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8일 나루아트센터에서 극단 고래가 공연한 <비명자들2>를 봤습니다.
극단 고래는 <빨간시>를 시작으로 <사라지다>, <살>, <고래>, <불량청년>, <고래햄릿>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반추하는 공연을 해왔습니다. 저도 지난 번에 <불량청년>을 감명깊게 봤습니다.
연극의 시작은 잔혹하고 강렬합니다. 티벳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자들이 중국 군인에 의해 포로가 되어 무릎을 꿇고 앉아있습니다. 이들은 중국군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다가 고결한 희생을 당합니다. 중국군의 연이은 총소리와 통역가의 비명, 이를 지켜보는 보현의 울음이 섬뜩하게 울립니다.
다음 장부터는 한국이 무대입니다. 비명자라고 불리는 소복을 입은 한 사람이 전경처럼 보이는 무리에게 포위 당합니다. 비명자는 고통으로 인해 자살했으나 좀비처럼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이들이 지르는 비명은 주위 사람의 고막을 찢듯이 고통을 가하게 되고 사람들이 비명자들을 공격하면 반경 4km, 10리 내의 사람들은 똑같은 해를 입게 됩니다. 그래서 왕십리병, 아리랑병이라고도 불린다고 합니다.
비명자들은 모두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세월호 유가족, 화재로 자식을 읽은 어머니, 동지를 살리다 불에 탄 노동자, 왕따 여학생, 그리고 티벳에서 저항군의 살육을 목격한 여인까지. 고통의 극한에서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마치 세상을 경고하는 사이렌처럼 들리는 이들의 비명은 우리의 어두운 면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처럼 느껴집니다. 이들의 춤은 전문 안무가가 고안한 것인데 비애가 스며있으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이 비명자를 함부로 공격하면 안되는데 유일하게 박요한이라고 불리는 사람만이 비명자를 죽일 수 있습니다. 그는 비명자들의 울음에도 고통을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대속자들이 비명자들을 죽이면서 마치 더이상의 고통을 중단시켜주는 구원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성경을 읊기도 합니다. 이런 행위는 파사라고 불리는데 이명박이 엉뚱하게 언급했던 말로서 물교용어입니다. 파사대원들은 불교식 훈련을 받습니다. 고집멸도, 일체개고, 제행무상, 제법무아 등을 읊으며 명상을 하며 수련합니다. 박요한은 비명자들의 목을 조르는 순간 그들의 고통을 전이받아서 괴로워합니다. 왜 자신만이 선택받아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고뇌합니다.
파사대원들을 취재하는 기자는 박요한에게 파사당한 아버지를 생각하며 파사에 비판적입니다. 현장을 따라다니며 같이 고통을 느끼다가 결국 박요한의 불가피한 선택에 동조하게 됩니다. 파사 행위는 살인이기도 하기 때문에 정치가들은 이들의 행위를 합법화하자는 논쟁을 합니다. 다양한 각 분야 사람들이 양당으로 나뉘어 탁상공론을 합니다. 비명자 유가족들을 윽박지르는 보수적인 토론자들은 현실을 반영하는 듯 보입니다. 이들은 결국 박요한의 실존적 비명을 듣고 토론을 멈출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극의 마지막에는 박요한의 옛 애인이자 티벳을 방문했던 보현이 비명자로 등장합니다. 박요한은 피로한 몸으로 보현과 춤을 추듯 겨룹니다. 요한은 보현을 죽이려하다가 또다른 비명자가 나타납니다. 두 비명자들은 서로를 위로하듯 함께 비명을 지르고 주위의 사람들은 더 이상 비명이 고통스럽게 들리지 않는 감동적인 일이 생깁니다. 그리고 요한은 속죄하며 충격적으로 자살을 하게 됩니다.
비명자들은 우리 주위에 들리는 비명은 우리 모두의 일이며 사회가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또한 고통은 본인의 것만이 아니라 비명처럼 함께 느끼는 것이며 이 고통의 해결은 서로 위로해주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극은 무섭고 기괴하고 잔인한 면도 있지만 마치 불편한 진실이란 말처럼 이 세상을 치유할 수 있는 쓴 약처럼 느껴집니다. 객석에서 나오면서 비명자의 울음을 한 번 따라해보니 스트레스가 좀 풀렸습니다.
극단 고래의 이해성 연출가는 광화문 노숙 농성을 했던 '광장극장 블랙텐트' 극장장이었습니다.
이해성 연출가는 수년간 <비명자들2>의 극본을 집필하고 거절된 극본을 수정하면서 세월호 참사와 송파 세모녀 사건 등의 사회문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비명자들 1편과 3편이 기대되며 극단 고래가 앞으로도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내놓으리라 기대가됩니다. 그리고 비명자들이 영화로도 만들어지면 멋진 작품이 될 것같은 생각도 듭니다.
무대 뒤에서 직접 연주되는 음악은 극적인 분위기를 잘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연주한 분이 나와서 인사하시지 않아서 좀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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