟁섭 얼라들 감사요 어서 외쳐라 경치 올려라’ 쓰랄로티 1집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집에 들어갔더니 후배들이 가시덤불 우리 버스를 태우고 있었다.

전에 가시덤불 우리에서 시체제조기 작업을 했던 때가 생각이 난다.

시체제조기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오닉시아 막공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라그나로스 드랍이니, 네파리안 드랍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개월 전 버스를 태우던 트롤전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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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일러 세팅하는 노인

 

오랜만에 하는 글짓기 놀이 입니다

장문이라 꽤나 걸리네요

 

벌써 몇년 전이다. 내가 갓 자전거에 입문한지 얼마 안 돼서 한참타고 다닐때다.

시외 왔다 오는 길...인근 시외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다가 올때면 진이 빠져  기차를 타고 오곤했다.

그 기차역전앞 프론트전방에는 길가에 앉아서 드레일러를 세팅하는 노인이 있었다.
안그래도 변속할때마다 매끄럽지 않아 세팅이나 받을까 했더니

값을 리먼브라더스 파산이전 시세로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드레일러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샵에 가서 세팅받으시우!."
대단히 섹시한 노인이었다.다음에 들었다 더 깎지도 못하고 셋팅만 잘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세팅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세팅하는것 같더니,
날이 저물도록 올라타보고 돌려보고 젝나이프해보고 스핀턴해보고  윌리해보고 스키딩해보고  꿈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만지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척이다.

기차 시간이 바쁘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들은 척이다. 사실 기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황진이 왕 앞에서 테크토닉 출 지경이다.


"이제 그만 세팅해도 되니 그만 달라."
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바를만큼 발랄야 좋은 자전거지 데칼만 바꾼다고 아팔란치아가 메리다되냐."
나도 기가 막혀서
"탈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세팅한단 말이오. 노인장 세팅변태구려. 전 논폴딩미벨이라 차가 끊기면 타고가야된단 말이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샵 가오. 나는 안하겠소."
 하고 내 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가차 시간이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세팅 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세팅이란 제대로 해야지 서두르면 체인이 틴다니깐."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드레일러를 빼놓고는  태연스럽게 중고장터를 기웃거리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세팅을 하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드데일러 세팅 나사산이 다  없어질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자전거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자전거다.
기차를 놓치고 접히지않으니 타고 와야하니 나는 입에서 사카린내음이 나는데 도리가 없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자전거는 조선쌀자전거밖에 모르는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 수록 화증(火症)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카본프레임 mtb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그 바라보고 섰던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워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동호회 나가서 변속을 하니 형들이 칼같이 변속이 된다고 야단이다.

샾에서 미케닉들이 한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난번 세팅이나 이번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형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드레일러가 너무 쳐져있으면 턱에 걸리기 일수고

너무 당겨져 있으면 체인에 무리가 가서 쉽게 마모된다.

그렇다고 듀라에이스로 업글을 한다해도 결국은 세팅이라는것이며,

요렇게 정확하게 세팅하기가 좀체로 쉽지 않다는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소라(sora, aoi 아님)만 해도 그렇다. 완차(完車)를 사면 보통 바로 탈거는 얼마, 좀타고 내린건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계중에 청소를 했으니 새것과 다름없다고  제값을 받는다.

눈으로 봐서는 안에 구리스를 친건지 그냥 겉만 닦은건지 알길이 없다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 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 다 분해를 해서 플리에 구리스를 치고,  그것을 믿고 제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튜닝은 돈지랄이요, 자전거는 유사 엠티비 토네이도지만,

라이딩을 하는 그 순간만은 오직 타는것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땀을 흘리며  자전거를 탔다.

이 드레일러도 그런 심정에서 세팅했을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청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저렇게 세팅을 할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 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테프론 구리스에 아이스툴즈 공구셋이라도 드리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업힐을 해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산언저리의 라이더를  바라다보았다. 경사가 15%는 되보였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경사를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드레일러를 세팅하다가 우연히 산언저리의 경사를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자전거에 1천만원을 발라본들 다방언니 텍트보다 느리드라...교훈이 새어 나왔다.

 

오늘 라이딩을 갔더니 회원들이 뒷드레일러를 울테그라로 업글을 했단다. 전에 2200을 사용하던게 생각이 난다.

2200  구경한지도 참 오래다. 요새 그 골반빠지는듯한 털컥털컥질 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2200이니 데오레니 아세라같은 애수(哀愁)를 자아내던 그 드레일러들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달전 전 드레일러 세팅하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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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 만드는 노인-조선 후기 버전

벌써 십 년 전의 일이다. 서평포에서 만호를 마치고 한양 훈련도감으로 돌아갈 날짜를 달포쯤 앞두고 동래에 들러 한 조총 장인을 찾았다. 임소에 따라와 시중들던 오춘이가 말하기를 ‘좌수영 남쪽으로 오리를 가면 길가에 호랑이 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그 옆 호암리에 한 이름난 늙은 조총 장인이 있어 그가 만든 조총은 상수가 쏘면 백발백중이요, 틀림이 없다’고 하기에 훈련대장 영감께 선물이나 할 요량으로 조총 장인을 찾은 것이다.

훈련대장 영감은 병장에 관심이 많아 절품의 병기를 선물하면 크게 기뻐하며 베푸는 은혜가 적지 않다. 하물며 평소에 대장 영감에게 신세진 바가 적지 않은 나로서는 오춘이의 말을 넘겨 버릴 수가 없었다.

이름난 장인이라 하여 기대를 잔뜩 했건만 노인의 일하는 몰골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경성에서 조총을 만들 때는 소로장, 야장, 나사정장, 연마장, 조성장, 이약통장, 초련목수장, 조가장, 장가장, 천혈장, 취색장, 기화장, 칠장, 필장 등 온갖 장인들이 달라붙어 조총을 만들어 내는 게 항법이다. 헌데 이 장인 노인은 혼자서 조총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일 도우는 젊은 장인 하나 없이 철장과 목장까지 홀로 겸하는 늙은 장인을 어찌 믿으리오.

용모도 꼬장꼬장한 것이 고집과 심통이 얼굴에 한가득이다. 뿐만 아니라 일하는 주변 꼴은 더욱 한심하여 다 쓰러져가는 초가 한 곁에 근철이며 두석이며, 가시목이 여기저기 처박힌 꼴이 미덥지 아니했다. 의구심이 가득했으나 이왕 찾아온 길, “품삯은 넉넉히 줄 터이니 상상품(上上品)으로 잘 만들도록 하거라”고 청했다.

일어서서 인사를 하며 일감을 준 것을 감사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이 노인네가 말없이 한참 내 얼굴을 보더니 선금을 청한다. “나리. 상상품으로 만들자면 재료부터 다시 구해야하니 삭미를 선금으로 좀 넉넉히 주시길 바라나이다”하지 않는가. 꼴을 보니 재료도 제대로 못갖춘듯하여 오춘이로 하여금 동래읍내로 나가 쌀 3석을 팔아 가져다 주라 시키고 돌아왔다.

장인이 언제 찾으러 오라는 말은 없었으나 경성 군영에서 제총할 때를 생각하여 보름쯤 지나 다시 장인을 찾았다. 연마도 모두 마친 미려한 조총을 머리에 떠올리며 찾아갔건만 아직도 조성 하나 안 달린 총열만 만지작거리고 있지 아니한가.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라 한 소리를 하려는데, 옆에 서있던 오춘이가 내 눈치를 보더니 먼저 냅다 노인네에 달려가 고함치듯 호통을 쳤다. 오춘이 자신이 추천을 했으니 잘못하면 화가 자기에게도 미칠 것임을 염려했으리라. “보름이 지나 찾아왔건만 아직 총열도 만들지 않았으니 어떻게 된 것이오.”

이 소리를 듣던 노인네가 오춘이를 힐끗 쳐다보더니 대답도 않고 계속 총열만 만지작거리고 있지 않은가. 언뜻 보아하니 이미 겉모양으로는 다 만들어진듯한 총열을 활 같은 것에 매달고 무언가를 하고 있긴 한데 대답도 없는 꼴이 심히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노함을 참을 수 없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네 이놈. 시골에 사는 무지렁이 노인네가 국록을 먹는 관인을 능멸하려하느냐. 내 미리 너에게 삭미로 쌀 석 섬을 넉넉히 주고 보름이나 지나 찾아왔건만 조총을 완성시키기는커녕 아직도 총열만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니가 나를 얼마나 우습게 여긴 것이냐”
내가 화를 냈건만 노인은 천하태평이요, 표정하나 흐트러짐 없이 묵묵히 총열만 만지작거리는 것이 아닌가.

왼쪽 품에 차고 있는 환도를 뽑아 이 무엄한 상것의 목을 치고 싶었으나 관로에 흠을 남길 수 없어 화를 참고 다시 위엄을 갖추어 호령을 했다.
“어찌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냐. 이 고을 동래부사 어른께 청을 올려 네놈을 물고를 내어야만 진정 사리를 알 것이냐.”

그제야 노인은 일하는 것을 멈추고 천천히 일어서더니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닌가.
“나으리. 경조 군기시나 화기도감에서 조총을 만드는 곳을 보신 적이 있나이까”
“그것을 어찌 묻느냐. 네가 묻는 말에는 대답 않고 무슨 허튼 요설로 나를 시험하려 하느냐”

무부의 몸으로 정기를 실어 호통을 쳤건만 노인네도 보통은 아니었다. 평소 진영에서 내 고함을 지르면 군졸은 물론이요 군교조차 정신이 혼미하여 죽을 상으로 내 표정을 살피기에 급급하거늘 이 노인네는 전혀 기죽지 않는 표정으로 차분히 말을 이어가는 것이 아닌가.

“나으리 숙철로 주물하여 총열을 만든다면 보름이 아니라 삼일 밤도 지나지 않아 만들 수 있사옵고, 정철을 두드려 양통상포로 타조해도 열흘이면 족히 총열을 만들 수 있나이다. 허나 소인은 그렇게 만들지 않사옵니다.”

양통상포니 알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이 무지렁이 촌로는 아니구나하는 느낌도 언뜻 들었으나 나를 무시하는 느낌이 들어 다시 한 번 호령을 했다.
“네 놈은 무슨 괴이한 제총술을 쓰기에 그리 시일이 오래 걸린단 말이냐. 속히 묻는 말이나 대답하지 않고 무슨 잔말이 많은 게냐”

그럼에도 이 노인네는 천하태평으로 사설을 이어갔다.
“저 폐주 때의 고 좌상 월탄 합하께옵서는 단통에 한 달간 총열을 뚫어 만드는 것을 조총 중에 상품으로 친다하셨나이다. 일삭의 반도되지 않은 보름 만에 들이닥치시어 대뜸 고함부터 지르시니 소인은 나으리가 화를 내는 이유를 모르겠나이다.”

삼남월과 조총은커녕 촌동네 속오군에게 자비조총이나 팔아먹으며 연명함직한 노인네 입에서 월탄이란 이름이 나오니 저으기 놀라면서도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월탄이 좌상을 지냈다한들 이미 국모를 폐하는데 이름을 올려 국가의 흉적으로 찍힌 몸이 아니던가.

“네 이 놈. 어느 안전이라고 폐모론에 휩쓸리어 이미 악인의 오명을 벗을 수 없는 자의 말을 운운하며 거론한단 말인가.”
“시골에 사는 노인네가 조정의 일을 어찌 알겠냐마는 고 좌상이 정청에 참여하긴 했으나 폐주 때의 잘못이 어찌 모두 좌상의 잘못이겠습니까. 하물며 그 죄는 하늘에 분명하다할지라도 월탄이 남긴 비결로 말하자면 지금도 군영에서 즐겨 보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리이다.”

하긴 월탄이 쓴 비결은 우리 진의 화포교사도 손에서 놓지 않은 책이니 노인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월탄이 쓴 책에 그런 말이 있었던가. 비결이나 홀기니 하는 것들은 하급 군교들이나 보는 책이라 믿고 숙독을 하지 않았으니 내심 의아심이 들면서도 달리 반박할 길이 없었다. 헛기침을 한 번하며 다시 한 번 호통으로 다짐을 받는 수밖에.

“네 놈이 그리 자신만만하니 네 보름을 더 기다려 주마. 만약 보름이 지나 찾아와도 네 놈이 조총을 완성하지 못하면 물고를 면치 못하리라.”
그럼에도 이 노인네는 여전히 화난 듯, 무표정인듯 또다시 내 얼굴만 쳐다본다.
“어찌 대답을 않는 것이냐. 네 노인이라 다그침을 자제하고 있거늘 심히 태도가 불공스럽구나.”

그제서야 그 노인네가 느리고 불손한 말투로 내놓는 대답.
“나으리. 찬혈에만 한 달은 걸리는데 이제 보름을 먼저 주시고 다시 보름 뒤에 찾아오면 소인이 연마는 언제 할 것이며, 용두는 언제 만들어 붙이고 목가는 언제 이어 붙이리이까. 한 달 뒤에 오시면 실망치 아니하리다”

어이가 없어 노인네를 쳐다보니 무표정한 모습 그대로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으나 임기마치고 경조로 돌아가야 할 관인이 임소를 벗어나 타관에서 사고를 쳤다는 소문이 날까 저어하여 그냥 한 달을 더 주기로 하고 거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오춘이놈 모습을 보니 좌불안석이다. 자신이 추천을 잘못하여 상전을 화나게 했으니 저도 민망할 것이다. 내 눈치를 슬슬 보더니 “나으리. 저 노인네가 저래도 물건 하나는 기가 막히다 하니 노여움을 푸시옵소서”라며 한마디 던진다.

약속한 한 달 뒤에 해뜨기 무섭게 다시 찾아가니 노인 손에 대충 조총 비슷한 것 하나는 들려 있었다. 살펴보니 이미 완성은 된듯하것만 노인네는 조총을 건네줄 생각을 않는 것이 아닌가.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며 갈기도 하고 망치로 치기도 하며 무언가를 하는데 점심 때를 훌쩍 넘겨 해질녘이 되도록 완성되었다는 소리가 없다.

이제는 이골이 나서 어디 네 놈 하고 싶은데로 해보거라는 심정으로 묵묵히 지켜보다 오늘 안으로 끝날 것인지 문득 의구심이 들 지경이 되어서야 노인네가 조총을 오춘이에게 건넨다.
“이제 완성이 되었소”
완성? 이미 내가 사시에 노인네를 찾아왔을 때 조총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이미 완성된 물건을 하루 종일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는 모습을 지켜봐야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런데 보니 무슨 가죽으로 된 활집(궁대)처럼 생긴 물건에 조총을 넣어서 건네는 것이 아닌가.
“이 가죽 활집 같은 것은 무엇인고”
질문을 했으나 이 노인네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지 않는가. 하루 종일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노인과 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안절부절못하던 오춘이가 “이 노인네가 어느 안전이라고 자꾸 대답을 늦추는 것이오. 냉큼 대답 올리시오”라며 역성을 든다.

그제서야 노인네가 하는 말. “제일 상품으로 치는 누렁이 똥개 가죽으로 만든 황구총투이옵나이다. 장마철이지만 황구총투 하나면 한양까지 올라가시는 길에 총 녹쓸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것이옵니다.”
그러고 보니 무과 동방으로 함경도를 전전하던 친구 한 명이 개가죽으로 조총 총집을 만들면 오래 보관하는 게 그만이다라는 말을 하던 것이 생각났다. 이것이 바로 그 황구총투란 말인가.

부탁하지 않은 부분까지 챙긴 그 마음새가 갑자기 고맙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밉쌀스럽게만 보이던 노인의 표정에 언뜻 상것에 어울리지 않은 비범한 기상이 엿보이는 것도 같았다. 하여간 노인과 더 이상 입씨름하기도 지쳐 조총을 받아 들고 돌아오는 길을 재촉했다.

한양으로 올라와 북촌 웃대 훈련대장 댁에 조총을 올리면서도 내심 걱정스러웠다. 별 것 아닌 조총 따위를 선물이랍시고 올린 미령한 인간이라고 차갑게 핀잔 주시는 건 아닐까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조총을 받아든 훈련대장 어른의 표정이 환하게 펴지는 것이 아닌가. 황구총투에서 조총을 꺼내자마자 마당으로 뛰어나가 밝은 햇빛에 조총 총열 안쪽을 한참을 비쳐 보시었다. 이내 후조성으로 전조성을 겨누는가하면 오른쪽 대식지로 방아쇠를 당기며 준적의 자세를 취하던 훈련대장 어른이 크게 웃으시기까지 했다.

“무천아. 네 어디서 이런 조총을 구해왔느냐. 예전에 군영에 몇 자루에 남아있던 항왜들의 조총만큼이나 절품이구나. 총열 안쪽에 찬혈한 모습을 보니 근래 장인들의 솜씨가 아니구나. 조총은 다른 것은 필요 없고 단통에 찬혈한 것이 제일이요, 급하게 서둘러서 만드는 것이 능사가 아니니라. 하루에 수 치조차 못뚫어 한 달이 걸리더라도 총열 안쪽이 거울에 미인이 비치듯 반듯하고 미끈한 것이 상상품이니라.”

조총을 쳐다보며 마냥 웃던 훈련대장의 표정이 갑자기 싸늘하게 식었다. 혹 무슨 잘못된 것을 발견했나 싶어 마음이 조마조마하던 차에 대장 어른이 조용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하명하시었다.

“경조 군영에서 부리는 장인들도 이런 상상품을 만드는 장인이 없거늘 네 어디서 이런 조총을 구해 왔단 말이냐. 총가의 마무새를 보니 근자에 만든 것이 분명하거늘, 이 조총 한 자루가 문제가 아니다. 당장 이 조총을 만든 장인을 군영으로 데려 오거라. 삭료는 넉넉히 쳐준다고 이르고 경조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거라”

훈련대장 어른의 명령에 놀라 허둥지둥 동래로 다시 내려갔다. 하지만 끼니도 거르며 급하게 달려간 노인네의 집은 이미 폐가다. 한양에 올라갔다 되돌아온 20일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호암리 마을에 들러 급하게 사정을 물어보니 나흘 전에 운명했단다.

“조총 맹글어주고 받았던 쌀 석 섬 중에 재료를 사고 남은 쌀 한 섬이 있단 소리를 듣고 빚쟁이들이 득달같이 달려가 쌀을 모조리 가져가 버렸다 카네요. 결국 그 노인네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었다 아임미까. 찬혈을 한다케도 삼일이면 충분한 것을 한 달이나 걸려 구멍을 뚫겠다고 그러고 앉아 맹글고 있으니... 그렇게 굼벵이처럼 느리게 맹근 탓에 삭미가 비싸기만 한 조총을 누가 살끼라고 나서겠는교. 속오군 자비조총은 두 섬 가격을 불러도 비싼 거 아임미까. 그카다 보잉 조총을 제대로 팔지 못해 평소에도 거의 굶고 살았다 아잉교. 보름짜리 조총은 쓰레기라며 고집을 피우더니...그 참 노인네가 물정 없이 고집만 세 가지고...”

아 훈련대장 어른이 불같은 호령을 내릴 터인데 이제 어찌할 것인가. 20년 넘게 무부로 살아오면서도 장인 솜씨 하나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으니 내 인생도 가련치 아니한가. 한양으로 돌아오면서 발걸음 한걸음이 천근만근처럼 무겁기만 했다.

그 후로 십년. 8도의 수많은 진영을 돌아다니면서도 그 때 그 노인네만큼 조총을 잘 만드는 장인은 만나보지 못했다. 훈련대장 어른께 올렸던 그 조총을 쏘아 본 훈국의 군교들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 만든 조총이라며 지금도 감탄을 마지 않는다. 그 후로 훈련대장 영감은 대장 직임을 넘어 우상의 자리까지 오르셨으나 나만 보면 손을 부여 잡고 한 숨을 쉬시니 가히 민망할 따름이다.

이제는 어지간한 조총 장인들은 단통에 찬혈해서 조총을 만든다하지만 사흘 걸려 찬혈한 것인지 한 삭 걸려 찬혈한 것인지 과연 누가 알아볼 것인가. 방포를 하고서야 그 때 그 노인의 조총처럼 절품이 아님을 한탄할 뿐. 하물며 끝내 그 묘리를 알수 없는 노인네만의 숨겨진 비결은 말할 것도 없다.

산악의 교교함도 높은 것이 아니요
일월의 광채도 환한 것이 아니로다
비록 이름 없는 촌부로 삶을 마쳤으나
그대의 솜씨야말로 능히 하늘에 다다랐으니...




<용어해설>

* 서평포- 현 부산 사하구 일대에 위치한 지명. 경상좌수영 소속 수군 진영이 있었음.

* 호암리- 현 부산 수영구 호암초등학교 주변을 지칭하던 조선시대 지명.

* 가시목-조선시대 창자루와 조총 총가용으로 주로 사용되던 나무 품종.

* 삼남월과 조총-경상 전라 충청 등 지방 관아에서 자체 경비 부담으로 매월 일정량을 제작하던 조총. 조선시대 월과조총 납품은 거대한 이권사업으로 간주되어 상인들의 납품권 장악 경쟁이 치열했음

* 속오군 자비조총-일종의 예비군에 해당하는 속오군이 자기 비용으로 구입하는 조총. 조정과 지방 관아의 재정만으로는 필요한 총기를 충당할 수 없어 개인 비용으로 무기를 제조해 속오군 훈련에 참여하는 것을 장려하고 그에 따른 특혜를 부여하기도 함.

* 양통상포- 반원 형태의 총열 두 개를 단조로 결합시켜 총열을 만드는 전통 기법.

* 찬혈-단조로 만든 총열에 구멍을 뚫는 방식으로 총열을 완성하는 전통 기법. 2인 1조로 빨리 제작할 경우 3일만에도 이 공정이 가능했으나 1개월 정도 시간을 넉넉잡고 품을 들여 제조하는 것을 최고급 조총으로 간주했음

* 월탄-임진왜란 당시 체찰사로 활약하고 광해군대에 좌의정까지 지낸 한효순의 호. 인목대비 폐모론 때 반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조반정이후 역신으로 낙인 찍힘. 임란 직후 화약무기에 관한 저서인 신기비결을 썼음. 역신으로 간주된 자의 글은 모조리 소각하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한효순의 신기비결은 그 실용성 때문에 계속 살아남을 수 있었음

* 사시-오전 9-11시 사이를 지칭하는 조선시대 시간 단위

* 총투-조선시대 조총에 사용하던 총집. 누렁이 개가죽으로 만든 것을 가장 상품으로 간주했음. 녹 쓰는 것을 방지하는데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

* 무과 동방-같은 해에 열린 같은 시험에서 무과시험에 합격한 동기생.

* 전조성-조선시대 조총의 가늠쇠

* 후조성-조선시대 조총의 가늠자


http://lyuen.egloos.com/v/482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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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둥 지키던 검사



벌써 한달 전이다. 내가 만렙찍은지 얼마 안 돼서 포화란 인던 다닐 때다.
돼지 농장 왔다 가는 길에 남해함대로 가기 위해 용기둥에서 일단 파티모집을 해야했다.
남해함대 앞 용기둥 길 가에 앉아서 경비를 서고 있는 검사가 있었다.

파티를 한 번 해보려고 부탁을 했다. 어글이 굉장히 잘 튀는것 같았다. 좀 잘좀 탱하라고 했더니,

"검사에게 어글을 기대하려드오? 못참겠으면 다른 파티 가시오"

대단히 무뚝뚝한 검사였다. 더 까지도 못하고 피만 더 까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막찌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깍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여기서도 쳐보고 저리서도 쳐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평타질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발도질 해도 될거같은데 자꾸먼 더 출혈 걸고있다.
인제 출혈 5됐다고 해도 못 들은 체한다. 타임어택이 가까우니 빨리 딜하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점점 타임어택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딜하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파티장이 나가라는데 무얼 더 친단 말이오? 검사, 외고집이시구려. 타임어택 남은 시간이 없다니까……."
검사는
"다른 사람 구하우. 난 안 하겠소."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클리어는 안될거 같고, 될 대로 되라고 체념(諦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탱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출혈이 풀린다니까. 공략은 제대로 해야지, 출혈3까지 걸고 말면 쓰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딜하던 것을 서서히 하며 태연스럽게 막찌만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치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타임어택에 걸릴것 같았다.
또, 얼마 후에 상태이상창을 이리저리 살펴 보더니, 다 됐다고 발도질을 한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되어 있던 출혈5이다.

타임어택을 놓치고 다음 파티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탱을 해 가지고 탱이 될 턱이 없다.
파티 본위(本位)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
불친절(不親切)하고 무뚝뚝한 검사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검사는 태연히 허리를 펴고 용기둥의 불을 바라보고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검사다워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 그리고 굵은 몽둥이 검 디자인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검사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조금은 덜해진 셈이다.

직업게시판에 와서 딜량과 피깍은 이야기를 했더니, 사람들은 많이 뺐다고 야단이다.
파티스펙보다 훨씬 많이 뺐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파티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고수의 설명을 들어 보면,
출혈이 없으면 높은 공으로도 클리어를 못하고, 권탱으로 가면 너무 쉬워 재미가 없고, 드리블을 하면 실력이 늘지 않고,
요렇게 딱 정공법 공략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검사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검사는, 보스몹이 큰거 한방을 쓸 때 셀합으로 끊고 파티를 잘 지켰다. 그러나 요사이 검사는
스킬 한번 쓰면 45초 기다리기 일수다. 예전에는 검사가 탱을 서기도 했다. 이것을 '검탱 한다'고 한다.

게시판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거지같은 활력에 대해 하나되어 반대했고 드러눕고 글쿨도 삭제시켰다.
글쿨이란 글로벌 쿨로 모든 스킬에 후딜이 있는 것이다. 안해보고서는 그 불편함을 알 수가 없다.
이게바로 클부심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하지도 않았는데 쿨탐반대를 할리도 없고 클베의 재미를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옛날 검사들은 딜은 딜이요, 셀합은 셀합이지만, 탱을 하는 그 순간만은 오직 탱만에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心血)을 기울여 공략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그 출혈도 그런 심정에서 걸었을 것이다. 나는 그 검사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탱을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검사가 나 같은 뉴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공략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 졌다.

나는 그 검사를 찾아가 포화란파티에 파장이라도 드리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지역챗으로 그 검사를 찾았다. 그러나 그 검사가 앉았던 용기둥에 검사는 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용기둥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남해함대의 입구를 바라다보았다. 마우스를 가져가니 영웅던전 표시가 떴다. 아, 그 때 그 검사가 저 표시를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용기둥을 지키다가 유연히 인던 입구를 바라보던 검사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던전 안에 들어갔더니 권사가 이문탱을 하고있다. 전에 포화란을 검탱으로 잡던 생각이 난다. 검탱을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사이는 어검쓰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애수(哀愁)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몇 개월 전, 탱을 하던 검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http://bns.plaync.com/board/job/article/2029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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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트 대던 노인


벌써 몇 일전 일이다. 서울 왔다 가는 길에, 야구를 보기 위해 잠실운동장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잠실 운동장 경기장에 야구 감독하던 노인이 있었다. 야구나 한 판 보려고 표 값 좀 깎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표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야구표 한장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이겨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번트만 대고 있었다. 처음에는 강공을 하는가 하더니, 날이 저물도록 이리 번트대고 저리 번트대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쳐도 될거 같은데, 자꾸만 번트를 대고 있었다.


"병살 나도 좋으니 그냥 치게 두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차근차근 해야 점수가 나지, 그냥 강공한다고 점수가 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팬이 강공이 좋다는데 무얼 더 번트를 댄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지루해 죽겠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그냥 다른 팀 팬하우. 한화가던가."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칡빠 되기는 싫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점수가 안난다니까. 점수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쳤다가 병살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주자 1,2루에서 4번타자에게 태연스럽게 번트를 지시하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게임이 다 끝났다고 한다. 사실 경기는 아까부터 다 끝나있던 경기이다.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경기를 해 가지고 팬이 많을리가 없다. 팬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일류선수만 되게 부른다. 팬서비스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집에 와서 야구표를 보여줬더니 10년 골수 엘지빠 아내는 재밌는 경기였다고 야단이다. 예전 순철이보다도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감독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좋은선수 다른팀에 팔아치우고 있던선수 은퇴시키고 무전략 무개념 무전술로 일삼다가 막장의 길로 빠진것에 비하면 지금이 차라리 낫다라는 것이다. 강공을 시켜도 공도못건드리고 삼진이나 당하고 병살이나 치는 지금의 선수들에게 요렇게 꼭 알맞는 전술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경기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꼴리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명경기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야구경기장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소문을 듣자하니 그 노인은 이번에 있는 2009 wbc 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어 일본으로 갔다는 것이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두산관중석의 댄스녀를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몸동작으로 두산댄스녀가 몸을 흔들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댄스녀를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번트를 대다가 유연히 두산댄스녀의 댄스를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tv로 wbc 생중계를 보고 있었다. 마침 일본전, 이승엽이 번트를 대고 있었다. 전에 베이징 올림픽에서 이승엽이 역전투런홈런을 쳤던 생각이 난다. 홈런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딱하는
경쾌한 공맞는 소리도 들을수가 없다. 문득 몇개월전 번트 대던 노인이 떠오른다.

[출처] 번트 대던 노인 外|작성자 이안


http://nganist.tistory.com/entry/%EB%B0%A9%EB%A7%9D%EC%9D%B4-%EA%B9%8E%EB%8D%98-%EB%85%B8%EC%9D%B8-%ED%8C%A8%EB%9F%AC%EB%94%94-2%EB%B2%88%ED%8A%B8%EB%8C%80%EB%8D%98-%EB%85%B8%EC%9D%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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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망이 깎던 장셈(장원진)

지은이 by 윤오영
패러디 by 체크스윙

 

벌써 몇년 전이다. 시즌이 막 후반기로 접어든 지 얼마 안 돼서 우리팀과 잠실 경기를 할 때다. 연패를 끊는 동시에, 중위권으로 가기 위해 이 경기를 잡으려면 일단 선두타자 출루를 반드시 막아야 했다. 5회말 오른쪽 타석에 서서 방망이를 깎고 있는 장셈이 있었다. 승수를 한개 더 추가하려고 제발 죽어 달라고 기원을 했다. 표정이 굉장히 오만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냥 가볍게 삼진당해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나한테 맞는다고 강판되겠소? 무섭거든 거르고 다른 선수와 승부해보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장원진선수였다. 제대로 댓구하지도 못하고 얌전히 죽어 달라고만 속으로 기원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신중하게 깎는 것 같더니, 8구가 넘도록 1루 관중석으로  날려보내고 3루측 땅볼타울로 김빼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정도 했으면  미안하다 생각할 듯 싶은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나가 달라고 투수가 공을 빼도 통 못 들은 척 커트를 한다. 한계 투구수가 빠듯해 왔다. 피곤하고 짜증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나가주시오."

하고 공을 패다기 쳤더니, 화를 버럭 내며,

 

"깎을 만큼 깎아야 시내루가 먹지, 방망이에 초크 바른다고 바가지안타가 나오나나?"

라며 골프스윙으로 관중석으로 날린다. 나도 기가 막혀서,

"투수가 나가라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장셈, 왕심술이시구먼. 던질 공이 없다니까요."

장셈은 퉁명스럽게,

"다른 선수에게나 써 먹으슈. 난 안 나가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무안타로 던지다가 그냥 내려 갈 수도 없고, 퀄리티 피칭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코너웍을 너무하면 점점 경기시간만 늦어진다니까. 안타란 제대로 깎아야 바가지가 되지, 깎다가 말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방망이를 숫제 배터복스 옆에 세우고 태연스럽게 헬멧과 보호장비를 만지면서 사인을 보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자진강판하고 말았다. 그제서야 방망이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다시 타석에 들어선다. 벌써 승리투수 요건은 물건너간 상태다.

 

승리투수를 놓치고 다음 경기를 기다려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타격을 해 가지고 안타가 될 턱이 없다. 경기 스피드 본위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 그래 가지고 상대 투수만 되게 괴롭힌다. 동업자 정신도 모르고 자기 깎는 기술만을 즐기는 선수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장셈은 태연히 바가지 안타를 치고 1루에서 우리팀 덕아웃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그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미안해 하는 것 같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어색한 미소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장셈에 대한 분노와 미움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집에 와서 스포츠 뉴스를 봤더니 해설자는 이쁜 안타를 쳤다고 칭찬이다. 또한 투구수를 늘려서 선발투수 강판시킨게 승리의 요인이라면 야단이다. 여태껏 나왔던 바가지안타중에 최고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해설자의 설명을 들어 보니, 공이 너무 멀리 가면 외야수에게 책임이 가고 같은 안타라도 투수가 외야수를 원망하게 되어 투수도 힘이 들며, 공이 멀리 가지 않으면 내야수가 잡으려다가 다이빙을 하면서 부상을 당하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장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원래 바가지 안타(Texas Leaguer)는 던지는 투수의 공을 커트를 거듭하여 원하는 공을 신중히 선택한 후에 내야수가 전진수비를 하면 슬쩍 힘을 덜주며 깎아서 내야수의 글러브 상단 20Cm위로 살짝 넘어가도록 공을 깍아내어 내야수로 하여금 다음번엔 꼭 잡을 수 있다라든가 칼슘우유를 더 먹고 키를 늘리고 싶다는 등의 성장욕구를 자극하고 내야수가 깊은 수비를 하면 회전을 줄이고 외야수 두명과 내야수와의 3각형의 무게중심에 정확하게 공을 떨어뜨려서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좀체로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선수들은 좋은공이건 나쁜공이건 빈공간으로 치기에 급급해 제대로 깎지 못하게 되므로 수비진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하고 '코스는 좋은데 아쉽다'이란 소리를 듣기 일쑤이다.

 

저 바가지안타도 그런 자세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장셈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타격을해서 어떻게 안타를 친담.' 하던 말은 '그런 베테랑이 나 같은 투수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는 바가지안타가 나올 수 있담 으로 바뀌어졌다.

 

나는 장셈을 찾아가서 베팅볼이나 토스배팅이라도 던져주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월요일에 경기없는 날 잠실구장으로 장셈을 찾았다. 그러나 장셈이 연습한다던 잠실야구장에 장셈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장셈이 타격하던 배터박스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할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고개를 돌려 3루측 관중석을 바라보았다. 덕아웃옆 내가 앉아서 분을 삭이던 보조의자 위쪽 관중석에는 응원단상이 보였다.  아, 그 때 그 장셈은 저 응원석에 있는 우리팀 치어리더를 보고 있었구나. 바가지 안타를 치고 1루에 가서 나를 보는 척 하면서은근슬쩍 관중석에 있던 치어리더의 각선미를 훔쳐보던 장셈의 능글맞고 여유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보일 듯이 보일듯이 보이지 않는'이라는 따오기란 노래의 한구절이 떠올랐다.

 

오늘 연습실에 들어갔더니 후배가 피칭연습을 하고 있었다. 전에 완투, 완봉을 밥먹듯이 하던 선배들 생각이 난다. 완투대결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팔이 빠져라 던진다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무사사구 완봉이니 노히트노런이니 흥분을 자아내던 그 기록도 보기 힘들어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몇 년 전 방망이 깎던 장셈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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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스터 깎던 노인

원작: 윤오영
개작: 나님

* 웨이스터(Waster): 서양검 형태를 한 목검

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가 갓 WMA 입문한 지 얼마 안돼서 해외 딜러 홈피 뒤지며 침흘릴 적 일이다. PC방 왔다가는 길에, 즐겨찾는 WMA 홈페이지 포럼에 들렀다. 미쿡 시골서 살면서 웨이스터 자작한다는 양키 노인이 글을 올리더라. 웨이스터나 한 자루 사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짧은 영어로『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웨이스터 하나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오더 넣자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한 달이 다돼가도록 발송 소식 없이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만하면 한자루 깎고도 남았을텐데, 자꾸만 발송을 안하는 것이다. 얼른 그냥 달라고 e-메일을 보내도 통 메일 못 받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쓰던 웨이스터가 부러져 훈련을 못하고 있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메일을 보냈더니, 답장에 화를 버럭 내며,

『구울 만큼 구워야 빵이 되지, 생밀가루가 재촉한다고 빵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훈련을 못하고 있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답장한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오더 취소할 수도 없고, 훈련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처박아놨는지 태연스럽게 포럼에 깎던 웨이스터 사진 찍어 홍보글이나 올리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포럼 개념글이나 눈팅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웨이스터가 다 만들었는지 국제발송했다는 메일을 보낸다. 다 되기는 일주일 전부터 다 돼 있던 웨이스터다.

근 한달 훈련을 못한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다. 그러다가 포럼을 살펴보니 노인은 태연히 유튜브에 검술 훈련 동영상을 올려 링크를 걸고 있었다. 그 때, 그 동영상에 나온 노인의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리암 니슨을 닮아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간지나는 턱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양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주말 훈련 모임에 발송받은 웨이스터를 꺼내놓으니, 훈련 파트너가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자기가 쓰던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파트너의 설명을 들어 보니, 무게중심이 안맞으면 플러리쉬를 할때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검신이 너무 얇으면 프리-플레이를 할 때 분질러먹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양키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Waster(木劍)는 질좋은 히코리목(Hickory)로 만들어 무게는 묵직하면서도 충격에 튼튼하고 좀체로 부서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Waster(木劍)는 잡목으로 만들어 한번 금이가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웨이스터를 만들때는 질좋은 아마유를 흠뻑 먹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야 비로소 발송한다. 이것을 기름 먹인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목공용 화학 코팅제를 대충 처발른다. 광택이 번쩍번쩍 난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기름 먹일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harness(甲胄)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breastplate를 사면 기계 프레스제는 얼마, 유압 햄머제는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전통 방식으로 만든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전통 방식이란 석탄불에 철괴를 직접 손망치로 때려 만든 것이다. 홈피 사진으로 봐서는 기계식 유압 햄머로 만들었는지 손망치로 때려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손망치로 때려만들 리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 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HEMA 도구를 만들어 냈다.

이 웨이스터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초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에게 추가 오더를 넣으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주에 웨이스터 공구를 추진한 다음 WMA 포럼에 접속해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포럼에는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포럼에 물어보니 원래 동유럽 출신인 그 노인이 미쿡 살다 사고를 당했는데 개같은 미국 병원 보험이 안돼 고향인 동유럽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노인이 올린 유튜브 동영상을 보았다. 푸른 잔디밭에서 meisterhau와 연계기 수련을 하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수련을 하고 있었구나. 열심히 웨이스터 깎다가 흥이 나 플러리쉬를 펼치는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Learn five strokes from the right hand against the opposition. Then we promise that your arts will be rewarded." 마스터 리히테나워*의 말씀이 새어 나왔다.

오늘, RSS를 돌려보니 유튜브에 새 WMA 동영상이 올라왔다. 전에 웨이스터로 생나무 두들기며 훈련하던 생각이 난다. 목제 웨이스터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대량생산한 나일론 플라스틱제가 대세라 목제 구경하기도 힘들다. 문득 40년 전 웨이스터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 리히테나워 : 독일 장검술 시스템을 정리하여 후대에 전한 그랜드 마스터.


http://odukhu.egloos.com/2155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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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깎던 노인


벌써 2년전의 일이다. 내가 대입시험을 치러 서울 여관방에 살 때다.
수험장 왔다 가는 길에 청량리역으로 가기 위해 독립문에서 일단 걸어
가야 했다.

깜빡하고 필기도구를 안 가져와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독립문
맞은 편 길가에 앉아서 연필을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연필 한 자
루 사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한 자루는 안 파는 것
같았다. 한 자루만 깎아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연필 하나 가지고 땡전 나오겠소? 1다스 사기 싫으면 다른 데 가 사
우.'
대단히 열받게 하는 노인이었다. 열받아서 가려고 했더니 농담도 못하
냐면서 바지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어
서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
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척이다. 시험 시간이 바쁘
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점점 시험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돌아버릴 지경이다.
더 깎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돈만 더 주면 이러고 있겠냐!!!'
나도 어이가 없어서,
'학생이 돈이 어딨단 말이오. 노인장, 왕고집이시구려. 수능 봐야 한
다니까...'
노인은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팔겠소.'
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가래침을 퉤~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시험시간은 어차피 늦
은 것 같고 해서, 될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작년 대
입점수가 80점이라서 애당초 포기한 몸인지라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
다.
'여기 동전은 없고 회수권은 있소.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노인은 회수권을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더니
'글쎄, 웃돈이 없으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
들어야지 깎다가 놓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공룡 풍선껌을 씹
고 있지 않은가. 나도 고만 지쳐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
에, 또 노인은 깎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연필은 다 깎여 없어질 것
만 같았다. 또, 얼마후에 연필을 들고 이리저리 던져보더니 다 됐다
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되어 있던 연필이다.

수능을 2교시부터 봐야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
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개판일 수밖에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자
기 본위다. 그래 가지고 돈만 엄청 밝힌다.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
이다. 생각할수록 치질이 도졌다.
수능을 포기하고 나오면서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기지개를 펴면서 독
립문을 바라보고 드러누워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치사해 보이
는, 그 누워있는 모습, 그리고 쭈글한 눈매와 콧수염에 내 마음은 약
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조금은 덜해진 셈이다.

재수학원에 와서 연필을 내놨더니, 사람들이 기차게 잘 깎았다고 야단
이다. 연필굴리기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연필과 별로
다른 것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과학만은 만점을 받는 선배의 설명을
들어보면(다른 과목은 개판임), 심이 너무 길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E=mc제곱에 의거 질량이 폭증하여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깎인 자리의 모가 반듯하지 으면 공기저항 계수가 0.4이상으로 증가,
주위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킴으로써 낙하지점의 오차가 생김으로 인하
여 겐또가 안맞는다는 것이다. 정말 요렇게 꼭 알맞는 것은 좀처럼 만
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컨닝페이퍼는 침으로 겉을 닦고 곧 뜨거운 밥풀로
붙이면 선생님 등에 붙여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컨
닝페이퍼는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컨
닝페이퍼에 밥풀을 붙힐 때, 질 좋은 껌을 잘 씹어서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선생님 등에
붙인다. 이것을 등쳐 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요새는 접착제를 써서 직
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하기사, 요새
남 시험 잘 치는게 배아파서 며칠씩 걸려 가며 등쳐 먹을 사람이 있
을 것같지 않다.

던지는 컨닝페이퍼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던지는 것을 사면 10m짜
리는 얼마, 20m짜는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백발백중한 것은 세 배이
상 비싸다. 백발백중이란 한 번 마음 먹은 곳을 던지면 정확히 떨어지
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개중에는 붙는 기능도 있어서 멀리서도 등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눈으로 봐서는 백발백중인지 알 수가 없다. 말
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
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백발백중하게 만들 리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주는 녀석도 시험당일만 되면 들켜서 끌려 가게 된다.

옛날 우리 선배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점수는 점수지만, 컨닝페이퍼를
만드는 순간만은 오직 최고의 컨닝페이퍼를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
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대
작을 만들어 냈다. 이 연필도 그런 심정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
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청
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연필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얻어먹어야겠다고 생각했
다. 그래서 그 다음해 대입시험때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와 있지 아니했다. 충격이었
다. 내 마음은 연필을 얻지 못해, 그리고 추탕에 탁주를 얻어먹을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쓰러졌다.
맞은편 독립문을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을 가로지르며 독립문 밑으로
육교가 웅장하게 서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육교 위에 지나가
는 여자 치마를 훔쳐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연필 깎다가 누워서 육
교 계단을 오르내리는 여자를 쳐다보는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
다. 내 입에선 '무슨동 XX하다가 견육교!' 하는 도연명의 싯귀가 새
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동생이 주관식 컨닝용 무전기와 객관식용 삐삐
를 넣고 있었다. 전에 컨닝페이퍼를 만들다 들켜서 먼지나도록 방망이
로 두들겨서 맞던 생각이 난다. 컨닝페이퍼 구경한지도 참 오래다. 요
사이는 얻어맞던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제발 한 문제만!!' 혹
은 '한 번만 봐 주이소' 하던 애수를 자아내던 소리도 사라진 지 이
미 오래다. 문득 2년 전, 연필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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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하던 노인

    야생소년   
    조회 수: 6836, 2011-02-16 21:54:00(2011-02-16)


    나 막 대리 달때였나...

    회사에서 기획서 쓰다가 할짓 없어서 끄적였던 건데...USB정리하다 나와서 여기서도 공개해봐..ㅋㅋ

    광고에 대해 아는 횽이 있다면 아마 피식 할 지도 모르겠다..

    
    디자인 하던 노인

    벌써 3여 년 전이다. 내가 갓 입사한지 얼마 안되서 비딩에 참여할 때다.
    OT를 받고 비딩 준비하는 중에, 비딩 참여를 위해서는 청담동에 있는 업체에 디자인 외주를 맡겨야 해
    회사차를 끌고 청담동에서 내렸다.
    청담동 스튜디오 골목 맞은편 빌라에 디자인 전문이라 써 놓은 노인이 있었다.
    기획컨셉에 맞는 디자인 한장을 뽑아 가려고 디자인 한장 해달라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제작단가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디자인 한장 가지고 D/C 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외주 맡기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외주비를 더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뽑아나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열어 이미지 소스를 찾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와꾸와 레이아웃을 잡고 이미지를 편집하는 것 같더니,
    시안 제출 날짜가 다가옴에도 이리 폰트를 적용 해보고 저리 누끼를 따보며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1차 시안으로 적당하다 했는데, 자꾸만 더 이미지를 찾고 있었다.
    PT 시간이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정말 PT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오브제를 추가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PSD와 AI파일로 USB에 담아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누끼를 딸 만큼 누끼를 따고 합성을 해야지, 이미지 소스가 재촉한다고 광고가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PT할 사람이 그걸로 광고주 설득시킨다는데 무얼 더 합성한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PT 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외주 맡기우. 난 못 하겠소.”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외주 주고 마냥 기다리고 있다가 제작물 없이 비딩장소에 갈 수도 없고
    PT 순번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광고주한테 전화를 해 순번을 미루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한번 디자인 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픽셀이 튀고 늦어진다니까. 광고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소비자가 외면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디자인 하던 것을 숫제 임시 저장 해 놓고 태연스럽게 건프라를 조립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레이어를 합쳐놓고 확대 축소를 반복하고 몇페이지 컬러레이저로 출력해보더니 다 됐다고 USB를 내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디자인이다.

    PT순서를 놓치고 마지막 순번으로 PT를 진행해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순번이 늦으면 앞 경쟁대행사 PT에 지친 광고주가 쉽게 설득 당할 리 없다.
    
    그 따위로 디자인 외주를 해 가지고 외주 의뢰가 수주될 될 턱이 없다.
    광고주 본위가 아니고 디자이너 본위다.
    그래 가지고 외주비만 되게 부른다. 광고판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 문을 열다말고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모니터로 아즈망가를 보고 있다.
    그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디자이너다워 보이고,
    모에모에가 뿜어지는 눈매와 치요스케를 중얼거리는 입모양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디자이너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광고주 PT를 하며 제작물을 내놨더니, 광고주는 딱 원하는 컨셉에 맞는 디자인이라며 임원진 모두가 야단이다.
    앞서 보여줬던 대행사의 제작물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앞선 PT의 제작물을 못본 탓에 별로 기쁘지 않았다.
    그런데 광고주의 PT 이후 질의시간에 들어 보니, 모델을 너무 뽀샵질 해서 넣으면 찌질이들에게
    까이기 쉽상이고 같은 광고라 해도 브랜드 반감이 높아지며, 그렇다고 제품을 부각 시키면 제품 브랜드는
    기억에 남아도 굳이 비싼 연예인 모델을 쓴 이유가 없어진단다.
    
    요렇게 모델과 제품, 폰트와 카피까지 적절하게 레이아웃과 합성이 잘된 꼭 알맞은 디자인은
    좀체로 대행사에서 가져오는 제작물중에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광고 제작물은 혹 광고주가 맘에 안들어하면 밤새 디자이너를 닥달하여 폰트를 바꾸고
    뽀샵을 새로 하고 누끼를 다시 따서 아예 새로운 전혀 다른 제작물을 만들어 광고주를 만족시켰지만
    그러나 요새 대행사나 외주 디자이너들은 한번 퀄리티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디자인 수정을 요청할 때 능력 좋은 AE가 같이 붙어서 밤새 수정작업을 했다.
    이렇게 하기를 세네번씩 하고 서로 욕질을 해대며 싸워서라도 최고의 퀄리티를 뽑아내고
    신나게 광고주한테 리젝 당한 뒤에야 비로소 광고가 라이브 되었다.
    
    이것을 서로 쪼아댄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대충 요청한 수정내용만 정리해서 휙하니 던지고 책임을 회피한다.
    금방 수정 디자인이 나온다.
    그러나 비딩엔 번번히 물 먹는다.
    그렇다고 요새 야근수당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인센티브가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밤새 AE와 함께 수정작업을 진행할 디자이너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외주 디자인 가격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외주디자인을 쓰면 제작물은 기간에 따라 촉박하거나 제작물 종류에 따라 청구했고,
    대규모 인원이 달라 붙은 것은 통으로 계산하여 청구 했다.
    통으로 청구한다는 것은 종류나 투입인원에 관계없이 협의한 금액으로 청구하는 것이다.
    같이 밤을 안새고 파견하여 지켜보지 않는 이상은 다섯명이 밤을 샜는지
    제작물 시안을 10종류를 넘게 고민해봤는지 알 수가 없다.
    단지 말을 믿고 외주를 맡기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갑이 검수도 안하는데 일주일 넘게 밤을 샐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통으로 높은 견적을 컨펌주는 사람도 없다. 
    옛날 AE들은 기획은 기획이요, 디자인은 디자인이지만, 비딩을 참여하는 그 기간만은
    오직 최고의 획기적인 광고를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광고물을 만들어 냈다.
    이 디자인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디자인을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초짜AE에게 쪼임와 닥달을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기가막힌 광고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연간계약에 물량몰빵이라도 계약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비딩참여에 OT받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있던 사무실에서 업체는 이사한 빠져나간 뒤였다.
    나는 그 노인이 디자인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벽면에 붙은 애니메이션 포스터를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치요의 뒤로 아빠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은 저 포스터를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디자인을 하다가 우연히 모니터 너머의 포스터를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로리모에하다가 은팔찌 찼을지도!’라는 인터넷 게시글이 떠올랐다. 
    오늘, 집에 들어갔더니 TV에서 섹시한 광고가 연이어 방송되고 있었다.
    전에 기획서를 들고 디자이너를 쪼아대던 생각이 난다.
    기가막힌 디자인을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디자이너와 기획자가 드잡이질 하는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기획서와 광고주도 무시하는 꼰주만 있다’느니, ‘디자인의 디자도 모르는 해태눈’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3년 전 디자인 하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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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입니다..ㅎㅎ 역시 고전은 재미있어...


http://dolazy.com/xe/index.php?document_srl=417919&mid=just_marr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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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도 깍던 노인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내가 납치 조교를 하느라 깊은 산 속 자그마한 산장에 살 때다. 메이드 복을 사러 모처럼 산에서 내려와 세상으로 나왔는데, 그다지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나온 김에 딜도나 사가야겠다라고 생각하던 참에 마침 성인용품 판매점이 딱 보이는 것이 아닌가. 옳다구나 들어가니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네가 앉아있었다. 어지간히도 밝히는 노인네였나보다.


나무 딜도나 깎아달라고 부탁했다. 하나씩은 안 파는 것 같았다.
하나만 깍아 줄 수 없냐고 물었더니,


"나무 딜도 하나 가지고 어디 얼마나 쓰겠소? 정 비싸거든 플라스틱 딜도나 사가시우."


듣자하니 화가 났지만(이 몸이 플라스틱 딜도따위를 쓸 것 같은가.) 나무 딜도는 특성상 오래 쓰면 향이 좋지 않기에, 납득하기로 하고 잘 깍아나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날이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다.


인제 그 정도면 충분히 계집애 보내버릴 수 있으니 됐다고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척 이다. 하루종일 계집애도 굶기고 왔으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초초하고 짜증나서 엣찌도 안하고 싸 버릴 지경이다.


"더 깎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달라."


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깎을 만큼 깍아야 딜도라 할 수 있지, 무턱대고 구멍에 들어간다고 딜도가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직접 쓸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지금 빨리 돌아가야한다니까."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라며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는 없고, 어차피 굶긴 거 지금 돌아가서 밥 주는 것도 주인님으로서의 위상도 안 설 것 같아서, 될대로 되라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요 며칠간 좀 부드럽게 대해줬더니 기어오 르는 것 같아 한번 벌을 주기는 줘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럼, 어디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결이 거칠어지고 감도 안 좋아진다니까. 나무 딜도는 제대로 깎아야지. 깎다가 놓아버리면 쓰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레 쓰다듬고 만지작 거리고 있지 않은가. 나도 고만 지쳐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또 노인은 깎기 시작한다. 저러다가 딜도가 다 없어질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딜도를 들고 이리저리 던져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돼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나무 딜도다.


가게 문을 나서던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가지고 장사가 개판일 수 밖에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꼴에 폼을 잡는다.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다. 문을 나오면서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기지개를 펴면서 가게 쇼파에 측은하게 누웠다. 그 누위있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홀아비같아 보이고 쭈글한 눈매와 콧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것이다.


산장에 도착하자마자 딜도부터 쑤셔넣었는데 계집애가 내심 정말로 느끼는 눈치이다.


물어보니 감이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딜도나 바이브들과 별로 다른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삽입 당하는 계집을 다그쳐 감을 들어보니, 딜도가 너무 길거나 굵으면 무게가 무거워 쾌감보다는 불쾌함이나 고통이 느껴지고, 결이 부드럽지 않으면 거친 표면에 질 내부를 다치기 쉽다는 것이다.


정말 이렇게 느껴지는 딜도는 처음이라고 고개를 다소곳이 수그리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목마는 좋은 나무를 골라 모양을 만든 후에, 거친 나무 표면은 섬세하게 다듬은 후에 한결 한결 고급 도료와 인체에 무해한 표면처리제로 마감하여 사용자에게 최적의 쾌감을 제공한다. 이것을 '암흑 장인의 부드러운 손길'이라고 한다. 그런 것으로 조교를 하게되면 계집아이는 '처음에는 무섭지만, 당하다보면 쾌감이 어느새 온 몸을 휘감아 성욕을 못 이긴 나머지 주인님께 완전히 복종하게되는' 순서를 그대로 따르게된다. 그러나 요새의 목마는 엉터리 싸구려 나무를 쓰는데다 표면도 기계로 대충 깍아버리고 표면에 니스와 유독성 페인트만 쳐발라
버리고 끝이다. 기계로 깍은 표면이라 얼핏 보기에는 더 근사해보이지만, 막상 사용해보면 무척 거칠고, 페인트와 니스도 잘 벗겨지는데다 인체에도 악영향을 미쳐 계집아이의 그곳이 엉망이 된다. 하지만 요새는 남의 조교나 남의 계집따위에 신경을 쓰는 암흑 장인이 있을 턱이 없다.


밧줄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금박밧줄을 사면 5m짜리는 얼마, 10m짜리는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탄력감이 있는 것은 세 배이상 비싸다. 탄력감이 있는 것이란, 묶으면 조임이 강하기도 했지만 유연성도 강해서, 밧줄 플레이를 하게 되면 묶은 몸의 부위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개중에는 탄력이 강해서 필요여하에 따라 채찍대용으로까지 쓸 수 있는 물건도 있었다. 하지만 금박으로 덮여진 터라, 눈으로 봐선 묶어보기 전까지 탄력감이 있는지 어쩐지 알 수가 없다.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밧줄의 실밥 감을 더 들여가면서 탄력감있게 만들리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주는 녀석도 막상 쓰게되면 그 빡빡함에 계집과 자기 모두 긁혀버리기나 하는 것이다.


옛날 암흑 장인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SM은 SM이지만, 물건을 만드는 순간만은 오직 최고의 SM도구를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정액를 방출하듯 심혈을 기울여 명기들을 만들어 냈다. 이 딜도도 그런 심정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마스터가 나정도의 하찮은 녀석에게서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기가 막힌 명기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회춘용 영계 하나라도 구해드려야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에 도구 사러 나오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운영하던 가게 자리엔 가게는 없었고 왠 의상실이 하나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그 가게가 있었던 자리 앞에 멍하니 주저앉았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명품을 몇 개 더 구해놓지 못함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한참 멍하니 서 있다가 옆에 있는 소프란도 삐기에게 물어보았다.


"여기 있었던 그 섹스샵 노인장 어디로 가셨는지 모르냐?"

"아, 그 가게 노인장.. 일주일 전 쯤인가? 죽었어요."

"아니? 죽다니? 왜? "

"후후, 그 할아범이 고집도 고집이지만 돈도 무지 밝히잖아요. 아 글쎄 요 앞의 소프란도에 가서 즐긴 다음에, 돈 대신 직접 깍은 딜도로 지불한다고 빡빡 우기다가 거기 '주먹'들한테 걸려서 박살나게 터지고 나서 시름시름 앓더니 골로 갔어요. 가게도 넘어가서 지금은 이렇게 의상실이 됐고."

"..."


오늘 산장에 돌어갔더니 계집애가 흐느끼면서 끊어진 채찍을 열심히 바느질로 잇고 있었다. 요새는 1년 이상 가는 탄력 좋은 채찍을 구경한 적이 없다. 문득 2년 전 딜도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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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창 깎던 노인

벌써 40여 년 전이다. 서울 왔다 가는 길에, 불법폭력시위를 위해 광화문에서 일단 차를 내려야 했다.

 

광화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죽창을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죽창을 한 벌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죽창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미제나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폭력시위 시간이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불법폭력시위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폭력시위는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죽창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죽창이다. 데모 진압하는 경찰을 피해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혁명을 해 가지고 혁명이 될 턱이 없다. 투사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혁명정신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자본가같은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광화문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혁명가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자본가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시위현장에 와서 동지들에게 죽창을 내놨더니 동지들은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수령님의 하사품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수령님의 것이 더 좋지 않냐고 했다.

 

그런데 동지의 설명을 들어 보니, 대가 너무 길면 눈이나 얼굴을 찌를때 겨냥하기 너무 힘들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대가 너무 짧으면 반동들에게 내밀기도 전에 진압봉에 쳐맞아 골로 가기 일쑤란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폭력시위도구 죽창은 혹 대쪽이 떨어지면 쪽을 대고 물수건으로 겉을 씻고

곧 뜨거운 인두로 다리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죽창은 대쪽이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죽창에 대를 붙일 때, 질 좋은 부레를 잘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소라 붙인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접착제를 써서 직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하지만 전경눈을 찌를때 한 번에 실명시키지 못한다. 견고하지가 못한것이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소라 붙일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화염병만 해도 그러다. 옛날에는 소주병을 쓰면 보통 것은 얼마, 맥주병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와인병으로 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와인병이란 휘발유양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박카스병을 쓸지,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투사들은 혁명은 혁명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혁명완성의

 

완벽한 도구만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악랄하게 심혈을 기울여 가증스러운 살인 폭력시위도구를 만들어 냈다.

이 죽창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혁명을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투사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완벽한 살인도구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홍어삼합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광화문의 지붕 추녀를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죽창을 깎다가 유연히 추녀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 대를 이어 충성하자"는 과업이 튀어 나왔다.

 

문득 죽창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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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딩 하던 젊은이

벌써 4년 전이다. 내가 갓 음빠가 된지 얼마 안 돼서 서울에 올라가 살 때다.

교보에 책사러 왔다가는 길에, 시디를 한 장 사기 위해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광화문역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음악시디를 구워서 파는 젊은이가 있었다.

cd을 한 장 사 가지고 가려고 구워달라고 부탁을 했다.


"얼마나 기다릴수 있소?"

"한 장에 4년 아닙니까?"

"한 장에 5년이오"

"좀 빨리 해줄 수 없습니까? 다른 곳은 5년이면 10장이던데..." 했더니,

"시디 한 장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기다리기 힘들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싸아가지 없는 젊은이었다.

더 시간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구워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하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녹음해보고 저리 녹음해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마스터링시디를 전자렌지에 넣고 돌리면 다 될 건데, 자꾸만 재녹음만 하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구워달라고 해도 통 못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집에서 닭먹을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사운드 뭉게지고 좀 구려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레코딩을 할만큼 해야 음악이 완성되지,

공시디 전자렌지에 넣고 빨간거 누른다고 마스터링 시디가 구워지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녹음한다는 말이오? 젊은이, 지가 서태지인줄 아시는구먼, 치킨 식는다니까요"


젊은이는 퉁명스럽게,

"다른 뮤지션꺼 가 사우. 난 녹음 안하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치킨은 이미 식은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레코딩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영감이 할멈이랑 바람난다니까.

음악이란 제대로 녹음해야지, 빨리하려다 영감님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드럼비트를 하나 하나 따서는 태연스럽게 혜승이를 불러 감금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흥분해 버려 빠가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마스터링 시디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8번째 음반이다.



따뜻한 치킨을 못먹고 식은 치킨을 먹어야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팬들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젊은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젊은이는 태연히 허리를 펴고 모아이섬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아름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잘 빠진 턱선이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젊은이에 대한 열폭과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시디를 내놨더니, 동생음빠는 사운드가 죽인다고 야단이다.

해외 뮤지션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동생의 설명을 들어 보니,

싸구려 믹서로 레코딩을 하면 얼마 못 가서 음색 자체가 촌스러워 지다가

팬들이 쉬이 떨어져나가며, 무리하게 음을 구겨 넣다 보면 당시엔 멋지게 들릴지 몰라도 나중에 사운드 물리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젊은이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사운드는 시간과 관계없이 오랜시간 다듬어 좀체로 싸구려 음색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음악은 한번 듣고도 중독성이 있는 훅부분만 강조하려해 몇 개월만 지나면

촌스럽고 듣기 민망하여 괜한 쪽팔림을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곡을 하나 쓰기 위해서는 모든 샘플을 스스로 만들었고

톤하나를 잡기 위해서 스튜디오에 처박혀 있고 모든 곡의 구조가 완성 되었을때에야 비로소 마스터링 시디를 굽는다.

물론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훅트송 방식으로 단 며칠 만에 음반이 나온다.

금방 음반이 나온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잘 듣지도 못하는 것을

몇 년씩 걸려 가며 고스트 노트를 쪼갤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젊은이가 나 같은 음빠에게 서태발아 빨리 음반 좀 내라 소리를 듣는 세상에서,

어떻게 잘 빠진 사운드가 들어있는 시디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젊은이을 찾아가서 삼각형 커피우유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광화문에 들르는 길로 그 젊은이을 찾았다.

그러나 단속이 떠서 그 젊은이가 앉았던 자리에 젊은이는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젊은이가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광화문역을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에 무너질 듯한 광화문역 밑으로

내일 아침 일찍 음반을 사고 싶어 노숙하던 소를 닮은 모습의 여러 사람이 잠을 자고 있었다. (갠적으로 이부분에서 빵터졌음 ㅋ)

아, 그때 그 젊은이는 저 소들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레코딩을 하다 우연히 광화문역의 노숙 소들을 바라보던 젊은이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니가 아무리 날 지금 좋아한다 그래도 음.. 그건 지금 뿐인지도 몰라!"

북공고의 전설적인 인물의 명언이 떠올랐다..



문득 4년 전 레코딩하던 젊은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시간은 많은것을 거짓으로 만든다.

언젠가의 나는...

너의 속삭임이

내 곁을 떠나버릴 향기 같은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의 기적은

우리를 거짓으로 만들지 못했다.

15년.. 변함없이 내귓가에 속삭이는

너에게..

오늘도 어제와 같이 말한다.



고마워..

출처 : 서태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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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릿 짜던 블로거

출처 - http://sirocco.pe.kr/MT/archives/0006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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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윤오영, 방망이 깎던 노인
모작: sirocco

벌써 일 년 전이다. 내가 블로그를 쓴 지 얼마 안 돼서 내 계정에 설치해 쓸 때다. 컴퓨터 앞에 앉은 김에 새로 올라온 글을 읽기 위해 블로그 코리아에서 일단 클릭질을 멈춰야 했다.

블코 리스트 아래쪽에 템플릿을 짜 주겠다는 글이 있었다. '파리의 연인' 보기 전에 블로그 리뉴얼이나 해 보려고 짜 달라고 덧글을 달았다. 시간을 굉장히 널널하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빨리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템플릿 하나 가지고 시간을 보채려오? 급하거든 네이버 지식인에 글 올리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블로거였다. 더 닥달하지도 못하고 만들어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코드를 짜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짜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거 고쳐 보고 저거 지워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손대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저장해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체한다. 드라마 시간이 바쁘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점점 드라마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다듬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일 만큼 끓여야 라면이 되지, 사발면에 냉수 붓는다고 라면이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쓸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손본단 말이오? 님아, 외고집이시구려. 드라마 시간이 없다니까....."
그 블로거는
"다른 데 가 받으시우. 찌질이 KIN."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생깔 수도 없고 드라마 시간은 어차피 늦은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諦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짜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무겁고 복잡해 진다니까. 코드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짜다가 배째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코드 짜던 메모장을 숫제 백그라운드로 돌려 놓고 태연스럽게 모니터에 모질라를 띄워 블코의 새 글 목록을 읽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블로거는 또 템플릿 짜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코드는 다 닳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템플릿을 갖고 이리저리 테스트해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되어 있던 템플릿이다.

드라마를 놓치고 재방송을 봐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코딩을 해 가지고 인기 블로거가 될 턱이 없다. 방문객 본위(本位)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 불친절(不親切)하고 무뚝뚝한 블로거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모니터를 들여다보니, 그 블로거는 태연히 포스팅을 하고 블로그 코리아의 인기글 Top5에 올라와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블로그다워 보이는, 그 모니터에 뿌리는 메인 인덱스, 그리고 부드러운 색배합과 간결한 인터페이스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그 블로거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조금은 덜해진 셈이다.

집에 와서 템플릿을 내놨더니, 아내는 예쁘게 짰다고 야단이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면, 글꼴이 너무 크면 글을 읽을 때 전체 내용이 잘 파악 안 되고, 같은 내용이라도 스크롤을 많이 해야 되며, 글꼴이 너무 작으면 눈가에 주름이 펴지지 않고 어디를 읽는지 놓치기가 쉽다는 것이고,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블로거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초창기부터 내려오는 Nucleus는, 기능을 추가하고 싶으면 플러그인을 찾아다 받고 계정에 업로드를 하고 설정을 곧 잡아 주면 설치가 완료되어서 좀처럼 아쉬움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가입형 블로그는, 버그가 생기면 서비스 회사에서 해결하지 않는 한 방법이 없다. 예전에는 블로그에 문제가 있을 때, 분위기 좋은 포럼에서 물어보고 조언을 구한 후 비로소 해결한다. 이 곳을 'wik'라고 한다.

가입형 블로그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가입형을 쓰면 RSS 제공은 되는지, 트랙백이 지원되는 것은 어디라는 식으로 구별했고, 무료 서비스는 3배 이상 인기가 있었다. 무료화란, 블로그 서비스에는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약관을 보아서는 용량 제한이 있는지 예쁜 스킨은 사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말을 믿고 가입하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땅 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닌데 평생 무료를 고수할 리도 없고, 또 '기본 서비스는 무료'라는 말만 믿고 가입을 할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가입형은 가입형이요 설치형은 설치형이지만, 블로깅을 하는 그 순간만은 오직 좋은 글을 올린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心血)을 기울여 인기 블로그를 만들어 냈다. 이 템플릿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블로거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블로깅을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블로거가 나 같은 초보에게 - _-凸와 '즐드셈'을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좋은 블로그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블로그를 찾아가 덧글에 트랙백이라도 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파리의 연인'이 끝나는 길로 블코를 찾았다. 그러나 그 블로그가 있던 블코에 RSS는 등록되어 있지 아니했다. 나는 블코가 띄워진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오른쪽 블코의 Top5를 바라다 보았다. 푸른 제목이 굵게 쓰여진 Top5 아래로 트랙백 디렉토리의 테이블이 깨어져 있었다. 아, 그 때 그 블로거가 저 깨어진 테이블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템플릿을 짜다가 유연히 Top5 아래의 테이블을 바라보던 블로거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동생이 핸드폰으로 싸이를 하고 있었다. 전에 무버블 타입을 웹호스팅까지 옮겨 가며 설치하던 생각이 났다. 좋은 블로그를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사이는 블로기어워드가 열린다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애수(哀愁)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일 년 전, 템플릿 짜던 블로거의 모습이 떠오른다.

> 2004.08.23.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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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란 깍던 노인


"좀 빨리 해 줄 수 없습니까?"했더니,

"레이싱게임 하나 가지고 흥정하겠소? 못참겠거든 포르자나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제작자였다. 시기를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만들어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벌써 그사이에 포르자는 2시리즈 나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발매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발매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뉘르나 달리고 있지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프리미엄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방망이다.

발매시기를 놓치고 포르자 다음작 전년도에 해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발매시기만 지맘대로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동대문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집에 와서 프리미엄을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이렇게 실사와 같은 포토모드는 참으로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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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설계하는 건축사

벌써 5여 년 전이다. 내가 갓 로또에 당첨된지 얼마 안 돼서 강남에 올라가 살 때다.

천안에 법규가 바뀌기전에 투자좀 하러왔다가는 길에, 허가라도 접수하기위해 천안역에서 일단 기차를 내려야 했다.

천안역 맞은편 길가에 위치해있는 설계도면그리는 건축사가 있었다.

천안에 집좀 지어서 투기좀 해볼려고 설계비좀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평생의 내 집을 짓는것을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설계하시우.”

대단히 자존심이 강한 건축사였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설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스케치를 하는것이였다.

처음에는 빨리 스케치하는것 같더니, 날이 저물도록 기름종이를 위에 덮어가며 이리 그려 보고 저리 그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스케치하면서 캐드작업을 하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허가 접수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계획을 잡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접수좀 해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계획만큼은 제대로 설계해야 쓸모있는 집이 되지, 있는도면 COPY해온다고 그 대지에 맞는 집이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건축주가 좋다는데 무얼 더 설계한단 말이오? 이보시오 건축사양반, 외고집이시구먼, 허가 접수 시간이 없다니까요.”

건축사는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설계하시오. 난 설계 안하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허가 접수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설계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공사도 제대로 못하며 준공도 늦어진다니까. 집이란 제대로 설계를 해서 건물을 지어야지, 공간을 구성하다 망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설계하던 것을 멈추고 3D 모델링을 태연스럽게 줄담배를 피우며 맵핑하고 있는게 아닌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3D 모델링을 랜더링 걸어가며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도면인거 같았다.
 
허가 접수시간을 놓치고 내일 접수해야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설계를 해 가지고 직원 기사들 월급도 제대로 줄 턱이 없다.

건축주 본위가 아니고 건축사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고집이 강하고 무뚝뚝한 건축사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건축사는 태연히 마우스를 내려놓으며 허리를 펴고 천안역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예술인 다워 보이고, 근심어린 눈매와 술 담배에 쪄든 피부가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건축사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설계도면을 내놨더니, 아내는 구조,기능,미 3요소를 고루 갖추었다며 야단이다.

지금살고 있는 강남집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건축을 전공한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용적율을 꽉채우면 세를 많이 줄수 있으나, 디자인이 떨어져 공실률이 생기기 쉽고 생활환경이 열악해지며, 용적율이 너무 안나오고 디자인에 치우치다보면 투자해도 손해보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공간감과 디자인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건축사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건축물들은 그 지역에 자연적 지리적 특성을 고려하여 자연과 사람이 어울어지는 아름다우며 특색있는 그 지방 고유의 건물을 지어왔고,

그것이 오랜시간이 지나도 문화적,예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어 후세가 이것을 자랑스러워하며 관광자원화 할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 높은 건축물. 이것을 하나의 건축문화라고 한다.

물론 시대의 흐름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건축문화를 만든다는 것은 오랜시간과 노력이 걸린다.

그러나 요새 건축주들은 문화보다 상업적논리로 찍어내듯 설계하라고 한다.

금방 빨리도 건물이 완성된다.

그러나 건물의 특성이 없다.

그렇지만 요새 건축주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것을 돈을 투자하며 건축문화를 이룰 것 같지 않다.
 
건축설계만 해도 그렇다.

IMF 이전만해도 건축설계를 할때 일반도면은얼마, 고급도면은얼마, 행위로써 구별했고, atelier에서 하는 설계는 몇배 이상 비싸다.

atelier에서 작업하는것은 예술성을 높여 고부가 가치를 높인것이다.

눈으로 봐선 아름답지만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단지 건축사의 말을 믿고 따르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꺼내기 어렵다.

어느 누가 먹고 살기도 힘든데 건축문화를 생각할수도 없고, 경쟁이 심해 비싸다 싶으면 딴곳으로 가고, 또 건축문화란것을 믿고  몇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일반 건축주들은 예술은 예술이요, 투자는 투자지만, 설계를 하는 사람들은 그 순간만은 오직 건축문화와 쓸모있는 건물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건축문화를 이끌어 냈다.
 
이 설계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건축사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설계를 해 가지고 직원 기사들 월급도 제대로 줄 턱이 없다.”

라고 하던 말은

“그런 건축사는 나 같은 건축주에게 싸게와 빠르게 짓기를 원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건축이 탄생할 수 있담.”

이란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건축사를 찾아가서 삼겹살에 소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투기하는길에 내려가면서 그 건축사를 찾았다.

그러나 그 건축사사무소가 있었던 자리에 건축사는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건축사사무실이 있었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천안역의 지붕 추녀를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설계하고 완성을 한 다음 우연히 추녀 끝의 구름을 바라보던 건축사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採菊東籬不(채국동리불)다가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도연명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집에 들어갔더니 아들녀석이 건축 모델을 만들고 있었다.

전에 아내를 도와 모델을 만들던 생각이 난다.

모델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스티로폴 깔고 신문덮고 자며 피곤해서 잠꼬대하는 소리도 들을 수 없다.

"예술에 목말라 밤새워가며 토론하며 술마시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5년 전 건축설계하던 건축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http://eastlake.tistory.com/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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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cue)깍던 노인

벌써 3년 전이다. 내가 갓 세간난 지 얼마 안 돼서 광장동에 내려가 살 때다. 이주에 한 번 꼴로 있는 당구 생활체육 대회가 있어 제기동에 구경갔다 오는 길에, 청량리 역으로 가기 위해 동대문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당구 큐를 깎아 파는 노인 이 있었다. 안그래도 선수용 상대를 한 벌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얼마전 5만원하던 한밭 '44B' 모델을 6만원이나 받는게 아닌가.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상대 하나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요즘 원목가격이 올라 이 이하로는 안되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 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막차 시 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 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 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피우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노인은 큐의 모양이 잡혀지자 큐팁을 붙이는 작업에 들어갔다. 먼저, 기존 큐에 붙어있는 팁을 칼로 제거하고. 페이퍼를 이용해서 큐앞부분의 이물질을 제거했으며, 새로운 탭을 페이퍼 위에 올려놓고 , 원형으로 돌리면서표면을 아주조금 갈아냈다. 대략 10 바퀴 미만으로 돌려서 갈아낸뒤 돼지본드를 큐끝과 탭에 바르기 시작했다. 이후 큐끝에 탭을 살포시 올려놓고 엄지손가락으로 꾹 눌러서 부착시켰다. 30 초 정도 손가락으로 누르고 난 담에 그늘에서 다 붙을때 까지 건조시켰다. 순간접착제를 사용하면 될것을 시간을 끄는것 같았다. 저리 시간을 끌다니. 그렇다고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노인은 팁 깍는 칼을 날이 위로가게 하고, 큐 선골부분에 대서 탭을 위로 조금씩 큐를 돌려가며 탭을 쳐냈다 . 그리고 칼로써 거의 둥글게 모양을 만들고 난뒤 페이퍼를 접어서 팁 주변을 다듬기 시작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선골을 닳게 하는것 같지는 않았다. 칼 잡듯이 페이퍼를 접어서 잡은다음 위로 싹싹 밀어올리며 탭과 선골사이의 면이 고르게 다듬었다. 마지막으로 , 줄로 탭 윗부분을 갈아내고 , 위에서 아래로 쳐서 단단하게 마무리했다. 더불어 『당구장의 생명은 공이 아니라 , 큐 손질이우.』라고 혼잣말까지 뇌까린다. 얼마 후에야 큣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큐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 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동대문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동네 당구장에 와서 큣대를 내놨더니, 당구장 사장이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자신이 평소에 쓰는 한밭 '55B'나 심지어는 시합나갈때 꺼내 사용하는 '쥬몬 무사시' 보다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하우스큐와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당구장 사장의 설명을 들어 보니, 너무 두껍고 배가 너무 부르면 당점을 잡기가 힘들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너무 얇아 연필처럼 다음어놓으면 제대로 스토록을 하기 쉽지 않단다. 더군다나 선골에 정성스레 붙여놓은 쪽팁은 모리팁과 같이 비싼것은 아니지만 잘 다듬어 놓아 당장 공을 치더라도 큐미스가 전혀 없을 정도란다. 더군다나 큐를 깍은 사람은 기본적으로 큐 팁을 붙일줄 안다고 한다. 큐까꼬 같은것으로 대충 모양을 잡은 것이 아니라 정성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더불어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말도 부연했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요새 큐는 장마철 관리를 못해 휘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큐에 대를 붙일 때, 질 좋은 부레를 잘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소라 붙인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접착제를 써서 직 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고 쉬 휘어져버린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소라 붙일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藥材(약재)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熟地黃(숙지황)을 사면 보통 것은 얼 마, 윗길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九蒸九日暴(구증구포)한 것은 세 배 이 상 비싸다. 구증구포란 아홉번 쪄내고 말린 것이다. 눈으로 봐서는 다섯 번 을 쪘는지 열 번을 쪘는지 알 수가 없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 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아홉 번 씩 찔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 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 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큐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자장면에 탕수육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 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여성 3구대회가 있어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 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 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동대문의 지붕 추녀를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 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 뭉게구름이 두덩어리 피어나고 있었다. 더불어 노을에 물든 두 덩어리의 붉은 구름 또한 보였다. 구름 사이로 날아다니는 몇 마리의 기러기가 점처럼 보이면서 61.5mm 아라미스 6점구가 생각났다. 아, 그때 그 노 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큐를 깎다가 우연히 추녀 끝의 구름을 바라보며 당심에 빠져있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採菊東籬不 (채국동리불)다가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도연명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집앞 당구클럽에 들어갔더니 유명한 프로선수가 연습구를 치고 있었다. 전에 없이 경쾌한 스트록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잘 골라서 손질한 하우스큐로 연습을 하고 있었다. 300~400만원이 넘는 당구큐는 여러번 보아왔지만 노인과 같이 정성들여 제작된 당구 큐를 구경한 지는 참 오래다. 문득 3년 전 큐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http://russiainfo.co.kr/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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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파 방망이 깍던 노인

 무려 귀검개편 전이다. 내가 갓 각성한지 얼마 안 돼서 아라드에 내려가 살 때다. 하멜른 왔다가는 길에, 언더풋으로 가기 위해 헨돈마이어에서 일단 걸음을 멈춰야 했다. 칸나의 잡화점 맞은편 길가에 장비를 강화해 파는 여인이 있었다. 고강 무기를 한 개 구해 가려고 강화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했더니,
  “호호~ 리볼버 하나 가지고 에누리 하겠어요? 비싸다면 다른 데 가서 하세요.”
  대단히 뻔뻔한 여인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강화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잠자코 열심히 강화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강화하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강화하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피방 선불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강화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쓸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강화한단 말이오? 여편네, 외고집이시구먼, 피방 시간이 없다니까요.”
  여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사세요. 난 안 팔겠어요.”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피방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강화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요.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강화하다가 말면 곤란하죠.”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강화하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머리에 있는 비녀를 만지작 거리는게 아닌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리볼버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리볼버다.
 
  피방 선불시간이 다 되고 시간 연장을 해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여인이다.’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여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그란플로리스 입구를 바라보고 섰다. 그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천계인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비녀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여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파티에 들어와서 리볼버를 내놨더니, 파티원은 강화 수치가 깎였다고 야단이다. 자신이 들고 있는 것보다 훨신 구리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파티원의 설명을 들어 보니, 어차피 레인저는 똥캐라서 자신의 10강이나 내가 들고 있는 5강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노강이면 다른 사람들이 무시해서 파티에 잘 껴주지 않으며, 고강이면 상대방의 기대치만 높여 실망이 높다고 했다. 요렇게 강퇴하기도 껴주기도 애매한 수치는 좀체로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여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에 존재했던 고강무기는 혹 매물이 생기면 산다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지른다고 하면 구경꾼이 몰려든다. 그러나 요새 고강무기는 매물이 생긴다고 해도 사람들이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는다. 강화를 할때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강화를 할때도 라이언 코크스를 하나하나 소중히 모아서 스피커와 모니터를 끈 후에 강화를 한 뒤에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난 뒤 다음 날에 접속해서 확인했다. 이렇게 하기를 12번 이상을 해야 고강무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물론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중국인이나 작업장의 개인상점에 있는 라이언 코크스를 대량으로 산 뒤에 무기도 대량으로 사서 마구 지른다. 금방 뜬다. 그러나 유니크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인포 하지도 않는 12강 따위를 며칠씩 걸려서 강화 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아바타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아바타를 끼면 저것은 일반 아바타, 이건 상급 아바타, 또 저것은 레어 아바타로 구분했다. 레어 아바타란 아바타와 아바타를 바인드 큐브로 합성하고 또 합성하여 적은 확률로 나오는 아바타이다. 예전만 해도 레어 아바타만 봐도 'ㅎㄷㄷ님하 레밧 풀셋이네요'라며 존중해주었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보아도 흔하디 흔한 레어 아바타에 덜덜덜 떨어 줄 사람도 키보드를 두드려 레어 아바타를 칭찬 할 사람도 없다.
 
  올드 유저들은 강화는 강화요, 피방비는 피방비지만, 강화를 하는 그 순간만은 오직 강력한 고강장비를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고강화 장비를 만들어 냈다.
 
  이 리볼버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여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하던 말은 “그런 여인이 나 같은 뉴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강력한 장비가 탄생할 수 있담.”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여인을 찾아가서 왕가의 목걸이에 한정 55제 레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하멜른 가는 길에 그 여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여인이 앉았던 자리에 여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여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저멀리 그란플로리스의 입구를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나뭇가지 끝으로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때 그 여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리볼버를 강화하다가 우연히 나뭇가지 끝의 구름을 바라보던 여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歷戰長竿强化(역전로드강화)하다가 間隔于隕落(빈틈에드랍)!’ 오이모의 꾸준글의 내용이 새어 나왔다.
 
  오늘, 던전에 들어갔더니 양민 레인저가 짤짤이를 하고 있었다. 전에 많은 몹들을 리볼버로 xxx xxx xxx 갈겨서 잡던 생각이 난다. 고강무기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짤짤이 하는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레인저의 기본은 짤짤이’니, ‘난사를 배우면 신세계...는 페이크고 현시창’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귀검사 개편 전 리볼버 강화하던 여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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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그리던 노인 by 모아

    2010/11/29 16:13
    가벼운 이야기
    fifteenkin.egloos.com/268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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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오래전 일이다. 신참 디렉터 딱지를 뗀지 얼마 되지 않아 괜찮아 보이는 시나리오를 하나 받았다. 적당히 세워줄 원화만 붙이면 되겠다는 생각에 유통사랑 계약하고 쫄깃한 처자들을 잘 그린다는 노인이 있는 작업실에 들렸다. 원화에 제작비를 많이 쓰기 힘들어 흥정한 요량으로 얼마에 그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컷당 단가를 토니보다 더 비싸게 부르는 것이었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잘해봤자 중박인 시나리오인데..." 했더니,

"원화 하나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제작비 모자라면 음성 빼든지." 아리스도 아닌데 음성 없이 어떻게 파냐고 반문해도 노인은 고집불통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제대로 설 수 있게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사이를 열더니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카즈에 여사처럼 광속으로 선을 긋는 것 같더니 한참을 지나도 포즈만 계속 다듬고 있다. 내가 보기엔 충분히 야해 보이는데 옆에 아오이 소라 비디오까지 틀어놓고 '얘 후배위는 역시 예술이야~' 하면서 포즈를 계속 바꾸는 것이었다. 채색팀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상반기 결산 때문에 발매일을 빠듯하게 잡아놔 안그래도 시간이 없는데 원화까지 이러니 갑갑함을 넘어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고치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그린 사람이 꼴려야 하는 사람도 꼴리지. 무조건 벗긴다고 닥딸게가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디렉터가 꼴린다는데 무얼 더 고친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발매일 연기 못한다구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사람 시키구려. 난 안 그리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아이3 꼴 낼 수도 없고, 다운로드 판매로 돌리면 발매일은 얼추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고쳐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같은 포즈만 계속 나온다니까. 설땐 제대로 세워줘야지, 한번만 싸게 만들면 쓰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타블렛 위에 펜을 던져놓고 태연스럽게 니코동에 올린다고 작업 장면을 녹화하고 있는게 아닌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 화면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USB에 담아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그림들이었다.

패키지 안만든다고 유통사에 욕까지 먹고 돌아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그림을 그리면 스텝들이 좋아할리가 없다. 디렉터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토니보다 더 비싸게 부른다. 이바닥 예절도 모르는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하게 벤치에 앉아 여름 코미케에 출품할 동인지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 때, 그 옆 모습이 왠지 모르게 숲의 요정과 겹쳐 보였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나도 모르게 뺨까지 붉어졌다. 더 있으면 안될 것 같아 서둘러 자리를 떴다.

회사에 와서 원화를 내놨더니, 채색팀이 앉은 자리에서 세번은 충분하겠다며 티슈 들고 바지 내리느라 난리다. 전에 그리던 작가 것보다 훨씬 더 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를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채색팀 설명을 들어보니, 너무 벗고 있으면 식상한데다 다양한 살색으로 덧칠하기 힘들고, 너무 입고 있으며 화면이 난잡하고 덜 꼴린다는 것이다. 색 지정도 채색하기에 딱 적당하고 클로즈업 앵글을 잘 잡아 모자이크를 많이 입하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한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예전에는 16컬러만으로도 사정없이 꼴리게 만드는 원화들이 많았다. 눈이 피로한 원색을 많이 쓰지 않아 딸치는데 힘든 유저들의 눈까지 배려했고 적절하게 스크롤되는 전신 이미지로 색다르게 흥분할 수 있도록 해줬다. 하지만 요즘 원화는 한 장 그려놓고 확대 축소로 많이들 우려먹는다. 같은 얼굴에 머리색만 바꿔 캐릭터 숫자 늘리기에 급급하다. 자기네 기준에 맞게 꼴리라고 유저들에게 강요하는 꼴이다.

애니메이션 연출만 해도 그렇다. 예전에는 셀 작업 하듯이 한컷 한컷 정성스럽게 그리고 세우는데 부족하지 않을 프레임으로 유저들을 즐겁해 해주었는데, 요즘은 가슴만 조금 떨려도 첨단 애니메이션 효과라고 우긴다. 왠만한 움직임은 좌표만 지정해줘도 프로그램이 다 알아서 해주는데 예전보다 발매일은 더 못지켜 유저들을 실망시킨다. 예전 회사들은 매출에 목숨 걸더라고 게임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유저들은 복상사시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했다. 요즘은 적당한 퀄리티에 특전만 잔뜩 끼워 한몫 잡겠다고 달려드는 회사들이 대부분이다.

이 원화는 유저들의 정액을 고갈시키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렸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아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원화를 그린담 하던 말이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꼴리는 원화를 그릴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 정식으로 사과하고 초형귀 피규어라도 선물할 요량으로 발매일에 맞춰 사무실을 찾았다. 하지만 노인은 동인지로 대박을 쳐서 이미 은퇴한 후였다. 나는 그 노인이 작업했던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사과하면서 분위기 봐서 고백할 생각이었는데 안타까웠다. 사무실 앞 노인이 앉았던 벤치를 바라보다 앉아보니 맞은편 사무실 창이 여직원 탈의실이었다. 노인은 그때 저걸 보고 있었구나...

오랬만에 야근을 안하고 일찍 들어갔더니 아들놈 방문이 잠겨있었다. 방에서 흘러나오는 BGM을 들으니 오래전에 출시한 노인의 작품이었다. 쓰레기통에 휴지가 가득한 것 보니 아들놈도 어지간히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당황하면서 바지를 올리고 나오는 아들을 보니 문득 허름한 작업실에서 원화를 그리던 노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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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겜 원화를 좋아하다 보니 이렇게 저질스런 패러디밖에 못쓰겠어요. :)

http://fifteenkin.egloos.com/268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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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소설 방망이깍던노인

벌써 40여 분 전이다. 내가 갓 1렙된 지 얼마 안 돼서 봇에 내려가 살 때다. 집에서 출발 하는 길에, 작골을 잡고가기위해 일단 서폿을 기다려야 했다.

 

레이스 맞은편 레드버프 옆에 앉아서 w를 심던샤코가 있었다. 퍼블을 한 번 따려고 갱킹 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적피를 반이상 깍아 달라는것 같앗다.

 

"그냥좀 와주실순 없습니까?"했더니,

 

 "퍼블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힘들거든  미드 라이너 부르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샤코였다. 더와달라고 부탁조차 못하고 4렙때나 와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정글을 돌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도는 것 같더니, 5렙이 되도록 미드에도 가보고 탑에도 가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지금오면  투킬인데, 자꾸만 안오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와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내피도 빠져 집에가야할 상황이었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돌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와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킬딸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돈다는 말이오? 샤코님, 외고집이시구먼. 내피가 없다니까요."

 

샤코는 퉁명스럽게, 

 

"미드 라이너 부르시우. 난 안 가겠소."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내피는 소라카가 채워 주고 있으니,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돌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갱킹이란 제대로 가야지, 냅다 덮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돌던 것을 아예 멈추고 태연스럽게 춤이나 추고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6렙을찍고 블루 레드버프 리필하더니 갱킹을 왔다. 사실 적피는 2렙부터 반피 이하였다.

 

 내피도 적피만큼밖에 남지않은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샤코를 해 가지고 이길리가 없다.

 

 원딜 본위가 아니고 샤코 본위다. 그래 가지고 정글만 주구장창 돈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샤코다.

 

'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샤코는 태연히 허리를 펴고 봇 타워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샤코다워 보였다. 찢어진 눈매와 찢어진 입은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샤코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갱킹 와서 퍼블을 따고 더블킬을 했더니 서폿은 정말 적절하게 왔다고 난리다.. 그 어느샤코보다 개념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판 샤코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서폿의 설명을 들어 보니,

 

피가 너무 없으면 적이 낚시인줄알며, 피가 너무 많으면 타워앞에서 아예 나오질 않는단다.

 

요렇게 꼭개념있는 샤코는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샤코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http://bbs1.ruliweb.daum.net/gaia/do/ruliweb/detail/read?articleId=5265287&objCate1=45&bbsId=G001&itemId=9995&sortKey=depth&page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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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망이 깍던 노인 패러디 - 저자 [likedoit]

벌써 몇달 전이다. 내가 와우 공장 잡기 얼마 안 돼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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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파를 잡으러 가는 길에 공대원을들 모으기 위해 지혜의 골짜기로 가야했다

오그리마 지혜의골짜기쪽 길 가에 앉아서 재연마를 하는 술사가 있었다.

같이 네파를 잡으러 가려고 힐러가 되 달라고 부탁을 했다.

반드시 무득분으로 하자고 하는것이었다 . 올분으로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네파 하나 가지고 올분을 하려고하오? 올분할꺼든 다른 술사 찾으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술사였다. 더 우기지도 못하고 잡으러나 가자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재연마와 셋팅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재연마하는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맞춰 보고 저리 맞춰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 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연마하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잡으러가자고 해도 못 들은 체한다.

정공시간이 다가와서 바쁘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점점 정공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재연마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잡으러 가자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공장 잡을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연마한단 말이오? 주술사 양반 , 외고집이시구려. 정공 시간이 다가온다니까....."

술사는

"다른 술사 찾으시우. 난 안 가겠소."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정공 시간은 어차피 늦은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諦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연마 해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재대로 된 힐을 못한다니까. 재연마란 제대로 찍어어야지, 찍다가 놓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재연마하던것을 숫제 하다말고 태연스럽게 잠깐 담배탐좀 가지자고 하고 있는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술사는 또 재연마하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아이템은 다 깎여 없어질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아이템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가자고한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되어 있던 아이템 재연마다.

정공을 놓치고 대기를 타야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레이드를 해 가지고 취직이 될 턱이 없다. 공장 본위(本位)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

불친절(不親切)하고 무뚝뚝한 술사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술사는 태연히 허리를 펴고 오그리마 지혜의 골짜기 토템을 바라보고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술사다워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

그리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술사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조금은 덜해진 셈이다.

네파를 잡으러 검날에 왔더니 사제는 술사 힐이 쩐다고 야단이다.

정공 같이 다니던 술사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술사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사제의 설명을 들어 보면, 가속이너무 높으면 마나가 팍팍 마르고

같은 힐이라도 힘이 들며, 정신이 너무 높으면 힐량이 떨어져서 힐지원이 힘들고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술사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보기는 특화도를 올리고 완방을 맞추고 생존기를 적절하게 써주면

다시 피가차서 좀처럼 죽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사이 보기는, 피통이 한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보기에 힐을 넣을때, 질 좋은 성해를 잘 넣어서 흠뻑 적신다. 이것을 "성해 바른다."고 한다.

딜러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도적을 구하면 암살은 특화 , 전투는 숙련 얼마의 값으로 구별했고,

만숙력 만적중한 것은 2배이상 딜이 잘나왔다. 만숙만적이란, 피나는 재연마 끝에 17%와 26을 맞춘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만숙을 맞췄는지 만적을 맞춰는지 알 수가 없다.

말을 믿고 데려가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남이 보지도 않는데 수십번씩 재연마를 찔 리도 없고, 도적손만 듣고 데려가줄리도 없다.

옛날 게이머들은 레이드는 레이드요요 투기는 투기지만,

겜을 하는 그 순간만은 오직 훌륭한 캐릭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心血)을 기울여 캐릭 예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술사도 그런 심정에서 재연마를 했을것이다.

나는 그 술사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레이드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술사가 나 같은 공장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레이드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술사 찾아가 용봉탕에 오그리마 맥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오그리마 지혜의골짜기로 가는 길로 그 술사를 찾았다.

그러나 그 술사가 앉았던 자리에 술사는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술사가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쪽 지혜의골짜의 토템을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으로 날아갈 듯한 토템 끝으로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술사가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재연마를 깎다가

유연히 토템 끝의 구름을 바라보던 술사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정공을 들어갔더니 법사가 마부를 올리고 있었다. 전에 마부올리느라 피터지던 기억이 났다..

반지 마부를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사이는 마부올린다는 소리도 들을수 없다.

애수(哀愁)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재연마를하던 술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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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 깎는 노인

벌써 6개월 전이다. 내가 온게임넷에 취직한지 얼마 안되어 메가웹에 들어가 게임 진행요원으로 일할 때다. 마침 프로리그가 열리는 참이라 메가웹에 가서 진행요원 옷을 입고 일단 경기를 진행시켜야 했다.

왼쪽편 경기석 의자에 앉아서 마우스를 셋팅하던 노인이 있었다. 게임을 진행 시키기위해 마우스를 빨리 세팅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컴퓨터 운영체제로 98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냥 닥치고 XP에서 하면 안되냐고 했더니,
"운영체제 하나 가지고 그리 고집이시오? 싫다면 다른 데 가리다."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고집 부리지도 못하고 98을 깔아주며 마우스 셋팅이나 해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차코 열심히 마우스를 셋팅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제어판에 들어가서 이리저리 만져보는가 싶더니, 저물도록 마우스를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셋팅하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시작해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체한다. 게임시간이 바쁘니 빨리 시작 해달라고 해도 통 못들은채 대꾸가 없다. 점점 중계진은 지쳐가고, 방송시간은 늘어만 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셋팅하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경기 시작해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레어를 타야 하이브가 되지, 해쳐리가 제촉한다고 하이브가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마우스 잘만 움직이는 데 무얼 더 셋팅한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려, 경기시간이 없다니까."
노인은
"다른 선수 알아보시우. 난 안 하겠소."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경기 시간은 어차피 늦은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수 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셋팅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볼이 빠지고 끈이 꼬인다니까. 셋팅이라는건 제대로 해놔야지. 셋팅하다가 놓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셋팅하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화이트보드에다 유성매직으로 무언가를 쓰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중간광고로 블러드 캐슬만 다섯번 연달아 내보냈다. '서지훈, DDR만 안하면...' 쓰던 매직을 도로 내려놓고, 노인은 또 다시 마우스를 셋팅하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마우스 볼이 닳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마우스를 들고 볼을 이리저리 손가락으로 굴려 보더니, 다 됐다고 게임 방으로 들어온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마우스다.

경기가 마치고 밤 11시쯤에 퇴근해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셋팅을 해 가지고 방송이 될 턱이 없다. 시청자 본위가 아니라 자기 본위다.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퇴근준비를 하다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고있다. 그 때, 노인이 갑자기 미소를 얼굴에 가득 머금으며 영구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어딘지 모르게 간지나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 그리고 금방이라도 영구업ㅂ다~ 가 터져나올것 같은 눈매와 입모양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조금은 덜해진 셈이다.

집에 와서 오늘 경기 어땠느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최고의 명경기였다며 야단이다. 그저 흔한 경기들보다 훨씬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별로 대단한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말을 들어 보면, 양 선수가 서로 공격도 안하고 대치중이면 지루하기만 하고, 서로 치고박고 해도 실수를 서로 연발하면 짜증만 날뿐이며, 그저 관광경기라면 관광당한 선수만 불쌍하다는 것이고, 요렇게 서로 치열하게 공격을 주고 받으면서도 실수하나없이 팽팽한 명경기는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에 친구들과 했던 스타 한판은, 30분 적어도 10분까지는 서로 쳐들어가지 않고 자원을 캐는데 여념이 없어 경기 시간은 항상 1시간씩 되었다. 그러나 요사이 배틀넷에서 스타 한판하려 치면, 개나 소나 벙커링을 하지 않나, 4드론 저글링을 하지 않나 해서 경기시간이 채 10분을 넘지 못한다. 예전에는 게임을 시작할때, 서로 30분까지는 쳐들어가지 말자고 약속을 한다음에 비로소 게임을 시작한다. 이것을 "30분 노러쉬."라고 한다.

맵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무한 맵이 대세라, 보통의 것은 미네랄 하나당 10000씩 일렬로 쫘악 늘어서 있고, 그보다 나은것은 미네랄 하나당 50000씩 꽉꽉 들어차 있으며, $$$$$$$$$$$ 아이스 헌터 $$$$$$$$$$$$ 라고 한것은 미네랄이 두 줄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도 있었다.
그만큼 많은 자원을 바탕으로 장시간의 플레이를 약속한것이다. 30분 노러쉬라는 말을 믿고 자원만 죽어라 캐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일단 저그가 앞마당 먹을라 치면 테란은 죽자사자 마린 SCV우르르 달려나와 벙커링에 치즈러쉬다.
플토가 더블넥 하려 치면 저그는 죽자사자 저글링을 왕창 뽑아 넥서스를 날릴려고 안달이다.

옛날 게이머들은 승패는 승패요, 전적은 전적이지만, 게임을 하는 그 순간만은 오직 상대와 게임을 즐긴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오랜 시간을 투자해 게임을 즐기며 드라군 8부대 대 히드라 10부대, 캐리어 15대 대 배틀 15대등의 최고의 빅게임을 만들어 냈다. 오랜 기다림덕에 그런 멋지고 화려한 장면이 나왔던 것이다. 그냥 무작정 빨리 경기를 하고 빨리 승패를 가르길 원하는 지금과는 달리 순수하게 게임 그 자체를 즐긴 것이다.

이 마우스 셋팅도 그런 심정에서 셋팅 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무슨 프로게이머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일개 진행요원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최고의 명경기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말로 바뀌어 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 라면이라도 한 박스 사가지고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프로리그 하는 시간에 메가웹에 출근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와 있지 아니했다.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니 이미 팀을 옮긴지 오래라는 것이다. 짊어지고 있던 라면 한박스를 땅에 떨어트린체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라면 한박스가 금새 온데 간데 없어지는 사이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한 서점의 잡지 코너를 바라다 보았다.
수많은 잡지들중 esFORCE 창간호가 눈에 띄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렇게 웃고 있었구나. 열심히 마우스를 셋팅하다가 모니터를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메가웹에 들어갔더니 선수들이 빨리 조인했다고 야단이다. 전에 경기준비가 늦어져 해설자들이 시간때울려고 뻘뻘 흘리던 생각이 난다. 그 때 하던 해설자들의 농담따먹기를 들은지도 참 오래다. 요사이는 전적 5:5 이야기도 들을 수가 없다. 애수를 자아내던 '쓰리디 알피지의 리더~" 라는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6개월 전, 마우스를 셋팅하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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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규어 깎던 노인

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가 대학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자취방에 내려가 살 때다. 학교 왔다 가는 길에, 치바역으로 가기 위해 아키하바라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피규어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피규어를 하나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피규어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피규어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피규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라디오 회관 지붕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집에 와서 피규어를 내놨더니 여동생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면, 포오즈가 너무 화려하면 배치를 바꾸다가 분질러먹기를 잘 하고 공간을 많이 먹으며, 포오즈가 너무 평범하면 금방 질려 박스에 넣어버리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동인지는 혹 딸감이 떨어지면 페이지를 넘기기만 해도 다음 코미케까지는 써먹을 수가 있다. 그러나, 요새 동인지는 표지만 그럴듯하고 딸감이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동인지를 그릴 때, 질 좋은 딸감을 정성들여 그리고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코미케에 내보인다. 이것을 소라 붙인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컴퓨터를 써서 금방 그린다. 그러나 꼴리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몇 엔 하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소라 붙일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야동만 해도 그러다. 옛날에는 디브이디를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윗질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노모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노모란 아무런 수정을 가하지 않은 것이다. 표지로 보아서는 모자이크를 했는지 안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불법한 무수정판을 구하러 다닐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구하는 그 순간만은 오직 꼴릿한 물건을 구한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명작 AV를 배포하였다.

 이 피규어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메이드 카페에라도 데려가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라디오 회관을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피규어를 깎다가 유연히 추녀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陶淵明)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http://gall.dcinside.com/inflow/inflow_index.php?query=%ED%94%BC%EA%B7%9C%EC%96%B4+%EA%B9%8E%EB%8D%98+%EB%85%B8%EC%9D%B8&no=145921&id=anigall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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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스텀 기타 만들던 노인

벌써 몇 년 전이다. 쓰던 기타가 영 맘에 안들어 기타를 새로 사러 낙원 상가에

 

갈 때다. 홍대를 들렸다가 낙원 상가로 가기위해 종로3가역에서 일단 지하철을 내려야 했다.

 

낙원 상가 인근 길 가에 조그마한 공방에서 커스텀 기타를 만드는 노인이 있었다.

 

갑자기 호기심이 동해 기타 하나 만들 수 있냐고 스펙을 불러 줬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일렉 하나 가지고 값을 깎으려오?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깍지도 못하고 만들어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원목으로 바디와 쓰루넥을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쉐이프가 나오는 것 같더니

 

보름이 지나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배선하고 픽업

 

달아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체한다. 공연 날짜가 바쁘니 빨리 만들어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점점 공연 날짜가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적당히 마무리해도 좋으니 그만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노력과 정성을 다해야 제대로 되지, 카와사미 다그친다고 ESP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만든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려. 공연 날짜가

 

얼마 안남았다니깐....“

 

노인은

 

“다른데 가 사우. 난 안팔겠소”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몇 달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안 살수도 없고 공연 날짜에는 어차피

 

못 맞출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만들어 보시오”

 

“글세, 재촉해서 만들면 점점 넥이 휘고 버징이 난다니깐. 일렉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만들다 말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만들던 기타를 숫제 던져 놓고 태연스럽게 옆에 있던 기타로 크로매틱을 하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몇일 뒤에, 노인은 또 쉐이프를 다듬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나는 바디고 넥이고 다 깍여 없어질 것만 같았다. 얼마 후에 도색하고 프렉을 박고 브릿지,

 

EMG픽업을 달고 배선을 하더니 이리저리 돌려 보고,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보름전부터 완성된 기타다.

 

공연날짜를 놓치고 이전 기타로 공연을 한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서울아트시네마 간판을 바라보고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는, 그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 그리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려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조금은 덜해진 셈이다.

 

 

연습실에 와서 기타를 내놨더니, 리드기타 형이 한번 쳐보고는 죽인다고 야단이다.

 

자기가 가진 커크헤밋 시그네쳐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이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형의 설명을 들어보면, 넥이 너무 두꺼워도 얇아도 연주가 힘들며

 

바디 쉐이프도 울림을 제대로 낼 수 있는 꼭 이렇게 알맞은 것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120W  메사부기 앰프에 꽂아놓고 소리를 들어보니 과연 대단했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청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 데킬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합주 끝나는 길에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있던 공방은 없어지고 노인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그 공방이 있던 자리 앞에 멍하게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쪽 서울아트시네마 간판을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으로 날아갈 듯한 간판 끝으로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방망이를 깎다가 유연히 건물에 걸린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집에 들어갔더니 동생놈이 프레이즈를 뜯고 있었다. 전에 잉베이 스타일을 스윕피킹으로 후루룩 하던 생각이 났다.

 

기타를 쳐본지도 참 오래다.

 

요사이는 밴드들의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온갖 전자음만 난무하는게 오래다.

 

문든 몇 년전 기타를 만들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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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씀.......

 

그냥 가볍게 읽어주세요 ㅋㅋㅋㅋㅋ



http://cafe.daum.net/crescents/tk5/2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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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노벨 쓰던 노인

벌써 오래전 일이다. 편집쪽으로 자리를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아 괜찮은 기획안을 하나 받았다. 요즘 인기있는 소재라 적당한 스토리에 헐벗은 삽화를 붙이면 되겠다는 생각에 미소녀 잘그리는 삽화가와 아예 계약까지 해놓고 문장이 매끄럽다는 노인의 작업실을 찾았다. 삽화에 무리했기 때문에 이쪽은 흥정할 요량으로 얼마에 써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원고료를 카마치보다 더 비싸게 부르는 것이었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미디어믹스 전개를 장담할 수 없는 기획인데..." 했더니,

"원고 하나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출판비 모자라면 컬러 빼든지." 내지에 컬러 일러스트가 없는 라이트노벨을 어떻게 파냐고 반문해도 노인은 고집불통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재미있게만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노트북을 켜더니 타이핑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스기이 히카루처럼 광속으로 써내려 가더니 한참을 지나도 같은 곳만 계속 고치고 있다. 내가 보기엔 별 문제 없는 표현도 옆에 사전과 참고 서적까지 뒤적이며 계속 바꾸는 것이었다. 삽화가가 기다리고 있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하반기 매출 때문에 발매일을 빠듯하게 잡아놔 안그래도 시간이 없는데 원고까지 이러니 갑갑함을 넘어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고치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쓴 사람이 만족해야 읽는 사람도 재밌지. 무조건 헛소리 한다고 니시오 글이 나오는 줄 아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편집자가 괜찮다는데 무얼 더 고친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발매일 연기 못한다구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사람 시키구려. 난 안 쓰겠소." 하고 내뱉는다. 나오지도 않은 걸 연중시킬 수도 없고, 삽화 일정만 당기면 발매일은 얼추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고쳐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싸구려 표현 밖에 안나온다니까. 이즈루같이 후지게 써놓고 애니빨만 기대하면 쓰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하지만 이번에는 브라우저를 띄우더니 2ch과 니코동 순례하면서 정성스럽게 덧글까지 다는게 아닌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 맞춤법 검사를 하더니 다 됐다고 USB에 담아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원고였다.

마감 앞당겼다고 삽화가에게 욕까지 먹고 돌아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글을 쓰면 편집자가 좋아할리가 없다. 출판사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놓고는 카마치보다 더 비싸게 부른다. 출판사에게 개기면 말로가 어떤지도 모르는 멍청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하게 벤치에 앉아 관능소설을 읽고 있었다. 아랫도리가 불룩하길래 저런 노인도 세울 수 있는 야설이 있다니 하면서 제목이라도 물어보려고 다가갔는데 삽화에 남자 둘이 알몸으로 엉겨 있었다. 노인의 표정을 보고 더 있으면 안될 것 같아 서둘러 자리를 떴다.

편집부로 돌아와 원고를 내놨더니, 교정팀이 고칠 생각은 않고 감탄하면서 원고만 넘기고 있다. 전에 받았던 주력 작가의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 오리콘 1위는 따논 당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를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교정팀 설명을 들어보니, 만담의 템포가 좋고 필요한 타이밍에 빵빵 터져주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 같은 츤데레라도 츤과 데레의 비율이 절묘해 독자들을 녹이기에 충분하고 주인공이 평소에는 대충인 것 같아도 히로인이 힘들어할 때 진솔하게 감싸주기 때문에 나이스 가이로서의 대리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예전에는 긴 제목에 표지를 미소녀로 도배하지 않아도 끌리는 작품들이 많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간 때우는 용도라도 글쓰기의 기본은 갖추고 있었고 장르에 관계 없이 세계관과 캐릭터 설정에 신경을 많이 썼다. 하지만 요즘 라이트노벨은 내용과 따로 노는 자극적인 제목에 팔릴만한 소재만 내세우고 거기에 스토리를 끼워넣기 때문에 읽다보면 앞뒤가 안맞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기네 기준에 맞춰 재미를 느끼라고 독자들에게 강요하는 꼴이다.

캐릭터 조형만 해도 그렇다. 예전에는 특정 속성을 강조하지 않아도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녹아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 캐릭터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무슨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속성별로 미소녀 소대를 만들어 놓고 권마다 물량을 풀어 독자들에게 골라 잡으라고 한다. 그러면서 정 붙일 틈도 없이 조금만 안팔려도 연중시키기 일쑤다. 예전 작가와 출판사들은 판매량이 목숨 걸더라도 책을 내는 그 순간만은 독자들이 다음 권 빨리 내달라고 난리를 치게 만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했다. 요즘은 적당한 텍스트에 아슬아슬한 삽화, 어나더 커버와 같은 특전으로 바람몰이하려는 출판사가 대부분이다.

이 원고는 책을 잡고 있을 2시간 동안 독자들을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각오로 썼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아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글을 쓴담 하던 말이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재미있는 라이트노벨을 쓸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 정식으로 사과하고 코믹판과 드라마 CD 기획 중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려 초판을 들고 작업실을 찾았다. 하지만 노인은 그 때 소설에 감동을 받았는지 BL 전문 작가로 대박을 쳐서 번화가로 이사간 후였다. 나는 그 노인이 작업했던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우리 출판사에도 BL 전문 브랜드가 있다는 사실을 노인은 모르고 있었구나...

오랬만에 야근을 안하고 일찍 들어갔더니 택배가 와 있었다. 아들에게 온 거지만 무심코 뜯어보니 오래 전에 노인이 쓴 그 라이트노벨이 들어 있었다.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물어보니 절판 후 프리미엄이 엄청 붙어 옥션에서 힘들게 낙찰받았다고 한다. 낙찰가가 뜨악 소리가 날 정도라 아들이 어떻게 돈을 마련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래도 책을 들고 팔짝팔짝 뛰는 아들놈을 보니 문득 허름한 작업실에서 원고를 쓰던 노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일 출근하면 서랍 속에 잠자고 있던 초판을 꼭 옥션에 올려야겠다...



http://fifteenkin.egloos.com/2859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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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보던 노인

벌써 사십여 일 전이다. 내가 복당한 지 얼마 안 돼서 여의도에 들락거릴 때다. 당사 나왔다 가는 길에 강남역으로 가기 위해 여의도에서 일단 전차(電車)를 갈아타야 했다.
여의도 모처에서 컴퓨터 클리닉을 하는 노인이 있었다. 참신한 인물이 될 거 같아서 출마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태도가 굉장히 거만스러운 것 같았다. 좀 고분고분히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사람 출마시키려고 하면서 우습게 보려오? 맘에 안 들면 다른 사람 찾아보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출마나 해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태도를 정할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간을 보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출마하라고 해도 못 들은 체한다. 경선이 바쁘니 빨리 등록하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점점 대선 날자가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생각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출마하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유권자가 좋다는데 무얼 더 생각한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려. 시간이 없다니까……."
노인은
"다른 후보 찾아보우. 난 안 나가겠소."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경선에는 어차피 늦은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諦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고민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국민의 소리도 들어봐야지, 무조건 나가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생각하던 것을 숫제 접어버리고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꺼내 트윗질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간을 보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후보 등록 기간이 지나 버릴 것 같다. 또, 얼마 후에 인터넷에 접속해 이리저리 검색해 보더니, 하겠다고 한다. 사실, 결론은 아까부터 나 있던 거 아닌가.

경선을 놓치고 흥행에 실패한 당의 입장을 생각해보니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정치를 해 가지고 정치가 될 턱이 없다. 당원들 본위(本位)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 불친절(不親切)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증권거래소를 바라보고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 그리고 욕심사나운 눈매와 통통한 볼살에 내 마음은 열불이 터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더욱 심해진 셈이다.

당에 와서 후보자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좋은 사람 찾았다고 야단이다. 기존 인사들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쪽 사람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설명을 들어 보면, 너무 좌빨이면 국민들에게 의심을 사고, 수꼴이면 당연히 지지자들에게 욕을 먹는다고 한다. 요렇게 꼭 알맞은 후보는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민주투사는, 정치헌금이니 공천장사니 하는 말을 몰랐다. 전부 물밑에서 드러나지 않게 꼭꼭 숨겼다. 그러나 요사이 자칭 민주투사들은, 비리가 한 번 드러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노빠만 해도 그렇다. 노무현이 죽고 없는 지금 누가 진정한 노무현의 후계자인지 검증해 줄 사람은 없다. 지금은 개나 소나 노무현의 후계자라는 말만 난무한다. 남이 보지도 않는데 과거를 밝힐 리도 없고, 또한 말만 믿고 지지해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야당은 계파는 계파요 당권은 당권이었지만, 여당과 싸우는 그 순간만은 오직 한덩이가 되어 투쟁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心血)을 기울여 정치를 했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정치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조차 입당을 못 시키면서 어떻게 수권정당이 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 요정에서 거하게 대접하며 진심으로 영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다시 여의도로 가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은 이미 새로운 당을 만들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울화통이 터지려고 했다. 맞은쪽 증권거래소를 바라다보았다. 오늘도 저 안에서 안랩의 주가가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겠지. 아, 그 때 그 노인이 그걸 노리고 있었구나. 열심히 간을 보다가 우연히 속내를 드러내 보이던 노인의 욕심스런 모습이 떠올랐다.


http://rumic71.egloos.com/3879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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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편 만들던 아저씨

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가 갓 석사된 지 얼마 안 돼서 학교 앞에서 자취할 때다. 샘플을 잘라 갈아 연구실로 가져가는 길에, 박편 만들어주는 아저씨가 있었다. 박편을 하나 가지고 가려고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박편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아저씨였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만들어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연마편을 유리에 붙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잘 붙이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붙었는데, 마냥 기다리고만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SEM(Scanning Electron Microscope)을 예약해놓은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붙이지 않아도 좋으니 빨리 잘라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연마편이 유리에 붙을 만큼 붙어야 박편이 되지, 재촉한다고 연마편이 유리에 붙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박편 만들어달라는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한다는 말이오? 이분 외고집이시구먼. 시간이 없다니까요."

아저씨는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하시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SEM 예약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해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만들다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샘플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다른 슬랩을 갈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박편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그제서야 돌을 잘라내고 대충 갈아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굳기는 아까부터 다 굳어있던 박편이다.
SEM 예약시간을 놓치고 언제 다시 예약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박편을 만들어 가지고 실험이 될 턱이 없다. 실험실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아저씨는 태연히 허리를 펴고 다른 박편을 만들고 있었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고마워 보였다. 부드러운 다크서클와 원형탈모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아저씨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랩에 와서 박편을 내놨더니 교수님은 이쁘게 만들어졌다고 야단이다. 예전에 만들었던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교수님의 설명을 들어 보니, 박편이 잘 안붙으면 돌을 자를 때 돌이 떨어져 나가거나 해서 샘플이 망가질 위험이 있고, 공기방울이 들어가 제대로 된 샘플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아저씨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중략)

이 박편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아저씨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실험을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사람이 있으니 나 같은 대학원생도 실험을 할 수 있는 거지.'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아저씨를 찾아가서 맥주에 통닭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예약한 SEM실로 가는 길로 그 아저씨를 찾았다. 그러나 그 아저씨가 있던 방에 아저씨는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아저씨의 방문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건물의 통닭집을 바라보았다. 아, 그 때 그 아저씨가 저 통닭집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박편을 만들다 슬랩을 갈던 아저씨의 쓸쓸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절단기의 웽 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오늘 랩 안에 들어갔더니 학부생이 박편을 갈고 있었다. 전에 샘플을 하나하나 잘라가며 박편을 만들었던 생각이 난다. 박편 제작을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절단기가 돌아가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년 전 박편 만들던 아저씨의 모습이 떠오른다.


* 참고 설명: 박편은 유리에 돌을 빛이 투과할 정도로 얇게 붙인 것으로, 현미경을 통해 결정 구조를 관찰하기 위해 제작하는 것이다. 박편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샘플을 3*4*3cm 정도의 연마편으로 자른 다음, 이것을 매끈하게 갈아(사포 등의 연마제를 사용한다) 접착제를 이용해 유리에 붙이고 남는 부분을 약 1mm 정도 두께로 잘라낸 다음 유리에 붙어 있는 돌을 다시 갈아서 만든다. 이 때, 유리에 돌이 잘 붙지 않으면 유리와 돌 사이에 공기방울이 들어가는데, 공기방울이 있으면 현미경 상에서 검게 보이기 때문에 좋지 않다.


ps. 하지만 현실은 그 아저씨가 박편을 정말 대충대충 만들어준다는 것 -_- 차라리 기기 구해서 직접 만들어볼까도 고민중이지만, 학내에는 그런 시설이 없네요. 타 대학에 가서 빌려서 만들어볼까 -_- 이런 박편으로는 도저히 사진을 써먹을 수 없는데.


출처:박편 만들던 아저씨


http://fossil.egloos.com/387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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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 돌리던 포닭

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가 갓 석사된 지 얼마 안 돼서 학교 기숙사에 내려가 살 때다. 학교 식당 왔다 가는 길에, 클린후드로 가기 위해 실험실에서 일단 들러야 했다. 실험실 맞은편 벤치에 앉아서 젤을 돌리는 포닭이 있었다. 젤을 하나 가지고 가려고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젤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포닭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만들어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agarose를 녹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녹이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녹이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클린후드 예약해놓은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녹이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젤이 되지, 생 agarose가 재촉한다고 젤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한다는 말이오? 이분 외고집이시구먼. 시간이 없다니까요."

포닭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cell culture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해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만들다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굳히던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피펫통에 피펫팁을 채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젤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굳어있던 젤이다.
클린후드 예약시간을 놓치고 내일 cell culture를 두배로 해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프렙를 해 가지고 실험이 될 턱이 없다. 랩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논문 번역만 무척 시킨다. 랩도덕(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포닭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포닭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DNA seqeunce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과학도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다크서클와 원형탈모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포닭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랩에 와서 젤을 내놨더니 교수님은 이쁘게 만들어졌다고 야단이다. 원래 랩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교수님의 설명을 들어 보니, 젤이 너무 두꺼우면 젤 돌리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젤이 너무 얇으면 UV에 올려놓다 깨진다는것이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포닭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중략)

이 젤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포닭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실험을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사람이 포닭->통닭 테크나 타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데이터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포닭을 찾아가서 맥주에 통닭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클린후드가는 길로 그 포닭을 찾았다. 그러나 그 포닭이 앉았던 벤치에 포닭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포닭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건물의 통닭집을 바라보았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통닭집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젤을 만들다 유연히 센돌이 끝에 타이머를 바라보던 포닭의 쓸쓸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Qiagen gel extraction kit' 의 프로토콜이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학부생이 젤을 자르고 있었다. 전에 에펜돌프 튜브에 솜을 끼워 gel extraction을 하던 생각이 난다. 젤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센돌이 돌아가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년 전 젤 돌리던 포닭의 모습이 떠오른다.


출처:젤 돌리던 포닭



http://fiatlux.egloos.com/387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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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드 깎는 노인


벌써 사 일전 일이다. 공대서 밤새다 가는길에 마스터이로 캐리나 해볼까 하고 PC방을 갔다.
피씨방 한 구석에서 비쥬얼 스튜디오를 들여다 보고 있는 노인이 있었다. 진행하던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 버그나 잡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줄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깟 MFC 하나 가지고 값을 깎으려오? 비싸거든 딴데 하청주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깎지도 못하고 빨리 신택스 오류나 잡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디버거를 돌리는가 했더니, 저물도록 테이블을 만들었다가 드랍했다가 이리 저리 부질없는 쿼리나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짜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체한다. 과제 제출 시간이 다 되었으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점점 제출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짜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슨 기능을 추가한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려. 제출해야 된다니까……."
노인은
"다른 데 하청주시우. 난 코드 지우것소."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제출은 어차피 늦은 것 같고, 교수님은 광분하셨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諦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짜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코드가 더러워진다니까. 코드란 아름답게 짜야지, 전역 변수 따윌 쓰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숫제 작업하던 비쥬얼 스튜디오랑 MySQL 콘솔을 최소화 시킨 후 태연스럽게 랭크게임에서 정글 마스터이로 똥을 싸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짜기 시작한다. 얼마 후에 다시 비쥬얼 스튜디오을 켜고 F7누르고 컨트롤 F5 누르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되어 있던 프로젝트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클라이언트 본위(本位)가 아니고 개발자 본위다. 불친절(不親切)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도서관 추녀를 바라보고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공대생 다워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 그리고 잠을 못자 거무죽죽한 눈매와 찌든 담배냄새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이 공대생에 대한 측은함으로 바뀐 것이었다.

다음날 다시 공대로 가서 코드를 발표 했더니, 교수님은 코드가 예쁘고 자료구조가 아름답게 잘 되었으며 우아한 Entity-Contoller-IOHandler패턴이 적용되었다고 야단이다. 작년 애들이 짰던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대학원 형들의 설명을 들어 보니, 코드가 깔끔하면 퍼포먼스가 떨어져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며, 퍼포먼스가 잘 나오면 으레 코드가 더럽거나 심지어는 감히 입에 담을 수 조차 없는 볼드모트같은 존재인 goto까지는 쓰는 판국인데, 이처럼 딱 맞는 코드는 잘 만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http://gall.dcinside.com/list.php?id=programming&no=343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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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코드 짜던 노인


벌써 사년여 전이다. 내가 프갤온 지 얼마 안 돼서 코드패드로 깔짝대던 때다. 더블릿에 문제 풀러 가는 길에 프갤에 잠깐 들러 일단 문제를 뿌려보고 가려 했다.
프갤에 글마다 앉아서 댓글을 싸지르는 노인이 있었다. 더블릿 문제 하나 풀려고 코딩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욕을 굉장히 바가지로 싸지르는것 같았다. 좀 짜주면 안되겠냐 했더니

"그깟 알고리즘 문제 하나 가지고 짜달라오? 모르겠거든 전과나 하슈"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였다. 더 짜지도 못하고 짜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짜고 있었다. 처음에는 빠르게 댓글을 다는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컴파일 해보고 저리 컴파일하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코드를 더 줄이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제출 한다 해도 못 들은 체한다. 기다리기 지루하니 빨리 짜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점점 컴파일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코드를 줄이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짜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줄일 만큼 줄여야 숏코드가 되지, 생코드가 재촉한다고 숏코드가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풀 사람이 좋다는 데 무얼 더 줄인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려,,, 더 안줄여도 된다니까...."
노인은
"다른 데 가 짜달라우. 난 안 짜주겠소."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제출 할 수도 없고, 어차피 늦은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諦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줄여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코드란 제대로 짜야지, 짜다가 손놓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짜던 것을 숫제 IDEONE에 올려놓고 태연스럽게 웹컴파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줄이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코드는 메인함수 하나만 남아버릴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코드를 보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짜기는 아까부터 다 짜여져 있던 코드다.

1등을 놓치고 다음으로 제출해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코드를 짜가지고 취업해서 갑질을 할 턱이 없다. 클라이언트 본위(本位)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 불친절(不親切)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푸념글을 싸고 언어 덕후질을 하고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Geek다워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 그리고 핵심을 찌르는 댓글과 시니컬 하면서 알려줄건 다 알려주는 모습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조금은 덜해진 셈이다.

더블릿에 가서 코드를 제출했더니, 자유게시판에서 어떻게 짠거냐고 야단이다. 기존에 있던 코드들보다 훨씬 짧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단순히 변수명만 한글자로 바꾼다고, 타입을 없애고 무조건 정수형으로 한다고 숏코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별찍기를 할때 이중for문에 printf를 쓰는 대신에 for문 한개에 puts쓰는 것이 압도적으로 코드량이 줄어든다는 것이고 요렇게 애초에 접근방식을 달리하는 생각을 뒤집는 숏코드는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C언어는, 객체를 표현할때 구조체를 쓰고 함수포인터로 메서드를 표현하면 마치 OOP 처럼 사용하여 좀처럼 실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사이 C++ 은 한번 실수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런타임 오류를 잡을 때, gdb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명령어로 오류를 잡아낸다. 이것을 '디버깅한다'고 한다.

JAVA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JAVA 한다고 하면 보통 등급은 Servlet를 할 수 있는지, 그보다 나은 놈은 JSP를 할 수 있는지로 구별했고, 스프링을 쓴다는 놈은 3배 이상 비쌌다. 스프링이란 자바 플랫폼을 위한 오픈소스 애플리케이션 프레임워크이다. 말로는 스프링을 마스터 했는지 똥코더인지 알 수가 없다. 말을 믿고 시키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돈도 적게 주는데 최선을 다할 리도 없고, 또한 말만 믿고 3배나 몸값을 쳐줄 갑들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生計)는 생계지만, 코드를 짜는 그 순간만은 오직 훌륭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心血)을 기울여 명품 코드를 만들어 냈다. 이 숏코드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코더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청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코드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 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디시에 방문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죽치고 있었던 프갤에 노인은 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마지막 남긴 글을 [프갤 망하가는구나 ㄱㅆㄲ드라!!] 멍하니 읽고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쪽 일간 베스트 게시물에 코드패드 주소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댓글에 IDE ONE 주소를 알려주는 댓글도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사이트를 사용하였구나. 열심히 숏코드를 짜다가 유연히 웹 컴파일을 하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프갤을 클릭했더니 잡놈들이 질문글을 싸고 있었다. 전에 C언어 질문자를 쿵쿵 두들겨서 욕설을 내뱉던 생각이 난다. 숏코드를 구경한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숏코딩하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경쟁심을 자아내던 그 짧은 코드도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문득 사년 여 전, 숏코드 짜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http://gall.dcinside.com/list.php?id=programming&no=343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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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심 깎던 노인

            윤오영(尹五榮)(원작 방망이 깎던 노인의 작가님)


벌써 40여 일 전이다. iPhone5가 갓 나온지 얼마 안 돼서 의정부에 내려가 살 때다.
서울 왔다 가는 길에, 청량리역으로 가기 위해 동대문에서 일단 전철를 내려야 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쓰던 유심을 나노유심으로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유심을 한 번 깎아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유심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깎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깍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깎을 만큼 깎아야 나노가 되지, 마이크로 재촉한다고 나노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내유심은..?)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유심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나노심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동대문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집에 와서 나노심을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심을 덜 깎으면 iPhone5에 꼽을때 잘 않들어가며, 심을 너무 깎으면 iPhone5유심 슬롯 안에서 논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엣날부터 내려오는 죽기(竹器)는 혹 대쪽이 떨어지면 쪽을 대고 물수건으로 겉을 씻고 곧 뜨거운 인두로 다리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죽기는 대쪽이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죽기에 대를 붙일 때, 질 좋은 부레를 잘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소라 붙인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접착제를 써서 직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소라 붙일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약재(藥材)만 해도 그러다. 옛날에는 숙지황(熟地黃)을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윗질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구증구포(九蒸九 )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구증구포란 아홉 번 쪄내고 말린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다섯 번을 쪘는지 열 번을 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아홉 번씩 찔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나노심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동대문의 지붕 추녀를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유심을 깎다가 유연히 추녀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陶淵明)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북어 자반을 뜯고 있었다. 전에 더덕, 북어를 방망이로 쿵쿵 두들겨서 먹던 생각이 난다.

2G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무적유심 하는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만호도의성(萬戶 衣聲)이니 위군추야도의성(爲君秋夜 衣聲)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일 전 유심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출처-클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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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깍던노인

벌써 1년 여 전이다.  내가 1학년에 막 입학해 1층에서 맴돌 때이다. 당시 치아형태학 실습을 하기 위해서는 2층 실습실을 가야만 했다. 실습실 가에 쭈그리고 앉아서 파라핀으로 치아를 깍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치아형태학 실습시간에 제출하기 위해 상악 견치를 깍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치아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깍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알콜램프의 불을 붙이고는 서서히 파라핀으로 이리저리 모양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빨리 하는 것 같더니 파라핀을 녹였다 다시 붙였다, 날이 저물도록 이리 붙여보고 깍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상악견치의 모양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깍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치아 제출 시간이 빠듯해 왔다. 교수님에게 혼날 생각을 하니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깍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깍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제출시간이 다 됐다니까요. 늦게내면 혼난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제출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깍아 보시오."

"글세, 재촉을 하면 점점 절치도 아니고 구치도 아닌게 된다니까. 치아란 제대로 깍아야지.
깍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깍던 것을 손아귀에 넣고 휴지로 닦으면서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서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완성된 파라핀 상악 견치를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있던 치아였다.

늦게 제출하여 교수님께 한마디 들어야 하는 나로서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완전 엿장수 맘대로다. 그래 가지고 값은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으~~~' ."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2층 실습실 창문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교수님 방에 찾아가서 치아를 내놨더니 교수님이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지영이 누나보다 잘 깎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것이 남의 것과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교수님의 설명을 들어보니, 이 치아의 경우 우각상징과 만곡상징 등이 뚜렷히 드러나고 실제 크기와 거의 흡사하며 윤이 날 정도로 매끈하게 깍여져 있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파라핀 왁스의 치아 깍는 요령은 왁스를 여러겹 붙여 그 사이 공기가 들어가지 못하게 꽉 압축시키고 직사각형 형태를 만들어서 조심스럽게 조각을 했다. 예전에는 치아를 깍아도 틈새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시간이 무지 걸린다. 왁스 낱개를 붙이고 굳기를 기다렸다 또 붙이고... 그러나 요새는 파라핀 왁스를 한방에 직사각형 모양으로 접어서 틈새를 대충 달군 조각칼로 메운다. 물론 금방 된다. 그러나 조각하다보면 틈새가 생기게 되고 불의의 경우 왁스 낱개가 서로 떨어지는 사태도 발생한다. 옛날 사람들은 학점은 학점이요 치아를 깍는 그 순간만은 오직 실제 치아에 가까운 치아를 깍는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파라핀 왁스 치아를 깍았다.

이 치아도 그런 심정으로 깍았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이렇게 이쁘고 매끈한 치아 조각품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소주에 삼겸살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수업시간에 2층 실습실에 올라가는 길에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있던 그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응급센터를 바라보았다. 이제 지어진지 1년도 안되는 새끈한 건물. 아,, 그 때 그 노인은 저 응급센터를 보고 있었구나. 저 건물의 새끈한 모습을 보며 파라핀 왁스를 잡티 하나 없이 만들었구나.

유연히 대학병원 건물들 중에 가장 깨끗하고 잡티없는 응급센터를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실습실에 올라갔더니 01학번들이 인레이 왁스로 상악 제 1 대구치를 깎고 있었다. 전에 파라핀 왁스로 치아를 깍던 생각이 난다. 요새는 파라핀 대신 인레이를 쓰는 가 보다. 불에 약간만 달궈도 조각칼이 잘 들던 파라핀을 본지도 오래다. 문득 1년여 전에 파라핀 왁스로 치아를 깍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http://dental2804.com/bbs/index.php?mid=comm_fboard&search_keyword=%EC%B9%98%EC%95%84%EA%B9%8D%EB%8A%94&sort_index=readed_count&order_type=desc&search_target=title&document_srl=35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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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설]보더 몰딩하던 노인(퍼옴 -_-)
       
       
글쓴이 : [레벨:3]헨지
조회 448  
2007.12.14 00:46
벌써 4년전의 일이다.

내 풀덴쳐가 안 맞은지 얼마 안돼서 의정부에 내려가 살 때다.

서울 왔다가는 길에 용한 머구리가 있다길래 풀덴쳐를 하러 가기로 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머구리 노인이 있었다.

덴쳐를 해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줄 수 없읍니까?”

했더니,

“틀니 하나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비싸거던 다른데 가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맞춰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대충 내 무치악에 맞는 개인 트레이를 고르더니 컴파운드를 녹여 보더 몰딩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볼을 잡아 당기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돌리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만 인상을 뜨라고 해도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이상 보더 몰딩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인상을 떠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내며,

“끊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보더 몰딩한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 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가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 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해서, 될대로 되라고 체념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덴쳐가 안맞는다니까. 덴쳐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보더 몰딩하다가 그만두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개인 트레이를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피우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트레이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알지네이트로 인상을 떠 준다.

컴파운드가 굳은지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트레이다.

차를 놓지고 다음 차로 가야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머구리 짓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머구리이다.‘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동대문 지붕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수염에 내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머구리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얼마 후, 집에 와서 덴쳐를 내놨더니, 아내는 잘 맞춰왔다고 야단이다.

전에 한 틀니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보니 플랜지가 너무 길면 점막에 sore spot이 생기기 쉽고 하악에서 덴쳐가 따로 놀며, 플랜지가 너무 짧으면 보더 실링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리텐션이 떨어진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채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머구리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그런데 며칠 후 릿지가 아프고 덴쳐가 맞지 않아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 끝 -


http://dental2804.com/bbs/index.php?document_srl=303232&mid=comm_fboard&sort_index=readed_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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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매미 깎는 노인

내가 마도를 한지 얼마 안 돼서였다.

마도를 키우기 위해 이계에서 일단 강맹 고맴을 득 해야했다.

9킹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강맹 고맴을 모으고 있는 폐인마도가 있었다.

수십년전 잊혀진 추억의 고맴 난사를 보고싶어서 고맴 발사를 부탁 했다.

그러나 딜이 예전에 비해 너무 길어 보였다.

"좀 더 빠르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고맴 하나 가지고 밸런스 패치 하겠소? 느리거든 쌘 강일 드릴이나 맞추시오."

대단히 무뚝뚝한 폐인이었다. 딜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고맴이나 잘 써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이계를 돌고있었다.

시간이지나 강맹고맴을 모두 다 먹고 빛잔 팔찌를 남겨둔 이후, 나는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더 맞추지 않아도 좋으니 빨리 보여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모을 만큼 모아야 빠르지, 드릴이 재촉한다고 대성공이 뜨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빛잔 한부위 없어도 좋다는데 무얼 더 모은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던파가 망한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이 빛잔 팔찌만 먹으면 모든게 해결된다니까. 싫으면 난 안 안돌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돌고 있다가 나갈 수도 없고, 빛잔 팔찌만 기다리기로하였다.

"그럼, 빛잔대신 강맹 고맴 팔찌 까지만 먹어 보시오."

"글쎄, 빛잔 팔찌로 껴야 한다니까. 요즘 마도들은 제정신이 아니구만."

"아, 알았소. 그냥 마음대로 해보시오." 노인의 고집에, 내가 먼저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그 노인은 결국 빛잔 팔찌를 먹었고, 그렇게 고맴 2(?)초를 만든 상태로

고맴을 쏘자 놀라는 파티원들을 발견할수있었다.

하향됐다며 고맴을 외면하는 마도들에게 일침을 놓던 그 폐인은 이제 어디로갔는지 찾아볼수가 없게되었다.

빛잔 팔찌를 줍던 폐인의 자리에는 명속성 불빛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뿐이였다.

오늘도 난 강맹 고맴을 먹기위해 꿈성에서 어그로 끌기를 하고, 풀셋인 상태에서 명속강을 하고있다.

전세계의 마도들은 그 폐인의 옹고집스러운 명속강 고맴을 기억해야할것이다.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kind=&ask_time=&search_table_name=&table=dungeon&no=60818&page=1&keyfield=&keyword=&mn=&nk=%BA%BC%C7%C7.&ouscrap_keyword=&ouscrap_no=&s_no=60818&member_k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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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하는 노인

벌써 4년 전이다.

내가 갓 오버클럭커가 된지 얼마 안 돼서 용던에 올라가 물건을 살 때다.

용던에 왔다가는 길에, 오버 좀 땡기기 위해 일단 전차를 내려

야 했다.

용던 맞은편 상가에 앉아서 오버를 해서 파는 노인이 있었다.

오버 좀 땡겨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를 것 같았다.


"얼마 알아보고 왔소?"

"2600K이40만원 아닙니까?"

"한 개에 44만원이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다른 곳은 40만원이던데..." 했더니,

"CPU 한 개에 오버까지 해주는데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싸아가지 없는 노인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클럭 잘 올려만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바이오스를 만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올리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설정하고 저리 설정하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전압좀 올리고 클럭만 올리면  다 될 건데, 자꾸만 바이오스만 만지고고 있

었다.

인제 다 됐으니 인텔번좀 돌려 달라고 해도 통 못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TV에서 "카드 앵벌이 싸구려"를 방영할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인텔번 안 돌리고 자동오버로 해도 좋으니 그만 주세요"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안정화 할때까지 해야지 블루스크린이 안뜨지, 자동오버 한다고 실사용에 문제 없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올린다는  말이오? 노인장, 용팔이시구먼,

카드 앵벌이 한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방영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올려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에러가 나고 코어가 나간다니까. 오버란  제대로 안정화야지

안정화 하다 말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오버 설정한 것을 숫제 프라임을 걸고

태연스럽게 스타를 실행시키고 베틀넷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흥분해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8시간 후에야 CPU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다 되기는 8시간 전부터 다 돼 있던 오버다.


방영 시간을 놓치고 녹화본을 봐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용팔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용산상가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용팔이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용팔이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CPU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오버되었다고 야단이다.

남의 설정값을 그대로 베낀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국민오버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안정화를 제대로 안하면 얼마 못 가서 블루스크린이 뜨다가

코어가 맛이가며, 무리하게 고클럭으로 오버면 발열이 심하고

전기세 그키 먹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오버클럭은 고급 오버형 보드에 고급 파워에

고급 쿨링팬을 사용해 좀체로 블루스크린이 뜨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오버는 한번 블루스크린이 뜨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오버를 할때 바이오스에서 미리 설정한 뒤에 실사용이 가능한지

프라임 8시간을 패스하고 에버레스트로 온도를 확인을 한 뒤에 비로소 실사용한다.

물론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표준 국민오버 설정을 안정화도 안하고 그대로 실사용한다.

금방 오버한다. 그러나 안전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몇 시간씩 걸려 가며 프라임 돌릴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중고 장터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중고 CPU를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주차에 따라서 얼마, 스테핑에 따라 값으로 구별했고, 대박 주차는 평균시세보다 비싸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용팔이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주차를 확인해서 팔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값을 더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오버를 하는 그 순간만은 오직 잘 돌아가는 CPU 클럭과 전압을 찿는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파이값을 만들어 냈다.


이 오버도 그런 심정에서 올렸을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유뿔에게 용팔이 소리를 듣는 세상에서, 어떻게 잘 돌아가는 오버 CPU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쿨링팬과

술먹는 쿠우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휴일이라서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가게문은 굳게 닫힌채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용산상가를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에 무너질 듯한 용산상가 밑으로

용산견이 잠을 자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용산견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오버를 땡기다가 우연히 용산역의 마스코트인 용산견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그랫쿠나 무서운 쿠믈 쿠엇쿠나!"

초난강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집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9900MAX로

불도져를 갈구고 있었다. 전에 2600K를 프라임 돌리던 생각이 난다.

프라임 구경한지도 참 오래다.

문득 4년 전 오버 하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http://www.playwares.com/xe/1714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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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미 깎던 노인

벌써 3년 전이다. 내가 퇴물 취급 받던 구닥다리 라데온 HD 4870을 쓰던 때
다. 서울 왔다 가는 길에, 용던에 가서 눈팅이나 할 생각이었다. 용산전자상
가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엔비디아’라 쓰여 있는 조그마한 입간판을 놓고 그
래픽카드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마침 그래픽카드나 바꿔 볼 생각에 하
나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그래픽카드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라데온이나 쓰시구랴."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
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
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
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
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
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시간은 어차
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
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
다. 얼마 후에야 기판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시연회랍시고 껍데기만 보
여 준다. 그러면서 내일 다시 오란다. 아직 샘플 수율이 별로라나 뭐라나.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물건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
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
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용던 옥상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
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
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집에 와서 그 얘기를 했더니 아내는 낚였다고 야단이다. 성능이 얼마나 나올
지도 모르면서 예약구매를 했냐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HD5870보다야
낫겠지 했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작년 11월에 출시한다던 녀석
을 제품 결함을 이유로 1월 출시 예정이라 연기하더니, TSMC에서 나온 40나노
공정 샘플의 수율 문제로 떠들썩하더니 결국 3월까지 또 연기하고도 모자라
여태 감감 무소식이라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속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
고 새삼스레 그 노인의 처사에 대해 화가 치밀었다.

엣날부터 내려오는 CPU는 혹 써멀이 떨어지면 치약이나 콩기름으로 도포하고
곧 뜨거운 열기가 오르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CPU는 써멀이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메인보드
에 캐패시터를 붙일 때, 질 좋은 솔리드 캐패시터를 잘 박아서 은납으로 땜질
한 후에 마무리한다. 이렇게 하기를 12번 한 뒤에 비로소 밀봉 포장한다. 이
것을 12페이즈(Phase) 전원부라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전해 캐패시터로 때운다. 가격은 싸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오버클럭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값비싼 캐패시터 박을 회사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케이스만 해도 그러다. 옛날에는 미들타워 케이스를 사면 0.6T는 얼마, 0.8T
는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SECC 강판으로 만든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SECC란 저가형 SGCC에 비해 강도와 내식성을 대폭 향상시킨 고급 강판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SGCC인지 SECC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
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사지도 않는데
SECC 강판으로 케이스를 제작할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
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명품을 만들어 냈다.

이 페르미란 물건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으리라 생각한 내가 잘못이지. 나는
그 노인에게 낚인 것 같은 치욕감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장사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닌듯한 노친네가 이따위 물건으로 세상 물정 모르
는 어린 것들을 등쳐먹는 세상에, 예전처럼 아름다운 물건이 나올 리가 없다
는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해가 뜨자마자 노인을 찾으러 용던으로 갔다. 웬일로 입구부터 사람들
이 줄지어 서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길바닥이 온통 버
려진 찌라시로 가득했다.

‘GeForce GTX 480 성능, HD5870보다 5% 빠르다’
‘엔비디아 신제품 GTX 480, TDP 300w 이상’
순간 뒤통수를 망치로 후려치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읽던 찌라시를 손에 움켜쥐고 노인을 찾기 위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한참을 실랑이를 벌여 가며 겨우 인파 속을 헤치고 들어온 끝에, 마침내 노인
을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많은 사람들 역시 나와 같은 의도로 노인들 찾아온 듯했다.
나는 찌라시를 꺼내어 노인의 면상 앞에 디밀었다.

“노인장, 이게 어찌 된 거요?”

“그것은 경쟁사에서 의도적으로 뿌린 찌라시에 불과하오. 안심하시오.”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심히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완성해 준다던 페르미는 어디에 있소? 얼른 내 주시오.”

“최종 공정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였으니, 일주일 후에 다시 오시오.”

그렇게 기다렸건만, 또 다시 찾아오라니.
이 노인은 나를 시간이 남아돌아 집구석에서 방바닥이나 긁는 백수쯤으로 아
는 모양이다.

“이미 다 만들어 놓은 것을 가지고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게요? 얼른 내 놓으란
말이오.”

“지금은 곤란하오.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사람을 농락해도 정도가 있지, 이건 아니었다.

“됐소. 나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소이다. 그냥 안 살 테니 물건 값이나 돌려
주시오.”

노인은 한사코 안 된다고 하였으나,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한
마디를 상기시켜 주었더니, 비로소 돈을 물려 주었다.

“내 이 돈이면 HD5970을 지를 것을, 저런 노친네를 믿은 내가 병신이지.”

나는 그 노인과 주위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한 마디 쏘아붙이고는,
근처 매장으로 가서 대뜸 HD5970을 질러 버렸다.
집에 돌아가서 물건을 보여 주니 아내도 화색을 띠었다. 지포스가 득세하던
시절은 이미 옛 일이라나.

보름 후, 서울에 다시 올라갈 일이 있어 상경하는 길로 용던을 지나치게 되었
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전과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며 서 있
었다. 왠지 허전하고 서운해 보였다.

아마도 또 출시가 연기되었는지, 혹은 안 되겠다 싶어 판을 접고 날랐는지는
몰라도, 망연자실한 그들의 모습이 보기에 안타까웠다.
맞은편 용산전자상가 옥상을 바라보았다. 짙게 선팅한 창문들 사이로 용팔이
와 호구들이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무심히 '하기실음관두등가(河己失音官頭登可') 라는 이사(理事)의 시구
가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손주녀석이 컴퓨터로 열심히 총질을 하고 있었다. 전에
모던 워페어 2를 하던 생각이 난다.
지포스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PC방마저 라데온이 대세라고 한다.

8800GT니 GTX260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명기들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3년 전 페르미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http://avenuel.tistory.com/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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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 맞추던 오선 노인

벌써 2년여 전이다. 내가 갓 카메라 산지 얼마 안 돼서 이가나님과 황미희 임지혜님 합동출사를 나갈 때다. 출사 가는 길에, 청량리역으로 가기 위해 학동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학동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핀을 맞추던 노인이 있었다. 간판에는 "칼핀보장, 핀교정 30년 외길, 오선 칼핀"이라고 되어있었다.
마침 가지고 있던 5D와 아빠백통의 핀을 맞춰가려고 핀맞춰 달라고 부탁을 했다. 다른 출사도 아니고 천하의 저 세 모델을 한번에 찍을 기회인데 핀잘맞으면 더 좋을것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무려 라면 한박스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핀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캐코 학동 센터 가서 맞추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맞춰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맞추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맞추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6각렌치를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핀테스트용지만 수백컷을 찍고,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칼핀인데, 자꾸만 더 맞추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이가나님과 황미희 임지혜님 합동출사 나가야 할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맞추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자네가 칼핀을 알면 알머나 안다고 그러나! 중앙부만 맞춰선 소용이 없단 말일세!"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쓸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맞춘다는 말이오? 오선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오선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맞추우. 난 안 맞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출사 나가긴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맞춰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핀을 맞추려면 제대로 맞춰야지, 맞추다 말면 되나. 이따 수도꼭지 찍어봐야 안다니깐"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맞추던 백통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백통이랑 바디랑 맞춰서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수도꼭지랑 문고리 몇장 찍고는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바디와 백통이다. 난 라면 한박스를 던지듯 주고 나와야 했다. 에이 그놈의 수도꼭지를 왜 꼭 찍어야 한담!?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오선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학동 캐논 본사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장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오선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늦게나마 나간 출사를 다녀 와서 찍은 사진을 몇장 구락부 주갤과 포럼에 올렸더니, 칼핀이라고 난리들이다. 난 차이를 잘 모르겠어서 답글의 설명을 들어 보니, 핀에는 가로 핀과 세로 핀이 있는데 가로 핀을 맞추면 세로가 맞지 않기 쉽고 세로를 맞추면 가로가 어긋나기 쉽단다. 게다가 중앙측거점에만 맞추다간 주변부가 나가기 쉽고, 바디와 렌즈가 이렇게 딱 맞아 전영역에서 칼핀 나기는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오선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필카는 혹 핀이 안맞으면 스플릿 스크린으로 맞추기도 하고 하지만 어지간 해서는 좀체로 핀이 어긋나는 일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요새 디카는 핀이 한번 어긋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일부런지 아닌지 모델사진보면 핀이 죄다 가슴에 가있지않은가.

렌즈만 해도 그러하다. 옛날에는 짜이스를 사면 얼마, 라이카를 사면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플라나니 엘마리트니 한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플라나는 비구면 수차와 비점수차를 양호하게 보정할 수 있는 설계로 만들어진 망원계열의 렌즈로 렌즈의 제수차의 증대가 문제시되는 대구경렌즈에서 그 빛을 발하곤 했다. 눈으로 보아서는 플라나니 호로곤이니 하는것을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브랜드를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광각억제를 하고 왜곡수차를 줄이겠는가.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예술과도 같은 바디와 렌즈들을 만들어 냈다.

이 카메라의 핀도 그런 심정에서 맞췄을 것이다. 나는 오선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오선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칼핀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오선 노인을 찾아가서 부대찌게에 막걸리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오선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캐논 본사 빌딩를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광고판 끝으로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핀을 맞추다 유연히 광고판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少年易老光難成  一寸光陰不可輕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 ' (소년은 늙기 쉽고 사진은 이루기 어렵구나) 하는 주자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이후로도 여러번 그곳을 지나다녔지만, 두번 다시 오선 노인의 모습을 찾아 볼수는 없었다.
간혹 운좋게 그를 만난 사람들은 만인이 부러워하는 칼핀교정을 받는 행운을 누렸다 하지만 이또한 가뭄에 콩나듯 전해지는 소식일 뿐이었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아들놈이 바디 마운트 부위에 접착테이프를 붙이고 앉았다. 그런식으로 해봤자 렌즈가 여러개면 엄해지는데다 좋지 않은 영향이 있을 수 있으니 그러지 말라 했건만 푼돈아낀다고 요지부동이다. 사진은 안찍고 허구헌날 핀테스트용지만 찍고 앉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꼬. 문득 2년 전 핀 맞추던 오선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수필가 윤오영 선생님의 방망이 깍던 노인을 캐논 포럼에 맞게 다시 한번 패러디 해봤습니다.

권오선님께서도 양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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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갤문학]플라즈마기어 깎던 노인

벌써 사십여 년 전이다. 내가 세간난 지 얼마 안 돼서 알파서버에 내려가 살
때다. 5써ㅃ 왔다 가는 길에 갤방으로 가기 위해 자유18채널에서 일단 로비로
내려야 했다.

18채널 맞은쪽 갤방 가에 앉아서 플라즈마기어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플라즈마기어를 한 벌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
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플라즈마기어 하나 가지고 값을 깎으려오? 비싸거든 다른 데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깎지도 못하고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
록 블래스트 모드로 바꿔 보고 부스터 모드로 바꿔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
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체한다. 투기장 시작 시간이
바쁘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점점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깎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야수가 풀피에 변신이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려. 투기
장 시간이 없다니까……."
노인은 "좀 더 깎을 수도 있는거 아닌가?"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투기장 시간은 어차피 늦은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諦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악세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사기악 만들어놨다가 하향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미스터 플라워
를 담아 피우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
마 후에, 노인은 또 깎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플라즈마기어는 다 깎여 없어
질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플라즈마기어를 들고 이리저리 모드를 바
꿔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되어 있던 플라
즈마기어다.

S랭크 투기장을 놓치고 다음 B랭크 투기장을 기다려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
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本
位)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 불친절(不親切)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
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걀매기의 겟앰 잘하는
법을 보고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열혈겟앰인다워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 그리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
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조금은 덜해진 셈이다.

집에 와서 플라즈마기어를 내놨더니, 아내는 예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
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면, 부스터가 너무 부르면 노림질할
때 자살 번지를 잘 하고, 같은 MP라도 힘이 들며, 부스터가 너무 안 부르면
플라즈마 에너지가 펴지지 않고 어깨에 헤먹기가 쉽다는 것이고,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
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연태도(燕太刀)는, 칼날이 떨어지면 쪽을 대고 물수건으로
겉을 씻고 뜨거운 임인두로 곧 다리면 다시 붙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사이 연태도는, 칼날이 한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연태도에 칼날을 붙일 때, 질 좋은 턱을 잘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턱태도(攄ㄱ太刀)"고 한다.

포레스트 포스(浦來水投 浦水)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포레스트 포스(浦來
水投 浦水)을 사면 보통의 것은 얼마, 그보다 상향한 것은 얼마의 값으로 구
별했고, 구증 구포(九拯九暴)한 것은 3배 이상 비쌌다. 구증 구포란, 테섭에
서 상향하고 하향하기를 아홉 번 한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다섯 번을 패치
했는지 열 번을 패치는지 알 수가 없다.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밸런스개판
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남이 보지도 않는데 아홉 번씩이나 패치할
리도 없고, 또한 말만 믿고 3배나 값을 더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사기악은 사기악이요, 쓰렉(水來ㄱ)는 쓰렉이지만, 악세를 만
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훌륭한 악세를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心血)을 기울여 개념(价念) 악
세를 만들어 냈다. 이 플라즈마기어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하수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지지악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
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 불벅에 피크닉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
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上京)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
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
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쪽 걀매기의 겟앰 잘하는 법을 바라다보았다. 푸
른 창공으로 날아갈 듯한 스카이보드 끝으로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플라즈마기어를 깎다가 유
연히 보드 끝의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연태도을 뜯고 있었다. 전에 고릴라를 부스
터모드로 쿵쿵 노려 번지시키던 생각이 난다. 플라즈마기어를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사이는 모드바꾸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애수(哀愁)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사십여 년 전, 플라즈마기어 깎던 노
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http://aorkaosx7.blog.me/2013443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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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겜 만들던 노인


http://cafe415.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30lB&fldid=1LjP&datanum=41964&contentval=&docid=30lB1LjP41964201201252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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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박스 깎는 노인


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use&wr_id=411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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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갤웹툰 #17 방망이 깍던 노인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howx123&logNo=50109065863&categoryNo=32&viewDate=¤tPage=1&listtyp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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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클릭 하던 명인


http://aion.plaync.co.kr/board/image/view?articleID=111751&page=&searchCondition=1&searchKeyword=%ED%8C%8C%EB%85%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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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망이 깍던 노인 - 공포의 눈알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260&iskin=sc2&p=1&category=%C0%E2%B4%E3&l=345241&vtype=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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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6. 추가


방망이 깎던 여인(17금?)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hit&no=11993&page=


2014. 4. 6. 추가


연봉 깎는 실장


벌써 4년여 전이다. 내가 갓 졸업한 지 얼마 안 돼서 신림동에 내려가 살 때다. 면접 돌러 가는 길에, N사를 들르기 위해 선릉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선릉역 7번 출구 N사 건물에서 연봉을 깎아 뽑는 실장이 있었다. 면접 한 번 해보고 가려고 만나 달라고 부탁을 했다. 연봉을 굉장히 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많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대졸 신입 포폴 갖고 채용을 하겠소? 싸거든 다른 데 가 일하구려."

대단히 무뚝뚝한 실장이었다. 연봉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쳐주기나 해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연봉을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계약서를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더 깎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다음 N사 면접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깎을 만큼 깎아야 채용이 되지, 신입이 재촉한다고 채용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일 할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실장, 외고집이시구먼. 생계비가 없다니까요."

실장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일하우. 난 안 뽑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다음 면접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클레임을 걸면 점점 깎이고 늦어진다니까. 일자리를 제대로 구해야지, 뻗대다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아이폰에 트윗을 보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계약서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계약서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채용을 해 가지고 채용이 될 턱이 없다. 면접자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연봉만 싸게 부른다. 프로그래머 안 뽑히는 줄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실장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실장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키넥트 카메라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손을 공중에 휘젓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게이머다워 보였다. 뿔테 안경과 줄무늬 셔츠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실장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집에 와서 계약서를 내놨더니 아내는 연봉을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서 노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놀고 있으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취직이 너무 늦으면 해마다 협상을 놓쳐 같은 나이라도 연봉이 낮고, 연봉이 너무 높으면 일이 안 풀렸을 때 회사를 옮기기가 힘들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액수는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실장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programming&no=416291&pag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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