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나비
내가 나비 잡기를 시작하기는 여덟 살인가 아홉 살 때의 일이다. 처음엔 별로 열심이랄 것도 없이 다른 애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해보는 정도였다. 그런데 열 살쯤 된 두 번째 여름에는 나는 완전히 이 유희에 취미가 생겨서, 이 때문에 다른 일은 전혀 돌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주위의 사람들은 나에게 그것을 못 하도록 말리지 않으면 안되겠다고까지 걱정을 하게 되었다. 나비잡기를 열중하면, 학교의 수업 시간도 점심도 잊어 버리고, 탑시계가 우는 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학교를 쉬는 날은 빵 한쪽을 호주머니에 넣고는,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끼니때에도 돌아가지 않고 뛰어다니곤 하였다.
지금도 아름다운 나비를 보면, 이따금 그 때의 열정이 몸에 스미는 듯 느껴진다. 그럴 때면, 나는 잠시 어린이만이 느낄 수 있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한 심정에 사로잡힌다. 소년시절에 처음으로 노랑나비를 찾아 냈던 그 때의 기분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럴 때면 나는 홀연히 어린 날의 무수한 순간을 생각해 낸다. 풀향기가 코를 찌르는 메마른 벌판의 찌는 듯이 무더운 낮과, 정원 속의 서늘한 아침과, 신비스런 숲 속의 저녁때, 나는 마치 보물을 찾아 헤매는 사람처럼 포충망을 들고 나비를 노리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아리따운 나비를 발견하면-특별히 진귀한 것이 아니라도 좋다. 햇볕 아래 졸고 있는, 꽃 위에 앉아서 빛깔이 고운 날개를 호흡과 함께 드놓고 있는 것을 보면-그것을 잡는 기쁨에 숨이 막힐 지경이 되어, 가만가만 다가섰다. 반짝이는 반점의 하나하나, 날개 속에 드러난 맥줄의 하나하나, 가는 촉각의 갈색 잔털의 하나하나가 눈에 뚜렷이 보이면, 그 긴장과 환희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때의 그 미묘한 기쁨과 거센 욕망과의 교차는 그 뒤엔 자주 느낄 수 없었다.
부모님께서는 훌륭한 도구는 하나도 마련해 주시지 않아서, 나는 내가 잡은 나비들은 낡은 헌 종이 상자에다 간추려 두는 수밖에 없었다. 병마개에서 뽑은 동그란 코르크를 밑바닥에다 발라 붙이고 그 위에 핀을 꽂는 것이었다. 이렇게 초라한 상자 속에다 나는 나의 보물을 간직했다. 처음 한동안 나는 나의 수집물을 동무들에게 즐겨 보여 주기도 하였으나, 동무들이 가진 도구는 대개 유리 뚜껑의 나무 상자에 푸른빛 가아제를 친 사육상자와 그 밖의 여러 가지 사치한 것들이었으므로, 내가 가진 유치한 설비를 더 자랑할 수가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극히 대견하고 센세이셔널한 나비가 손에 들어와도, 남에게는 비밀로 하고, 내 누이들에게만 이것을 보여 주곤 했다. 어느 때 나는 우리 고장에서 보기 드문 푸른 날개의 나비를 잡았었다. 날개를 펴서 그것을 말린 다음에, 나는 하도 마음이 흡족하고 자랑스러워, 꼭 이웃집 아이에게만은 보여 주리라고 생각했다. 이웃집 아이란 뜰 건너편 집에 사는 교원의 아들이다. 이 소년은 흠잡을 데가 없지도 않았다. 그의 수집물은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으나, 깨끗한 점과 솜씨가 정확한 점으로는 보석을 간직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그는 찢긴 헌 나비의 날개를 풀로 이어 맞추는, 남이 잘 몫하는 어려운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어쨌든 모든 점에서 그는 모범 소년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감탄에 마지 않으면서도, 그를 속으로 미워했다.
이 소년에게 푸른 날개의 나비를 보였다. 그는 무슨 전문가나 되는 듯이 그것을 감정하고 나더니, 신기한 것임을 자기도 인정하면서, 10전짜리 값은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반면에 그는 트집을 잡기 시작하여, 날개를 편 상태가 나쁘다느니, 오른쪽 촉각이 비틀어졌다느니 하며, 제법 그럴 듯한 결함을 늘어놓았다. 나는 그러한 결점을 그다지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으나, 그의 혹평으로 하여 내 푸른 날개의 나비에 대한 기쁨은 다분히 허물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두 번 다시 그에게 수집물을 주지 않았다.
이태가 지나서 우리는 꽤 머리가 굵은 소년이 되었는데, 그 때도 나의 나비잡기에 대한 열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 때, 이웃집 에미일이 점박이를 번데기에서 길러냈다는 소문이 퍼졌다. 나는 이 말을 들은 때만큼 흥분한 적이 없었다. 내가 아는 동무들 중에서는 아직 점박이를 잡은 사람이 없었다. 나 역시 내가 가진 낡은 책에서 그림을 보았을 뿐이다. 나비 이름을 알면서도 아직 잡아 보지 못한 것 중에서 나는 점박이를 어느 것보다도 가지고 싶어하였다. 몇 번이고 나는 책 속의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한 동무는 내게 이런 말을 하였다. 나무둥치나 바위에 앉아 있는 이 갈색 나비는, 자기에게 새나 다른 짐승이 덤벼들려고 하면 거무스름한 앞날개를 펼치고 아름다운 뒷날개를 드러내 보일 뿐인데, 그 빛나는 커다란 무늬가 이상한 모양을 나타내므로, 새는 겁을 먹고 함부로 덤비지 못한다고...
에미일이 이 이상한 나비를 가졌단느 소문을 듣고부터 나의 흥분은 절정에 이르러, 그것을 꼭 한 번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식사 뒤 틈을 얻어 곧 뜰을 건너서 이웃집 4층으로 올라갔다. 이 4층에 교원의 아들 에미일 소년은 작으나마 제 방을 하나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이 내게는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방으로 가는 도중에 나는 아무와도 만나지 않았다.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에미일이 있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문의 손잡이를 돌려 보니, 문은 그대로 열려 있었다.
어쨌든 실물을 한 번 보리라는 생각에 나는 안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그리고, 에미일이 나비를 간직한 두 개의 커다란 상자를 집어 들었다. 어느 상자에도 점박이는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날개판에 올려져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과연 생각한 바 그대로였다. 갈색 비로오드 날개가 길쭉한 종이쪽 위에 펼쳐진 채 날개판에 걸려 있었다. 나는 그 앞에 허리를 굽히고서, 털이 돋친 적갈색의 촉각과, 그지없이 아름다운 빛깔을 띤 날개의 선과, 밑날개 안쪽 선이 있는 양털 같은 털을 바로 곁에서 들여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유명한 무늬만은 보이지 않았다. 종이쪽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다.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나는 유혹에 끌려 종이쪽을 떼어 내고, 꽂혀 있는 핀을 뽑았다. 그러자 네 개의 커다란 무늬가 그림에서보다는 훨씬 더 아름답게, 훨씬 더 찬란하게 나의 눈앞에 드러났다. 이것을 본 나는, 이 보배를 내 손에 넣고 싶은, 견딜 수 없는 욕망으로 난생 처음 도둑질을 했다. 나비는 벌써 말라 있어서, 웬만큼 손을 대어도 형체가 일그러지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손바닥 위에 받쳐 들고 에미일의 방을 나왔다. 나는 그 때 어떤 커다란 만족감 이외에 아무 생각도 없었다.
나비를 오른쪽 손에 감추고 층층대를 내려섰다. 이때다. 아래편에서 위로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났다. 이 순간, 나의 양심의 눈은 떠졌다. 나는 별안간, 내가 도둑질을 했다는 것과 비겁한 놈이란 것을 꺠달았다. 그와 동시에, 들키면 어쩌나 하는 무서운 불안에 사로잡혀, 나는 본능적으로, 나비를 감추었던 손을 그대로 양복 저고리 포켓 속에다 우겨 박았다. 그리고 천천히 발을 떼어 놓았다. 그러면서 속으로, 안될 일을 했다는 부끄러운 생각에 가슴이 써늘해졌다. 나는 뒤미처 올라온 하녀와 어물어물 엇가려서, 가슴을 두근거리고 이마에 땀을 흘리며 침착을 잃고 벌벌 떨며 현관에 우뚝 섰다.
이 나비를 가져서는 안 된다. 될 수만 있으면 그전대로 돌려 놓아야겠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마음이 괴로웠다. 그리고, 혹시 사람의 눈에 뜨이지나 않을까, 이 점을 극도로 무서워하면서도 날쌔게 발을 돌려 층계를 뛰어올라, 1분 후에는 다시 에미일의 방 가운데 자신이 서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포켓에서 손을 뽑아 나비를 책상 위에다 꺼내 놓았다. 나는 그것을 보기 전에 벌써 어떤 불행한 일이 생겼다는 것쯤은 미리 짐작했었다. 그저 울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점박이는 보시 싫게 망그러져서 앞날개 하나와 촉각 한 개가 떨어져 버렸다. 떨어진 날개를 조심스레 포켓 속에서 끄집어 내려고 하니까, 그나마 산산이 부서져서 이제는 이어 붙일 수조차 없게 되었다. 도둑질을 했다는 생각보다도, 그 아름답고 찬란한 나비를 자기 손으로 망그러뜨렸다는 것이 나로서는 더 괴로운 일이었다. 날개에 있는 갈색 분이 온통 나의 손끝에 묻은 것을 보았다. 그리고, 또 산산이 부서진 날개가 책상 위에 이리저리 흩어진 것을 보았다. 그것을 완전히 원형대로 고쳐 놓을 수만 있다면, 나는 그 대신 내가 가진 어떠한 물건이든지 즐거움이든지를 기꺼이 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지없이 슬픈 생각으로 나는 집에 돌아와, 하루 종일 좁은 뜰 안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나는 용기를 내어, 모든 일을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고 말았다. 어머니는 놀라움과 슬픔에 잠겨 어쩔줄을 몰랐다. 그리고, 이 나의 고백이, 그대로 벌을 받는 일보다 나자신으로서는 몇 배나 더 괴로운 사실이라는 것도 넉넉히 짐작이 가는 눈치였다.
"너는 지금 곧 에미일에게 가야 한다."
어머니는 한 말로 잘라 말했다.
"에미일을 찾아가서 사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라. 그 밖에는 아무런 길이 없다. 네가 가진 것 중에서 하나를 대신으로 처리해 달라고 말해 보렴. 그리고 용서를 빌어야지."
만일에 모범 소년인 에미일이 아니고 다른 동무였다면, 나는 용서를 비는 것쯤 서슴지 않았으리라. 그가 나의 고백을 이해해 준다거나 나의 사과를 믿어 주지 않을 것을 나는 미리부터 잘 알고 있다. 그럭저럭 밤이 되었으나 나는 그 때까지도 그를 찾아갈 용기를 얻지 못한 채 주저하고만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뜰에 있는 것을 보고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오늘 중으로 갔다 와야 해. 지금 곧 가요."
나는 에미일을 찾아갔다. 그는 나를 만나자 곧 점박이에 관한 말을 꺼냈다. 누가 그랬는지 점박이를 아주 쓰게 만들어 놓았다고 하면서, 사람의 소행인지 혹은 고양이가 그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라 하였다. 나는 그 나비를 좀 보여 달라고 청했다. 두 사람은 방으로 올라갔다. 그는 촛불을 켰다. 못 쓰게 된 나비가 날개판 위에 올려져 있었다. 에미일이 그 날개를 손질하느라고 무척 고심한 흔적이 역력히 보였다. 그는 부서진 날개를 정성껏 주워 모아서 작은 압지 위에 펴 놓았다. 그러나, 그것은 도저히 본디 모양으로 바로잡힐 가망은 없었다. 촉각도 떨어진 그대로다. 나는 그제서야 그것이 나의 소행인 것을 밝혔다. 그랬더니, 에미일은 격분한다거나 나를 큰 소리로 꾸짖는 법이 없이, 혀를 차며 한동안 나를 지켜 보다가, 나직한 소리로,
"알았어. 말하자면 너는 그런 자식이란 말이지."
하였다.
나는 그에게 내 장난감을 모두 주겠다고 하였다. 그래도 그는 듣지 않고 냉담하게 도사리고 앉아, 여전히 나를 비웃는 눈으로 지켜 보고만 있으므로, 이번에는 내가 수집한 나비의 전부를 주겠다고 하였다.
"뭐,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좋아. 나는 네가 모은 것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어. 게다가 오늘은 네가 나비를 다루는 성의가 어떻다는 것을 알 만큼은 알았어."
그 순간, 나는 녀석의 멱살을 움켜쥐고 늘어지고 싶었다. 인제는 아무런 도리가 없음을 알았다. 나는 아주 나쁜 놈으로 결정이 나고, 에미일은 천하에 정직한 사람이 되어, 냉연히 정의를 방패로 하고 모멸적인 태도로 내 앞에 버티는 것이다. 그는 욕설을 늘어놓지도 않았다. 다만, 나를 바라보면 경멸할 따름이었다.
그 때 나는 비로소, 한 번 저지른 일은 벌써 어떻게도 바로잡을 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 자리를 물러섰다. 어머니는 경과를 물어 보려고도 하지 않고, 나에게 키스만을 하고 내 버려 두는 것이 고마웠다. 어머니는 나더러 그만 잠자리에 들라고 하였다. 여느 날보다는 시간이 늦어진 편이기는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전에 가만히 식당으로 가서, 갈색으로 된 두껍고 커다란 종이 상자를 찾아가지고 와서 침대 위에 올려놓고, 어둠 속에서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그 속에 든 나비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어 손끝으로 비벼서 못쓰게 가루를 내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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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보고 살면서 가끔 마지막 구절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보니까 느낌이 새롭고 감동적이다.
지금 보니까 "알았어. 말하자면 너는 그런 자식이란 말이지.", "게다가 오늘은 네가 나비를 다루는 성의가 어떻다는 것을 알 만큼은 알았어." 이 대사도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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